[Opinion] '상투적' 인간 [문화전반]

한나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글 입력 2017.01.1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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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투적 인간일까

 학부생 4년간 철학과 국문학을 전공했다보니 정신없이 써낸 글이 수십편이다. 이제껏 써낸 글들은 나의 '흑역사'이긴 하지만 모두 컴퓨터에 저장해놓고 있다. 옛 앨범을 들춰보고 싶어지는 때가 오듯, 이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훑어보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꽤 잘 썼다 싶은 글도 몇 편있지만 손에 꼽을 정도고, 제출일 전날밤 얼마나 조급했는가를 증명해주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옛글 몇 편을 내리 읽어보는 일에서 얻는 수확물엔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달리 하는 각각의 글에서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된 문구들을 찾아낼 수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은 존엄하므로..." “역사가 판단할 문제로서...”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과 맞닿아 있다면...”   비슷한 문장을 여러 번 만나다보면 특정 단어의 조합과 특정한 문장구조에서만 나는 편안함을 느끼는건 아닌가 의문이 든다. 상투적 문구의 장점이 바로 그런 것일 터다. 스스로 생각해보는 일은 사실 피곤한 일이다. 굳이 생각해 볼 필요없도록, 의심할 필요없도록 그것은 편안함과 편리함을 선사한다. 그렇게함으로써 각 문구들은 우리를 의도된 방향으로 이끈다.

 친절하게도 상투적 어구들은 ‘당신의 생각은 여기까지’라며 선을 그어준다. 이 선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선이 이끄는 방향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위험해진다. 얼마나 상투적 어구들을 많이 늘어 놓았느냐는 얼마나 생각하지 않았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엔 내가 쓴 글과 내가 하는 말들을 모조리 검열해보고 싶은 생각뿐이다.

#한나아렌트, 상투적 문구들의 위험성을 목격하다

 1961년, 사회철학자 한나아렌트는 상투어구가 가진 위험성을 생생히 목격했다. 예루살렘의 법정에 선 한 남자의 입에서였다.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의 전범으로 이스라엘의 끈질긴 추적 끝에 법정에 세워졌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재판을 취재하며 인간이 저질렀다고는 믿기지 않는, 그 악행의 기원을 밝혀내고자 했다.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그녀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린 것은 다름아닌 그의 평범함이었다. 그를 진단했던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정상’이라 결론내렸고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별탈없는 바람직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왔는가? 아렌트가 주목했던 것은 바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상투적 표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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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디언 홈페이지


"더 난처한 것은 그가 유태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나 열광적인 반유대주의 혹은 그런 종류의 어떤 세뇌된 의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  당에 가입한 이유를 물어보면 베르사유 조약과 실업에 대한  상투적인 표현들만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시간이 없었고, 
알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말하기의 무능함은 생각하기의 무능함
즉,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의 무능함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생각하는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상투적 표현들과 구호들이 곧 그의 생각이었고 말이었다. 그는 분명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언어와 타인의 존재로부터, 현실 자체로부터 그를 방어해주는 가장 믿음직한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어떤 소통도 불가능한 이유였다.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거나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지도 않다는 '무서운' 확신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식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냈다. 교수대 아래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다. 그는 ‘의기양양’했고,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한나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말하기의 무능함과 생각하기의 무능함이야말로 ‘악의 기원'이었다. 그렇게나 무서운 것이라,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실 우린 그 위험성을 모두 다함께 목격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게 "창조경제와 경제혁신"을 약속했던, “우리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했고, "경제도 어렵다"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던 그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나는 상투적 인간인지를.





대표이미지 출처 http://stevelvernon.com/change-words-change-world/


[이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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