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원망하지 않으리 - 올드위키드송

글 입력 2016.12.28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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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이현욱_1.jpg
 

20대 중반의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 스티븐 호프만. 그는 피아노 레슨을 받을 목적으로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하였으나 뜻하지 않게 반주와 성악 레슨부터 받게 된다. 그가 받을 수업은 50대 후반의 오스트리아 빈 출신 보컬 교수 요세프 마슈칸의 수업. 살아온 환경, 나이, 성격 등 공통점이 희박해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는 예상보다 더욱 순탄치 않았다. 첫 만남부터 마슈칸의 연주를 지적하던 스티븐. 그 모습은 마치 가시털을 잔뜩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는 고슴도치와 같았다. 

반대로 조금은 무례해 보이던 스티븐의 행동을 호탕한 웃음으로 넘기며 그의 까칠함을 은근슬쩍 꼬집던 마슈칸은 능글맞은 곰처럼 보였달까. 온몸으로 ‘당신 마음에 안 들어’ 라는 분위기를 내뿜는 스티븐에게 있어 마슈칸은 꽤나 마뜩잖은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친근한 사이인 양 스킨십을 시도하며 태연하게 다음 레슨 일정을 잡아댔으니. 척 보아도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이니 음악적 견해가 대립을 이루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지사일 터. 이들은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을 통해 서로를 탐색하고 부딪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악보에는 아다지오라고 적혀 있지만 전 아다지오를 들은 기억이 없네요  -스티븐-
네가 경험한 걸 음미할 시간이 필요해  -마슈칸-
  

어린 시절부터 영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스티븐. 그런 주변의 평가가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아니면 남들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소비하다 지쳐버린 것일까. 그는 감정이 결여된 채, 오로지 악보에 쓰여진 대로 정확한 음정과 박자에 맞춰 연주하기 바쁘다. 때문에 본인의 해석을 담아 제멋대로 연주하는 마슈칸을 참지 못한다. 속이 텅 비어버린 이 젊은 예술가에게 마슈칸은 이야기한다. 삶이란 명확할 수 없으며 슬픔과 환희의 결합을 느끼는 것. 그것이 예술의 핵심이라고. 그는 자연스레 오스트리아와 한국을 예로 들며 몇 세기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은 슬픔과 고통이 역설적으로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묘하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지 않나. 인내와 고통, 슬픔처럼 인생의 희로애락이 깊이 담긴 예술일수록 더 진한 향기를 풍기는 법이니. 마슈칸의 도움 아래 스티븐은 그저 남을 흉내 내는 테크니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 오롯이 음악을 느끼는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가시는 길에 아름다운 다하우를 구경 하세요
  

연극의 2막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한 가지 공통점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것은 바로 유대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유대인 강제수용소가 있는 독일의 다하우. 이곳을 다녀온 뒤 스티븐은 유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와 같은 팻말이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비참했던 수용소의 모습을 상상했던 것과 달리 그는 예쁘게 포장되고 가려진 진실을 마주한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상황. 과거 독일보다 더 많은 나치에 있었던 나라. 설상가상 나치 장교 활동 이력이 있는 쿠르드 발트하임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현실. 스티븐은 마슈칸마저 나치 부역자가 아니었는지 의심하기 이른다. 
  
하지만 마슈칸의 팔에 새겨진 진실은 43445. 그 역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던 것이다. 그가 유독 반유태인 적인 발언을 하며 과장된 언어로 자신을 포장했던 이유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내 말이 날 찌르지만 다른 사람이 날 찌르는 것보단 덜 아프니까’ 그의 절절한 고통을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가면을 쓰고 광대처럼 행동했지만 그의 가슴에선 피눈물이 흘렀으리라. 그는 말한다.
'Rest in peace.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지' Rest in peace..편히 잠드소서. 그가 내뱉은 말은 화살처럼 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아. 마슈칸. 살아남은 자의 삶이란 이다지도 고통스러운 것일까. 그는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죽음과 맞바꾼 고통 속에서 살아왔을까. 그러나 이제 그는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 속을 빠져나올 준비를 한다. 갈등과 화해를 겪으며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스티븐과 마슈칸. 마지막 수업에서 함께 한 두 사람의 하모니는 잠시 코끝이 찡해질 만큼 먹먹했다. 상처를 마주하고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사람의 올드위키드송, 마지막 수업은 이렇게 끝이 난다. 
  

끔찍했던 과거의 악몽이여. 
이젠 다 깊이 묻어 두리니 
내게 커다란 관을 주오. 
그 관은 저기 하이델베르크의 맥주 통보다 
훨씬 더 커야 하리라. 
내 관이 왜 저렇게 크고 무거웠는지 그대는 아는가? 
내 그 안에 사랑 모두를 
그리고 아픔 모두를 묻어뒀기 때문이라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대사들, 배우들의 호연, 서정적인 슈만의 노래들로 눈과 귀가 즐겁던 공연이었다. 특히 연극은 우리에게도 청산하지 못한 과거와 일본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상기시켜 보는 내내 씁쓸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기분을 허탈하게 한 것은 한국의 후진 젠더의식을 다시 한 번 몸으로 체감했다는 점이다. 미성년자 성매매로 구속됐던 배우가 영화와 연극 판에서 버젓이 활동하는 꼴이라니. 
  
관객의 대부분이 여성인 공연계에서 성매수로 물의를 일으킨 배우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 관객들을 호구로 본다는 뜻이 아닌가. 초대권과 할인권을 남발하면서까지 그를 캐스팅한다는 것은 단순히 여성 관객들을 무시하는 처사를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성차별주의, 남성 중심 문화, 성매매, 성폭력 문화에서 예술계조차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거나 배우의 캐스팅을 제외하면 굉장히 좋은 연극이었음을 말해두고 싶다. 집에 돌아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슈만의 노래를 반복하며 송곳 같은 대사들을 곱씹을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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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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