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The Bell [시각예술]

적막을 깨는 불행의 경고음
글 입력 2017.01.0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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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화벨소리는 익숙한 존재였다. 하지만 휴대폰의 발전으로 인해 어느 샌가부터 아날로그 전화기의 ‘따르릉’하고 울리는 벨소리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 역시도 이 소리가 귀에서 희미해질 무렵, 한 영화 속에서 귀를 찌르는듯한 날카로운 ‘따르릉’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 이 찌르는듯한 소리를 선사한 영화는 < The Great Gatsby >(2013)였다. 

  Gatsby는 자신의 사랑 Daisy를 위해 그녀의 집이 마주 보이는 곳에 집을 사고, 주말마다 많은 돈을 들여 시끌벅적한 파티를 열었다. 단지 그녀가 자신을 알아봐주길 바랐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Daisy의 사촌오빠인 Nick에게 접근해 그녀와 차 약속을 잡아줄 것을 부탁한다. 이후 과거의 연인은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고, 추억에 잠긴다. 그러나 Gatsby의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Daisy와 그녀의 남편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고, 모두에게 이용당한 채로 Gatsby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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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Great Gatsby >영화 곳곳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스산한 분위기가 흐른다. 높고 싸늘한 음향은 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이 음향의 가운데에는 늘 ‘따르릉’하는 전화 벨소리가 있다. 영화 속에서 ‘따르릉’하고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조용한 적막을 깨며 등장한다. 그리고 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함께 동반한다. 전화 벨소리는 고요를 깨는 역할을 하며, 불행에 대한 복선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이 벨소리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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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르릉’ 소리가 가져오는 첫 번째 불행은 Gatsby가 가진 어두운 사실들이 Nick과 Daisy에게 점점 폭로된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Gatsby와 Nick, 그리고 Daisy는 Gatsby의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5년 전, Daisy가 Gatsby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를 읽으며 아련한 감상에 잠긴다. “You saved my letters.”라고 말하는 Daisy의 목소리는 옛 사랑에 대한 감상에 빠진 달콤한 여인의 목소리다. 하지만 추억에 잠기는 것도 잠시, 적막을 깨는 날카롭고 높은 ‘따르릉’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뒤에는 따라 나오는 높은 소리가 반복되는 배경 음악은 편안한 분위기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바꿔버린다. 낮게 읊조리는 Gatsby의 목소리 뒤로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창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린다. Nick이 창문을 닫지만, 바람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All right.”라는 말을 끝으로 Gatsby의 통화가 끝나고, 동시에 오르간이 연주된다. 처음은 높고 불안한 음색이지만, 오르간 연주는 곧 발랄하게 바뀌고 영화의 분위기도 같이 전환 된다.


  이 2분간의 시퀀스(sequence)는 편안했던 영화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불안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고 끝에서는 다시 발랄한 분위기로 돌아간다. ‘따르릉’은 여기서 Gatsby가 하는 일에 대한 은근한 암시를 보내는데, 이 ‘따르릉’ 소리를 둘러싼 스산한 분위기는 그의 일(검은 돈을 세탁하는 일)이 그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것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영화전반에 걸쳐 ‘따르릉’소리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 전화들은 모두 미국 전역에서 Gatsby를 찾는 전화들로 그의 일과 관련된 전화들이다. 따라서 ‘따르릉’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그의 부도덕한 직업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Gatsby는 부도덕한 그의 일로 인해 Daisy의 남편인 Tom에 의해 궁지에 몰리고, 화를 억누르지 못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데이지를 실망시킨다. 결국 거듭되는 ‘따르릉’은 그의 검은 그림자를 은근히 드러냄으로서 Gatsby가 Daisy의 사랑을 잃게 될 불행의 서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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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르릉’ 소리가 가져오는 두 번째 불행은 Gatsby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은 영화에서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비극을 알린 소리도 바로 ‘따르릉’ 울리는 전화벨 소리였다. Daisy가 자신을 떠날 계획을 짜고 있는 것도 모른 채, Gatsby는 그녀의 전화를 기다린다. 수영장에 들어가는 Gatsby의 모습을 시작으로 높고도 날카로운 배경 음악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전화하기를 망설이는 Daisy와 총을 든 그림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자의 실루엣은 초조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한편, 수영을 하던 Gatsby는 ‘따르릉’하고 울리는 소리에 Daisy의 전화를 기대하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집사가 전화를 받자마자, ‘쾅’하고 총성이 울린다. 총성을 기점으로 하여 높고 날카롭던 배경음악은 낮고 비장하게 바뀐다. “Daisy.”를 외치며 수영장 속으로 빠지는 Gatsby의 모습 사이로 Daisy의 집이 겹쳐지고, 그가 쓰러질수록 Daisy의 집은 화면에서 멀어져간다. Daisy의 집이 화면에서 멀어지는 물리적인 거리는 사실상 Gatsby에 대한 Daisy의 마음의 거리 또한 멀어진 것을 의미한다. 전화를 건 사람이 그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Gatsby가 완전히 수영장에 가라앉자, 내팽겨 처진 수화기 속에서 “Hello, hello, hello, is everything all right?”이라는 Nick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수영장 바닥으로 가라앉는 Gatsby의 모습 위로 Daisy가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는 모습이 겹쳐진다. 이 장면에서 분명하게 Daisy의 사랑을 얻지 못한 처량한 Gatsby의 신세가 드러난다. 또한 Nick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리던 내팽겨 처진 수화기는 헌 신짝 버리듯 버려진 Gatsby의 비유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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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tsby와 관련된 불행 이외에도 전화 벨소리는 영화 속 인물 간의 배신과 불화를 상징하기도 했다. 영화 초반, Daisy의 집에 걸려오는 저녁의 전화는 남편의 내연녀가 건 전화였고, 이는 Daisy와 Tom의 불화를 상징했다. 또한 Gatsby의 죽음 이후, Nick이 Daisy에게 건 전화는 Gatsby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그를 버린 Daisy와 그녀의 남편의 냉정함을 확연히 확인시켜주는 계기였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날카로운 전화의 ‘따르릉’ 소리는 스산한 배경음악과 더불어 불행을 암시한다.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따르릉’ 소리는 불행을 나타내는 일종의 경고음인 셈이다.  
   

  원작 소설도 소설이지만, 나는 이 2013년 버전의 '위대한 개츠비'를 참 좋아한다. 매년 생각이 나서 복습을 하곤 하는데,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관계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이 때문에 늘 영화를 보고 나면 무력하거나, 허무하기도 하고 나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 '템테이션'과도 매우 비슷하다. 성공에 따른 물질적인 부와 이를 둘러싼 피상적인 인간관계의 허무를 잘 보여준다.  Daisy와  Gatsby의 관계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도  Gatsby 스스로가 검은 돈을 세탁하는 때 묻은 일을 하는 동시에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감을 가진 모순적인 인물이기에 영화에서 오는허무감은 더욱 커진다.  


*사진 출처 : 영화 < The Great Gatsby >(2013)  , 네이버 영화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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