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대한 낙서전_낙서와 예술의 경계에 서다

대중과 그래피티, 괴리감과 친밀감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글 입력 2016.12.2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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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부터 내 눈에는 그래피티가 낙서로 보이지 않았다. 공공기물에다가 그림을 그려 놓았기에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것이지, 그 자체는 낙서로 치부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종 건물의 바깥 외벽이나 다리에 있어야 할 낙서가 엄숙한 분위기를 강요하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면서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기는 했다. ‘진짜’ 그래피티 같지 않았다.
 
 


각각의 사물은 그 각각이 본래 위치한 장소에 있을 때에 진짜 그 사물로서 존재한다고 본다. 뒤샹의 변기가 미술관에서는 예술 작품으로 여겨졌듯, 어떤 사물이 위치한 주변 환경과 맥락이 그것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과연 같은 형태를 지닌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진짜 원래의 그래피티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지는 의문이 들었다. 단지 그것들을 재현해놓은 정도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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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으로는 이런 낙서의 예술로의 승화가 과연 사람들에게 예술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했던 그래피티의 본래 가치와 일치하는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일상의 영역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낙서들이 직접 찾아 가서 돈을 내고 봐야하는 미술관에 자리 잡으면서 접근성이 더 떨어졌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정해진 의도대로 작품을 감상하게끔 하는 미술관의 권위적인 특성도 함께 곁들여져 거리감이 한층 심화되기도 했다. 실내의 안락한 장소를 획득하면서 그래피티 그 자체의 위상은 더 높아졌을지 몰라도, 다양한 공간과 색다른 맥락 속에서 작품을 즐길 여지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전시는 단순히 그래피티의 위상을 높이려 했다기보다는, 그래피티에 대해 포괄적으로 소개한다. 그래피티가 그동안 다양한 장소에서 그려지면서 예술이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어필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전에 그래피티를 그저 기물파손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정은 그래피티를 하위문화, 저질문화에서 예술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자기의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물감을 뿌려놓은 것이 아니라, 그들도 의도를 가지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스스로 발전해나가려 했다는 것을 보다 폭넓게 드러내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그들은 다양한 상업 브랜드와 협업하여 예술이 우리의 일상과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예술과 대중 사이의 심리적 간극을 없애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낙서를 전시장에서 보며 그래피티의 역사를 조망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 과연 전시장에 있는 낙서가 진정한 그래피티였는지는 의문이 드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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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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