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해변의 카프카-우리는 지금부터 가장 터프한 15살 소년이 되어야합니다. [문학]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산다는 것. 그리고 꿈꾸는 것, 책임져야 하는 것.-터프하게.
글 입력 2017.01.0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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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대부분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하고 서술도 그런 경계를 넘나든다. 그래서 무엇이 현실이고 꿈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해변의 카프카'역시 현재 우리의 이야기면서 꿈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문인지, 이번 소설도 읽을 때마다 꿈에 젖은듯한 느낌을 받았고, 다시 한번 펼쳐보았을 땐 더 새롭고, 깊은 맛을 느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새로웠다. 그 각각의 페이지들은 마치 설렘을 가득 안고 맞추어가는 퍼즐과도 같았다. 대부분의 하루키의 장편소설에서는 챕터가 바뀔 때 마다 인칭의 시점도 달라지는데, 해변의 카프카 역시도 그렇다. 나오는 인물을 달리하며 독립적으로 챕터가 나누어지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끝으로 갈 수록 결국엔 서로 연결되어 결말을 만들어 낸다. 독립성들이 모여 하나의 합쳐진 결말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다가오는 또 하나의 희열이 되기도 했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해서 읽다보면 발견한 것이 또 있다. 하루키의 잡문집을 보면 그는 재즈바를 수년간 운영한 적이 있다 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다. 때문에 소설에도 음악이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여지없이 그런 음악의 제목들이 책의 제목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아직 모든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발견 중에 있지만 적어도 지금 까지 읽어본 하루키의 장편 소설의 대부분은 소설 속에 등장했던 음악의 제목이기도 했다. 때로는 그 음악이 큰 핵심이 되기도 하기 때문인지, 제목덕에 제목이 소설 안에 등장할 때면 더욱 집중해서 보기도 한다.

'해변의 카프카' 역시 마찬가지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에키 상이 작곡한 곡의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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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는 그동안 하루키의 장편소설에 등장했던 대부분의 주인공들과 비교했을 때 20대 이상의 성인이 아닌 15살의 청소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한데 15세의 소년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터프하고, 성숙한 면이 보였다. 그가 이 소설에 15살의 소년을 등장시킨 것은 다름이 아닌 그들이 아직은 변화할 가능성이 많은 존재이며, 그들의 정신 상태가 어떤 방향으로 고착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15세의 소년은 아이의 종점이며 어른의 시발점이기도 하다.-몸은 어른, 마음은 아이인 채로 인생의 허무와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뜨며, 사랑과 성의 열병을 앓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방황하는 나이였기에.



15살이라는 연령대에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격렬하게 왕래하고, 세계의 현실성과 비현실성 사이를 빈번하게 왕래하며, 신체는 도약과 실추 사이를 반복하기 일쑤입니다. ... (중략) '해변의 카프카'는 열다섯 살 소년의 눈을 통해서 , 그와 같은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한 것입니다. 다무라 카프카 군은 곧 나 자신이며, 독자 여러분 자신이기도 합니다.

-'해변의 카프카'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메세지.



다무라 카프카는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카프카는 체코말로 까마귀라는 뜻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다무라 카프카의 분신은 까마귀소년이라 불렸다.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는 다무라 카프카는 아버지의 저주로 부터 벗어나기위해, 터프한 15살이 되기 위해 도쿄의 자신의 집을 벗어난다. 가출을 한 후 카프카가 간 곳은 고전 시문학집들을 소장한 전통있는 고무라 기념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부터 모든 일들이 시작되고 결말을 짓는다. 다무라는 그곳에 머물며 적지않은 신비스러운 일들과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고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도 가지않지만 또 시작이기도, 끝이기도 한 죽은 사람들이 사는 세계라고 불리던 이계異界에 들어갔다 빠져나와 다시 그의 삶이기도 한 우리의 삶이기도 한 재생의 삶을 위하여 터프하게 나아간다. 죽음이라는 형태로 확실하게 상실된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사랑하는 사람이 남겨준 '해변의 카프카'라는 음악의 배경이 된 그림을 든 채로 다무라 카프카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던 일상생활, 그리고 그의 남겨진 도쿄의 집으로 향하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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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해변의 카프카' 까마귀소년(왼)과 다무라카프카 (오).)


'해변의 카프카'를 통해 무라카미하루키는 성, 폭력(무의식), 그리고 사랑과 운명을 재조명하였다.



운명이란 끊임없이 진로를 바꾸는 모래 폭풍과 같다. 마치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모래 폭풍은 아무리 네가 도망치려 해도 진로를 바꾸어 계속 너를 쫒는다. 그 폭풍은 먼 곳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는 것뿐이다.

-해변의 카프카 上 중에서.



무의식과 연결지어 권택영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무의식은 공격적인 '성적 쾌락의 욕망'이라고도 하고 정신분석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의 근원이 되는 심적 에너지와 모든 본능적 에너지의 본체로서 생명력 또는 성욕으로 풀이되기도 하는 리비도다....(중략) 그리고 무의식에서 인간은 하나이다. 이 무의식은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카프카와 나카타를 비롯해 양성성의 오시마, 비극적인 사에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까지 하나로 묶는다. ... 하루키 문학에서 몸은 무의식의 집이고, 성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배출되는 폭력이다."



하루키의 소설을 보다보면 꼭 무의식 중 성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것은 어찌보면 무의식 중에 가져온 소망일 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 폭력일 수도 있다.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고 결국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주인공은 거의 대부분은 자의적으로, 책임을 진다.

이런 부분이 하루키 소설의 빠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데, 어쩌면 우리는 늘 꿈꾸며 살고 또, 꿈으로 부터 책임감이 나온다 라고 말하던 하루키이기에. 무의식이자, 꿈이자, 어쩌면 현실이기도 한 그 부분은 즉, 그 영혼의 어두운 경로를 통해 숨어들어온 것이고, 그렇기에 결국은 무의식의 집이라 불리는 몸의 소유자가 책임져야만함을 말하려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책임을 진 우리자신이자 하루키이자 카프카의 정신은 어떠한 이야기 속에서 형상화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며 그와 동시에 다음 성숙한 단계로 진입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윽고 까마귀 소년이 내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는다. 그러자 모래폭풍은 사라진다. 나는 아직도 눈을 감은 채로 있다. "넌 지금 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넌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 없으니까." 

-해변의 카프카 上  중에서.



[정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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