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기억을 팔 수 있다면? - 국경시장 [문학]

글 입력 2016.12.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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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이란 ‘뇌에 받아들인 인상, 경험 등 정보를 간직한 것, 간직하다가 도로 떠올려내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떤 기억은 너무나 행복해서 오래오래 마음속에 담아두고, 힘들 때마다 꺼내보고 싶을 정도로 소중하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슬프고, 우울하고, 깊은 상처로 남아 영영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기도 하다.
 

만약 '기억'을 팔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보름달이 뜨는 날, 국경 근처의 한 마을에는 야시장이 열린다. 이 야시장에서는 오직 어린아이들만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그 물고기의 비늘이 곧 돈이다. 이 비늘을 얻으려면 환전소에서 자신의 기억 일부를 팔아야 한다. 주인공과 두 친구 로나와 주코는 우연히 국경 근처에서 길을 잃고 이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된다. 로나와 주코는 자신들이 갖고 있던 돈을 쓰지 않고도 비늘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선뜻 자신의 기억들을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어렸을 적 기억부터 팔았다. 어차피 잘 생각나지 않는 기억이었으니까. 이후 나쁜 기억들을 팔았다. 머릿속에 있던 나쁜 기억을 팔아 맛있는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들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꽤나 좋아 보였다. 평소 불쾌하고 우울했던 기억들이 사라지고 좋은 기억들만 남을 수 있는데 오히려 더 좋은 것은 아닐까? 로나와 주코는 벼락부자가 된 것처럼 수시로 환전소를 드나들며 기억들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쁜 기억들부터, 나쁜 기억들이 다 떨어지자 가장 흔한 기억들을, 그리고 또 다른 기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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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주인공은 선뜻 자신의 기억을 팔지 않았다. 가지고 싶은 물건도 딱히 없었고, 무언가 내키지 않아서였을까. 그러던 찰나 어릴 적 자신이 만들었던 가면과 비슷한 물건을 발견하고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기억을 팔고 물건을 사게 된다. 이후 몇 번에 걸쳐 환전소에 드나든 후 급 친구들 생각이 난 그는 시장을 돌며 그들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로나를 발견했는데, 로나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는 갖고 있던 메모를 한 장 보여주는데 거기에는 “이 종이를 읽을 때쯤 나는 너를 알아보지 못할 거야. 기억을 모두 팔아 이 가게를 샀거든.” 라고 적혀있었다. 자신의 기억을 모두 팔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로나는 아무런 기억도 없이 텅 빈 눈으로 그곳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주코는 어떻게 되었을까? 주코는 환전상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곧 강으로 뛰어들었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지만 물고기들은 열다섯 살 미만의 소년에게만 잡힐 수 있다. 결국, 그는 기억을 잃어버린 텅 빈 육체를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에게 물어뜯겨 죽고 만다.
 
  그들의 파멸은 결국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자신의 기억을 물질적 풍요와 맞바꾼 대가는 영혼 없이 육체만 남아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닌 공허한 존재였다. 나쁜 기억을 지우고 좋은 기억들만 간직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나쁜 기억들이 없다면 좋은 기억들이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당연한 것처럼,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지게 된다. 국경시장에서처럼 나쁜 기억들을 모두 팔고 나면 좋은 기억들은 덜 좋은 기억으로, 더 덜 좋은 기억으로 가치가 매겨지고, 애초에 모든 기억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무의미해져 버릴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러한 환상의 세계를 통해서 좋은 것만 간직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송송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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