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순간] 어려운 사랑

글 입력 2017.01.12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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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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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지, 정희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중)




 "사랑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사랑에 목말랐던 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찌나 달콤하게 들리던지.

 예전에 만났던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네 성격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실망했었어. 배신감도 들었어."

 우리는 다투는 중이었고, 연애 초반과는 다르게 변해버린 그에게 서운함을 토로하자 돌아온 말이다.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의 속 얘기에 적잖은 거절감을 느꼈다. 그의 말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도 내가 좋고, 더 좋아하기 위해 노력할 거라 말했다. 우리는 그날 화해했다. 그러나 그가 전처럼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도, 대화를 귀찮아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슬프게도 나는 그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가 주는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치를 살폈고 사랑을 구걸했다. 내가 이 말을, 이 행동을 했을 때 나를 떠나면 어떡할까 늘 불안했다. 그와 만나는 기간 내내 같은 갈등이 반복됐고, 관계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리고 예상하듯, 이 연애의 끝은 좋지 않았다.

 분명 그는 나를 사랑한다 말했다.
 과연 그는 나를 정말 사랑했을까?

 그가 사랑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내 겉모습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반했던 매력적인 여자는 내 모습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는 그게 전부이길 바랐겠지만 미안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나의 피상적인 모습에 매료되어 연인이 되었지만, 내면의 아픔, 상처, 트라우마같이 지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여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것들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 일부는 사랑했지만 전부를 사랑할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그와의 이별은 나에게 거절감, 상실감, 수치심을 남겼고, 한동안 나 자신을 사랑받을만한 구석이 없는 여자로 보게 만들었다. 왜곡된 사랑은 왜곡된 자기인식을 낳는다.

 욕심, 기대, 소유욕, 집착, 공허, 외로움은 때때로 사랑이라 불린다. 이것들은 타인을 자기가 원하는 틀 안에 끼워 맞추려는 습성이 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할 때, 상대를 바꾸려 할 때부터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왜곡된 사랑은 관계를 망치고 인간성을 훼손한다. 우리에겐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는 과정이자 그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공감하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내 세계의 공간을 넓히는 과정이다.

 "사랑해"라는 말은 여전히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이젠 마냥 그렇지 않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연인 관계에서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욕심 없이 바라보는 것,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소유하려 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사랑이 어려웠으면 좋겠다. 쉬운 사랑만큼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없으니까.


[장의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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