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퇴폐와 순수 아니 관능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1.06 15: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전시회 갈래?
 
 이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생각은 2가지. 누구의 전시회인가. 그 사람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두 생각의 답은 누구의 전시회든 공부를 했든 안 했든 일단 가라지 않을까. 예술은 미술이 영혼을 치유한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이해 차원에서 벗어나 단지 그 존재로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어떤 영향을. 이 두 답의 목적을 추구하는 전시가 미디어 아트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예술 앞에서 정적인 관람이 아니라 동적으로 참여하는 것.
 

 
움직이는 미술
 
KakaoTalk_20170106_134511670.jpg
 

 정적이 아닌 동적인 전시회. 미디어 아트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미디어 아트의 선두주자 미디어앤아트는 고흐 전 등 4번째 전시회를 개최했고 이번 총 260여 점의 작품으로 구스타프 클림트 전을 개최했다. 장소는 성수역 근처 S-FACTORY. S가 어떤 말의 약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추구한 관능과 격렬의 S라고 생각하면 S는 매력적인 알파벳이다.


 
황금빛 관능
 
그림1.jpg
 

 이 단어의 주인은 분명히 구스타프 클림트다. 소위 아름다운 황금빛 연인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인 < 입맞춤 The Kiss (1907~1908) >. 누군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인 이 작품은 클림트의 황금시대 정점을 상징한다. 우주 한 귀퉁이, 시공간을 초월한 어느 곳에서 하나로 연결된 연인. 두 사람의 키스는 사랑의 무한함과 영원함을 표현한다. 키스하는 순간에 온 세상이 멈춰버리는 느낌은 이 작품에서 현실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는 순간 세상은 멈추고 온 감각은 그 입술을 향한다. 절정이며 순수의 순간. 이 순간을 보는 이는 퇴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보드라움을 당신이 느끼는 순간 말이다. 사랑의 다양한 이면을 보여주는 구스타프 클림트.


 
미디어 아트 감동의 이면
 
 자신을 알고 싶으면 자신의 그림을 보라고 말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감상한다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 영상은 뭐지. 클림트 인사이드 전이 90분 동안 클림트의 작품세계로 빠져들게 하지만 이 생각은 전시회를 개최하는 사람들의 목적이자 방향일 뿐이고 재해석된 작품 앞에 있는 관객들도 그럴까.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는 작품을 보고 진짜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클림트 인사이드 전의 개최배경을 말했지만, 장소의 이름과 달리 이번 전시는 실패작인 듯하다.

 
KakaoTalk_20170106_134504712.jpg


 프랑스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여행객들이 넘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앞에 서서 진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그 작품을 통해서 영감 혹은 느낌, 더 나아가자면 삶의 전환점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해가 아닌 개개인이 작품을 해석하는 것. 예술이 가진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허나 이번 클림트 전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떠준 밥숟가락을 거부하는 어린아이처럼 클림트의 작품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진다. 아니 이해할 수 없어진다. 미디어 아트가 추구하는 동적인 이해가 아니라 순간 소비되는 이해랄까.


 
입맞춤 그 강렬함
 
 9개 공간으로 이루어진 전시회의 8개 공간을 걸어오면서 클림트 전에 대한 실망을 할 무렵 클림트의 대표작인 < 입맞춤 The Kiss (1907~1908) >를 마주한다. 미디어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명화의 완전한 느낌을 주진 못하지만, 그 황홀함을 앗아가진 못한 듯하다. 60억 인구가 있다면 60억 개의 사랑이 있다는 말을 조롱이라도 하듯 연인이 입을 맞추는 순간은 관람객을 공감시킨다. 설렘이자 합일의 순간. 에로틱의 절정이자 향연. 태양을 바라보듯 눈부시고 따뜻하다.
 
 미디어 아트의 아쉬움이 이 작품의 강렬함으로 해소된다. 하지만 그의 진짜 그림을 보고 싶은 열망과 아쉬움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는다. 단지 명화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는데 의의를 둔다.



이종국_에디터9기.jpg


[이종국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