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스프레이'_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가?

글 입력 2016.12.28 20: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스프레이_극단초인_포스터.jpg
 
독특한 연극이었다. 주인공의 키만 한 정육면체의 소품을 다채롭게 사용하여 무대를 가득 채우기도 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그 상상력에 놀란 채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나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한 편으로는 오늘날 우리들과 너무나 닮았기에 주인공의 모습은 더욱 처량하게 느껴졌다.

 
KakaoTalk_20161126_115951603.jpg
 

주인공은 오늘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짓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거짓은 계속해서 또 다른 거짓을 낳고, 가면은 점점 두꺼워진다. 모든 가면을 벗고 자기 자신 그대로로 존재해야할 자신의 집에서조차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순간, 주인공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게 된다.
 
주인공은 직장에서 항상 밝은 얼굴로 웃으며 손님을 맞는다. 아무리 손님이 그를 귀찮게 하고 결국은 아무 것도 사지 않는다 해도 그는 절대 싫은 내색 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가면이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생존을 위한 가면인 것이다. 소개팅 자리에서도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쓴다. 상대방 여자와 제대로 된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저 주기적으로 상대의 말에 끄덕일 뿐이다.
 
그도 가면을 벗으려고 시도하긴 한다. 그러나 가면을 벗고 타인에게 다가갈 때에, 그는 소외당하고 상처 받을 뿐이다. 일이 끝난 후 직장 동료들과 회식 자리에 가고 싶어 하지만, 동료들은 모두 따라 가는 척 하다가 주인공만 놓고 가 버린다. 옆집 여자에게 소음에 대해 항의할 때에도, 그녀는 심드렁하게 자신의 잘못을 회피할 뿐, 죄송하다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의 자아가 발휘되는 순간에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된 적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더더욱 가면 속에서 살게 되고 자신만의 동굴 속에 들어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숨긴다.
 
자신의 집에서조차 진정한 ‘나’가 없는 듯 자신의 시간을 누릴 수 없고, 옆집 여자로부터 무시 받은 그는 이제 스스로를 속인다. 옆집 택배를 잘못 가져온 후 이것 역시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며 옆집 고양이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의 실수가 아닌 것을 증명하려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에 의한 것이었다며 스스로의 책임을 거부한다. 아무런 책임도, 부담도 지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에서 그가 분명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KakaoTalk_20161126_120017510.jpg

 
그는 진짜 자신의 모습도 숨기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그런 의지와는 달리, 주인공의 축축한 손은 그의 내적 심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신이 긴장하고 당황했다는 내면을 들키고 싶지 않은 그는 습관적으로 손을 닦지만, 긴장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손에 땀이 난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축축한 놈’이라는 꾸지람을 듣고 자란 그에게는 이러한 습성이 노이로제와 같다. 극도의 공포감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땀 냄새 제거용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이러한 땀마저도 없애려고 한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자아의 본모습이 실현되는 것을 가려버리면서 그는 완전하게 자아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가면 속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과연 나는 정말 나답게 살고 있는지,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과연 ‘나’란 무엇인지 말이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이 과연 진짜 나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과연 주인공을 단순히 노이로제 정신병 환자로만 몰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소통의 단절과 소외, 고립의 필연적인 인과가 아니었을까? 삭막해져가는 오늘날 점점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예은_에디터9기_(1).jpg
 
[이예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