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부자들2’가 나오지 않는 이유 [문화전반]

글 입력 2017.01.1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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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정치-경제-언론의 유착관계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내부자들’이 공개되었다. 우민호 감독의 연출아래 명배우들의 명연기와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게 마음을 울리는 대사들로 70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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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구(이병헌 분)는 여러 회사를 가진 회장이지만 그는 조직폭력배로 시작한 깡패다. 그를 여러 정치운동과 기업의 부패를 덮는 데 사용하며 이끌어준 사람은 언론사의 정치부장으로 있던 이강희(백윤식 분)였다. 이강희는 안상구 외에도 안면이 있던 장필우(이경영 분)를 정치권으로 개입시키고 그 스폰서로 대기업 회장인 오수현 회장(김홍파 분)을 소개시켜준다. 안상구는 그 뒤에서 셋에게 위협이 되는 세력이나 개인을 뒤처리하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제거한 사람으로부터 오회장과 장의원이 개입된 비자금 장부를 입수하게 되고, 덜미가 잡혀 손목이 잘린다. 이후에도 매수된 경찰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지만 복수를 꿈꾸는 안상구 앞에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이 나타난다.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은 안상구는 우장훈에게 비자금파일을 넘기지만 이강희는 안상구의 과거를 들추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난다. 안상구는 우장훈에게 그 셋의 관계에 직접 들어갈 일종의 연극을 요구하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셋의 유희(성접대)자리에 초대받은 우장훈은 그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해 셋의 관계를 폭로하는데 성공한다. ‘내부자들’은 공개되었을 당시 러닝타임이 130분이었으나, 이후 편집이 되지 않은 러닝타임 180분의 ‘내부자들:디오리지널’을 공개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정치-경제-언론의 유착관계를 비롯해 학연, 지연 등 인맥을 우선시하는 모습, 성접대 등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꼬집었다며 열광했다. ‘내부자들’은 감독에 의해 같은 배우들을 통한 후속편이 예정되어있음이 알려졌으나, 최근 우민호 감독은 JT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후속편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서로 구린 놈끼리 같이 가야지 냄새를 풍겨도 괜찮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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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자금을 담당하는 오수현 회장의 말이다. 정치-경제-언론의 끈질긴 유착관계는 서로 구린내가 나는 걸 알면서도 참을 수 밖에 없는 비밀을 공유한 사이라서 가능한 관계였다. 그런 관계기에 영화로 쓰였다고 생각했고, 그런 영화를 뛰어넘는 현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온 국민이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민간인과의 관계와 그 이익을 위해 국익을 이용한 사태 앞에서 처음 공개된 한 동안은 뉴스가 막장드라마보다 재미있다는 씁쓸한 풍자도 유행했다. 3달이 넘은 지금 명확하게 밝혀진 의혹은 하나도 없다. 둘의 관계가 언제부터 유지되었는지, 왜 유지되고 있었는지, 그 관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사건들을 불러일으켰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건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연설문 대필이 시작이었지만 밝혀진 사건들은 더 기가 막혔다.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것을 시작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모든 국민들에게 가슴 아픈 기억이었던 세월호 사건까지. 우민호 감독이 ‘내부자들2’를 만들지 않겠다고 밝힌 12월 13일 JTBC와의 인터뷰 내용은 이렇다.


“‘내부자들’은 지금 이 시국에서는 오히려 현실을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그런 얘기를 종종 듣기 때문에 저도 좀 혼란스럽긴 하죠. 현실이 지금 (영화를) 훨씬 뛰어넘었으니까. (중략)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진 내부자들2를 같은 배우들을 데리고 다시 한 번 해볼까(했는데), 지금 이 사태 때문에 영화를 못 만들 것 같은데요. 이거보다 어떻게 더 잘 만들 수 있겠어요. 만들 수 있는 감독도 없을 것 같은데요?”



 ‘내부자들’의 주요 내용은 장필우 의원이 대선 후보가 된 직후에 모든 관계가 폭로된다. 게다가 그 관계는 장필우를 대선 후보로 만드는 과정에서 특정 기업을 위해 법안을 중재하거나, 언론이 편파적 기사를 쓰거나 하는 사건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현실은 감독이 말한 대로 영화를 뛰어넘었다. 구린내 나는 사건이 어디까지 이어져있을지 함부로 가늠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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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자들’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로 꼽히는 대사다. 다음 대사는 비교적 기억에 남지 않지만 역시 중요한 대사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뭐하러 개돼지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 질 겁니다.


 대중을 개돼지로 매도하는 언론인의 태도는 분명 분노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뒤의 대사는 곱씹어볼수록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대중을 개돼지로 매도하는 이유를 제공한 사람들은 바로 대중 스스로인 것이다. ‘내부자들’에서는 이 대사들 말고도 대중의 성격을 묘사한 많은 대사들이 있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씹을 만한 안주거리라는 대사 역시 불편한 진실처럼 다가온다. 분노라는 감정이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는 경우는 분노를 양분삼아 어떤 것을 바꾸려는 에너지로 치환하는 경우다. 저 대사를 그저 기분 나쁘게 들을 것이 아니라 대중을 개돼지로 매도하는 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대중 스스로 반성하는 태도 역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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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뭐든지 할 권리가 있어요. 주권자니까. 뽑았다가 물릴 수도 있어요. 지금 리콜하는거 아니에요? 탄핵을 지지한 건? 그래도 물건을 잘못 샀으면 잘못 고른 내 책임도 한 번쯤 생각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대통령을 욕하는 그 열정의 10분의 1이라도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우리 선거과정의 문제점과 우리 언론의 문제점과 우리 시민들의 정치를 보는 눈에 있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성찰해보는 데 쓰면 어떨까.

- JTBC<썰전> 中


 위의 발언은 12월 15일 JTBC 예능'썰전'에서 유시민의 발언이다. 잘못을 한 사람은 분명하다. 하지만 잘못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다. 잘못한 사람은 분명히 벌을 받아야하고, 원인을 제공한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대중을 개돼지로 볼 수 없도록 보는 법을 배우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이 불러온 참사를 역설적이지만 교훈으로 삼을 수 있어야한다.


정의? 대한민국에 여즉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긴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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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믿고 비자금 파일을 달라는 우장훈에게 처음 안상구가 얘기한 말이다. 글쎄. 과연 정의가 있기는 한 것인가? 이 나라에? 요즘 뉴스를 보면 나 역시 그런 의문이 든다. 기업, 정부, 개인 할 것 없이 사익을 위해 국익을 빼돌리기에 바빴다는 내용의 보도는 밝혀졌기에 통쾌하면서도 동시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뿌리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 것은 진실을 원하는 목소리들이 아직 광화문에서 각자 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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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은 대규모의 촛불집회 현장은 여러 의미에서 정의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했다. 진실을 원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불을 밝혔다. 그 수단인 촛불집회 역시 평화적으로 치러져 경찰들과의 충돌이 없었다. 이 집회를 계기로 집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역시 변화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정의’의 가치는 ‘달달’할 것이다. 정의가 구현된 사회는 살만할 것이다. 적어도 국민을 배신한 대통령 앞에 목 놓아 하야를 외치지는 않아도 될 테니까.

 ‘내부자들’ 영화의 결말은 이렇다. 폭로를 마친 우장훈은 검찰에서 나온다. 장필우, 이강희, 오수현은 교도소에 갇힌 듯하지만, 실제로 죄수복을 입은 모습은 이강희만 등장한다. 6개월 후 변호사 사무실을 연 우장훈 앞에 출소한 안상구가 나타난다. ‘저기 모히또에서 몰디브나 한 잔 하자.’라는 유쾌한 대사는 여기서 쓰인다.

 영화처럼 깔끔하게 결말이 났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현실은 오리무중이다. 10일 청와대에서 제출한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7시간에 대한 해명 자료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보완이 요구되었다. 탄핵심판도, 청문회도, 형법재판도 어느 누구 하나 자기 잘못을 시원하게 인정하지 않은 채 국민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기자들을 모으고 진행된 신년간담회를 보았을 때 나는 대통령이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치에 박식한 편도 아니고, 평소에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려온 일상의 여러 분야들은 결국 사회적 시스템 내에서 영위할 수 있는 것이기에 국가를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길 바랐다. 사태의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가장 추한 꼴로 내려가는 모습만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편,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이 사회에 정의를 바라는 마음이 모아지길 소망한다.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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