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위대한" 낙서展

글 입력 2016.12.2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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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위대한" 낙서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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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그래피티’에 무지했습니다. 프리뷰를 쓰면서야 그래피티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을 잡았을 뿐. 제게 있어 그래피티하면 떠오르는 것은 스프레이 페인트로 펑키하게 쓰여진 문구나, 그림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낙서전’에 무엇이 전시되어 있을지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전시’라고 한다면 무언가 흐름을 가지고, 같은 듯해도 다른 것들을 선보이는 곳인데 그래피티 내에서 어떠한 다른 것들이 있을지 저는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거리에 있어야 하는 작품들을 전시장으로 들여놓았다는 것은 상상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ZEVS"

그러나 이런 걱정은 전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취를 감췄습니다. 제가 처음 마주한 작가, 제우스의 작품은 단지 그 압도적인 규모에 감탄하게 만들었을 뿐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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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들이랑 함께 작업했다는 이 작품은 그래피티에 전반에 대한 설명이 있는 공간을 벗어나면 바로 들어서게 되는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데요. 딱 들어서자마자 눈을 사로잡는 거대한 그래피티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게 합니다. 보시면 루이비통의 로고를 흘러내리게 한 작품인데요. 제우스의 작품은 이렇게,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로고가 흘러내리는 스타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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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간판들에 빗방울이 맺혀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던 제우스는 분명 흘러내려서 제 형태가 아님에도, 우리가 브랜드 로고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데요. 그만큼 그 브랜드 로고의 시각적 지배력이 강하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녹아내리는 듯한 모습으로 흘러내리게 만들어 그것의 영속성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소비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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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그의 활동은 생태계로까지 확장되어서, 토탈이란 석유회사가 아프리카쪽 바다를 오염시켰음에도 배상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며 위와 같은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요. 토탈 회사의 로고가 흘러내려 마치 석유처럼 바다에 흘러들고, 오염시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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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그의 후기 작품 스타일이고, 초기 작품 스타일은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었는데요. 사진으로밖에 남아잇지 않지만, LG전자와 협력해서 한 퍼포먼스 영상을 통해서 그 방식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깊게 봤던 작품은, 이런 그의 초기-후기 작품 스타일이 복합됐던 작품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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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입니다. 거울에 있는 루이비통 로고가 흘러내리는데, ‘거울’이기에 거울의 ‘그림자’에도 그 로고가 같이 흘러내리고 있죠. 로고 흘러내림과 그림자라는, 그의 모든 스타일이 한 작품 내에서 표현 된 것 같아 너무 좋았습니다. 또한, 오래 된 학교 건물에나 가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한자가 적힌 거울에 세련 된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도 너무 아이러니해서 좋았구요.

그 이후로 펼쳐진 세계는 신세계였습니다. JR, 크러쉬, 닉 워커, 존 원, 라틀라스, 쉐퍼드 페어리까지. 7명의 작가가 펼쳐내는 그래피티의 세계는 다 제각각이었으며, 누구의 작품을 보더라도 ‘이것은 누구의 작품이다!’라고 바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넘쳤습니다. 그래피티라는 이름하에 이 모든 작가들이 묶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죠. 하나하나 다 설명해드리면 좋겠지만, 그건 실제 전시 관람을 위한 재미로 남겨두고! 제우스를 시작으로 제가 인상 깊게 봤던 작가에 대해서 설명 드리자면, JR과 존 원이었습니다.



"JR"

우선 JR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림’이라기 보단 사진에 가깝습니다. 다른 그래피티 작가들이 그렇듯 ‘태깅’에서부터 그래피티를 시작했던 JR은, 지하철에서 한 카메라를 줍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그의 그래피티 인생이 바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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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은 그 이후로 사진을 찍어서 그를 크게 인화해서 건물 등에 붙이는 식의 작업방식을 택합니다, 위 사진과 같은 작업인데요. 저는 처음에 이 사진을 보고, 사진에다가 지붕을 그려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건물’에 ‘사진’을 붙여놓은 거였죠. 이 지역은 마르세유이며, 인화된 사진은 1966년에 마르세유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인데요. 이걸 건물에 붙임으로써 ‘도시’가 가지고 있는 기억을 재생, 어른들의 아이시절을 보여줌으로써 세대간의 소통을 이룩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참 재밌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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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JR은 발레단과 협업해, 여러 의미있는 사진들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위 사진을 잘 들여다보시면, 오페라 가르니에 궁 지붕에 수십의 발레단들이 제각각의 발레복을 입고 올라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잘 살펴보면 옷들 전체가 사진처럼 이어지는데요. 수십의 사람이 입은 옷이 합쳐져 하나의 ‘눈’을 나타내줍니다. 선한 소녀의 눈을요. 

가이드분의 말에 따르면, 이는 세대의 초상 작업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이민자가 많아 갈등이 심했던 ‘레보스크’에선 유색인종 청소년들은 모두 범죄자나 폭력성이 있는 아이들로 치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JR은 그런 인식이 편견일 뿐이란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 아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클로즈업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요. 그 선한 눈동자 등을 보면, 그것들이 편견임을 알 수 잇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위 소녀의 눈도 그런 맥락이라고 하는데요. 발레단에게 옷을 입혀 사진을 표현해낸 방식도 기발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너무 좋아 인상이 깊게 남았습니다.



"JonOne"

다음은 존 원입니다. 위 두 작가가 특정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고, 그 방식이 기발해서 좋았다면 존 원은 그냥 그 자유분방함이 좋았던 작가인데요. 정규 미술을 배운 경험은 없고, 에이원이란 작가를 만나 그를 따라서 무수히 많은 전시를 보러 다녔던 존 원은 스프레이 페인트보단 붓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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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그림을 보면, 정말이지 너무도 자유분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여기 소개하진 않았지만 깔끔한 선을 자랑하는 크러쉬나, 스텐실을 이용해서 선이 깔끔할 수밖에 없는 닉 워커나 라틀라스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작가였습니다. 

가이드 분의 말에 의하면, 그냥 막 그린 것 같아도 그림을 작업할 때 본인의 이름을 수백번 넘게 써서 작업한다고 하는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펠링이 보인다는데, 저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착한사람 눈에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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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한 면엔 존 원씨가 직접 와서 작업해주신 작업물이 설치돼 있는데요. 널부러져 있는 작업현장을 보면, 그의 작업 스타일 또한 자유롭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신발까지 벗어두시고 가셨는데요. 실제로 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웠습니다.



"GRAFFITI"

그래피티. 제게는 낯선 세계라,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는데요. 너무나도 뚜렷한 특색을 가지고있는 7작가들을 통해서 그래도 그나마 ‘그래피티’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각각의 스타일만큼이나 전하고자하는 바들도 명확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했던 전시였습니다. 

사실 거리에 있어야 하는 작품들인데, 이를 전시장에서 보고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기도 했지만. 입구부분의 닉 워커의 작품이나, 전시장의 제우스나 존원의 작품, 그리고 서예박물관 가는 길바닥에 있는 라틀라스의 작품 등. 한국에서 작업한 작품들이 있었기에 딱딱한 ‘전시’라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차별성을 두지 않고 모두에게 개방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그래피티’라는 장르의 특성 상. 본 전시는 어쩔 수 없더라도, 별도로 공간을 개방해서 그래피티 작가들이 벽에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게 하거나, 한국의 그래피티 작가들도 마음껏 작업해놓을 수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약간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시장을 나서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곳에. 자유롭게 그래피티 아닌 그래피티로 소감을 적을 수 있게 해놓은 곳이 있었는데요.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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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손에 들고있는 것은 스프레이 페인트고, 적힌 글씨는 위대한 낙서전이지만 글씨의 스타일은 아르누보인 아이러니함. 저는 이 그림을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요. 결국 구분지어도, 예술은 결국 ‘예술’이란 이름하에 다 연결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리를 전시장으로 만들겠다던 무하의 정신도 그래피티의 초석 중 하나 아니었나, 하는 비약적인 생각까지 들 정도로요.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아간 새로운 세계들이, 어느샌가 제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그 세계들이 서로 연관을 맺을 때 오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또 ‘그래피티’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게 됐습니다. 그래피티를 보고 나오는 길에, 아르누보처럼 떠올리고 웃을 수 있던 저처럼. 오늘 알아간 그래피티란 세계는 언제 다시 제 삶에 불쑥 나타나 웃음을, 쾌감을, 깨달음을 선사할지. 앞으로가 기대 되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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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1).jpg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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