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ina] 모성은 정말 본능일까

글 입력 2017.01.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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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은 정말 본능일까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


우리는 어머니의 위대함과 모성을 찬미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에게 있어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가장 커다란 축복과 행복이며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본능이라고 말한다. 아이를 싫어하는 여성에게조차 직접 출산을 겪고 나면 본인의 아이만큼은 사랑스러워 보일 것이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 모성애가 여성에게 자동으로 발현되어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듯이, 모든 여성에게 모성애라는 감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모성애는 정말 본능적인 것일까? 만일 모성이 본능이고 긍정성을 불러일으킨다면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성이 정말 본능이라면 영아 유기, 방치, 자식에 대한 무관심, 편애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요된 모성신화 


엘리자베스 바댕테르는 <만들어진 모성>을 통해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된 모성과 아동에 관한 인식을 파헤치며 모성애란 인간적 감정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모성 또한 불확실하며 불안정, 불완전한 것으로 우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17세기-18세기 초 프랑스 여성들은 자애롭고 헌신적인 모성상과 현저하게 동떨어져 있다.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은 사교생활을 즐기기 위해, 가난한 하층민 계급의 여성들은 노동의 절박함 때문에 지위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을 태어나자마자 유모에게 위탁하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좀 더 자랐을 땐 가정교사를 고용하거나 수도원과 기숙학교로 떠나보내며 자식과 완전히 분리되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평민 이상의 여성들은 모유수유를 어리석고 역겨운 짓이라 단언하며 품위 있는 여성이 하기엔 명예롭지 못한 일로 간주하였다. 심지어 자식의 죽음조차 슬퍼하지 않았으며 장례식에도 불참하는 부모들이 존재했음은 놀랍기까지 하다.

이처럼 자식들을 향한 무관심과 방치에 가까운 여성들의 행동은 당시 사회적 인식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를 원죄의 표징으로 삼았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신학은 17세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부모들은 아이를 하찮은 존재로 여겨 가정과 사회 안에 엄격한 분위기가 유지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말에 이르자, 사람들은 아동이 경제적, 군사적 자원임을 인식하게 된다. 때문에 아동의 생존율과 보육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특히 루소의 <에밀>이 출간된 이후 어머니의 역할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무거워져만 갔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도덕주의자들과 의사들, 남성들은 더 이상 모유수유와 양육을 거부하는 여성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정과 자녀 교육에 충실한 어머니를 숭배했으며 그와 반대되는 여성들은 비난했다. 자식을 원치 않는 여성이나 아이에게 무관심한 여성, 유모에게 자식을 맡기는 여성들은 모성애가 결핍되어 비정상적이고 이기적인 여성으로 매도당한 것이다. 이런 숭배와 비난은 모두 여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가 될 것을 전제한다. 이렇듯 사회적 제도에 따라 강요된 감정을 본성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머니 역할의 무게


근대 사회와 결탁한 가부장제는 모성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의 본질은 모성이므로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어머니에게 전가했다. 이 세뇌와도 같은 사회적 압력은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무조건적인 보살핌 노동과 희생을 강요한다. ‘집에서 애나 봐’ ‘애 보는 게 뭐가 힘들어’ 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심심찮게 쓰이는 이 표현들은 보살핌과 가사 노동이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는 편견과 함께 그것을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폄하해버리는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아이의 잘못 또한 어머니의 잘못으로 되돌아가지 않는가. 어머니 역할은 잘해야 본전이며 못하면 맘충과 같은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엄마라면 희생할 줄 알아야하는데 전 아이를 위해 내 자는 시간, 
여유시간을 포기할 준비가 안됐나 봐요.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요?"

"왜 낳았을까. 왜 결혼했을까. 
전 모성이 부족한가 봐요. 모든 게 후회스러워요."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냥 내가 죽어 없어져버렸음 좋겠다. 
오늘은 또 어떻게 하루를 보내나 걱정부터 돼요. 내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나, 
모성애라는 것이 나에게 있나 싶어요."


기혼 여성들의 커뮤니티를 잠시만 둘러보아도 모성에 관한 의문과 자녀에게 좀 더 희생적이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어머니가 된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어머니 역할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성모 마리아와 같은 자기희생적 모성상과 여성의 공간을 가정으로 국한시키는 편견들이 여성들로 하여금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머니가 되는 과정은 여성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가정과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는 것은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돌봄 노동


모성을 빌미로 벌어진 보살핌의 젠더화는 남성을 공적 영역에만 머물도록 만든다.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경력 단절, 죄책감, 커리어 포기, 정체성 혼란과 같은 일을 경험하는 남성들은 없지 않은가. 어머니를 둘러싼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은 앞으로도 모성 불이익을 당할 것임이 분명하다. 모성은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하는 것이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처럼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변화 가능한 것이 모성이라면 부성도 그러함이 마땅하다. 돌봄 노동은 어느 한 쪽의 책임과 의무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함께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 아닌가. 또한 여성들은 어머니 역할에 관해 좀 더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단 이유만으로 모든 여성들은 어머니 역할을 도맡아야 하는 것일까? 사회적 압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에서 어머니 됨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과연 여성들 개인 스스로의 욕망에 의한 것인가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기혼 여성들의 경우, 출산은 마치 패키지처럼 결혼과 함께 딸려오는 관습이나 다름없다. 모성이란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길 바라며 바댕테르의 말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모성이란 재능이지, 사람들이 우리에게 믿게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본능이 아니다.
이에 대해 재능이 없는 여성들을 부디 평온하게 놔두길 바란다.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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