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학' 하는 '사람들', 과학하는 마음 –숲의 심연 편

글 입력 2017.01.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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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나의 초등학교 시절, 교실 뒤편의 사물함에 붙어 있던 큼지막한 반 아이들의 프로필에는 이름, 번호, 자기소개와 함께 장래희망을 적게 돼 있었다. 장래 희망 란의 지금 보면 참 현실성 없는 대통령, 가수라는 직업과 함께 항상 전체의 3분의 1이라는 지분을 차지하던 직업은 언제나 과학자였다. 당시에 나는 그것을 보면서 유독 과학자라는 직업은 뚜렷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 꽤나 거리감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고등학생인 나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을 꿈꾸며 수학, 과학을 멀리하는 문과생의 길을 걸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주 자연스럽게 과학이라는 학문에 관심 자체를 끊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꼭 문과생이 아니었더라도, 뭔가 고리타분하고 어렵고 복잡한 과학이라는 학문에는 관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런 내가 보기에 과학자라는 이름의 ‘과학을 하는 사람들’ 은 어딘가 나와 거리가 먼 존재 혹은 항상 이성적이고 냉정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이 아닌 로봇 같은) 엘리트들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왜 굳이 그런 생각을 했을까.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세 단어에서 주목할 부분은 ‘과학’이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이번 단 한 편의 연극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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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하는 사람들

 우선 나는 연극 중간중간에 가끔 생명과학, 그 중에서도 유인원에 대한 지식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분명 연극을 보러 왔는데 과학을 배워가게 된다니. 물론 이 말이 ‘그래서 이 연극이 지루했다’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극’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기에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녹여서 전달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지식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를 좋아해서 유인원에 대한 관심이 있던 나에게는 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극’을 중심으로 하는 매체가 다 그렇듯이 연극에도 많은 장르가 있다. 주로 국내에서 인기 있는 ‘라이어’와 같은 코미디부터, 멜로, 드라마, 철학, 고전 등. 하지만 ‘과학’이라는 장르(라고 불러야 할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으나) 가 녹아 들어가는 것은 확실히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도 자체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고 연극을 자주 보지 않는 나에게는 더욱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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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하는 ‘사람들’

 사실 이 연극의 과학 하는 ‘사람들’이라는 큰 주제를 실감시키는 것은 특이하게도 연극이 시작하기 전부터였다. 연극이 시작되는 4시 정각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두 세 명의 배우들은 아프리카 콩고의 어느 유인원 연구소라는 배경을 표현한 무대에 나와 커피를 마시고, 태블릿 PC로 게임을 하고, 서로 농담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현실의 배우가 아닌 극중의 인물로써 말이다. 본격적인 극의 시작 전, 뚜렷한 이야기는 없이 과학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 그 자체를 재치 있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연출이 극의 세계에서 흔한 연출 기법인지는 연극 초심자인 나는 모르겠으나, 신선했다. 어쩌면 이 연극이 굉장한 서사와 극적인 전개 없이 담담하게 관찰자가 보는 일상을 표현할 것임을 시사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연극은 대단한 갈등 요소는 없이 과학 하는 사람들이 그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 연극은 인간이라면 어떠한 인간이라도 ‘자연적인 것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많은 과학의 분야 중에서도 유인원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도 이러한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 같다. 유인원을 파악하고 이해하려 매일 분석하는 ‘관찰자’의 입장인 극중의 인물들은 어떤 면에서, 아니 혹은 거의 모든 면에서 유인원과 다를 바가 없어 ‘관찰자’의 입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까지 나는 생각했다. 성 본능을 억누르지 못해 이른바 ‘사고’를 치고, 새끼 침팬지를 살리기 위한 어미 침팬지와 같은 모성애 본능을 억누르지도 못하고, 드러밍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과학자들의 모습은 유인원과 다름 없게 표현된다. 결국 인간도, 유인원도, ‘자연’적인 것이라 그런 것일까?

 물론, 단지 인간을 본능이 전부인 그저 '동물'로 치부시킨 것만은 아니다. 연구소를 테마파크로 꾸며 돈으로써 생각하고 계산하려는 (모순적이게도 ‘인간적’이라기에는 한없이 가벼운 성격의) 손일호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인간이라는 동물만의 전유물과도 같은 본연의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면모 또한 보여준다.
 
 이렇게 본능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 아주 복합적인 인간이라는 동물을 연구하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또한 그들에게 우리가 바라보는 ‘유인원’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OUTRO

 대학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고 요즘 ‘융복합’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두 가지 이상의 사물, 산업, 기술, 조직, 문화, 학문 등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하나로 되는 것이라는 의미의 이 개념은 미래 사회에 또 하나의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학, 연극, 서정, 서사 그 안의 본능, 이성, 감성 그리고 동물과 인물이 한 데 ‘융복합’ 되어 있는 이 연극은 나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했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학문을 다시 보게 했다. 이런 연극은 언제나 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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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마띠아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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