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처투성이 운동장, 아프고 따듯한 그 곳

글 입력 2016.12.26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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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소년이 있다. 사람들은 조금 이상하게 본다. 남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당장의 폭죽놀이 같은 것들에만 집중하는 소년이나, 지극히 예민하고 섬세한, 늘 배가 아픈 슬픈 소녀나. 소녀와 소년은 특이하면서도 그렇지 않다. 세상과 온전히 섞이긴 힘들고 그렇다고 또 세상과 너무 멀리 멀어지기도 힘들다.

소녀와 소년은 어린 시절 보건실에서 만난다. 아픈 상황에서 만난 그 둘은 서로 제 아픔을 보여준다. 소녀는 소년을 치료해 주고, 소년은 소녀에게 제 아픈 곳을 가만히 보여준다. 공유하기 힘든 것들을 직접적으로 나누어 함께한다. 이들의 관계는 학생일 때를 지나 서른 후반이 될 때 까지 기묘하게 이어진다.

3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만나고 헤어지기를 끝없이 반복해 온 둘. 삶을 살아나가며 마주하는 고통의 강도는 더욱 강해진다. 아픔을 공유하고 들여다 보고 어루만지는 것으로는 회복하기 힘들어짐에도 소년은 계속해서 다친다. 소녀도 계속해서 다친다. 아프기 위해 다치는 것인지 낫기 위해 다치는 것인지. 소년은 때론 소녀를 위해 아프고, 소녀는 때론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아프다. 결국 매 시간의 끄트머리에서 마주하는 것은 소년과 소녀 그들 스스로. 상처가 벌어져 피 흘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손을 내민다. 이상하리만치 현실적인 매일의 상처 위로 말도 안 되는 기적적인 힘이 가 닿는다. 지치고 힘든, 하지만 예쁜 동화를 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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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상당히 독특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무대 구성도 상당히 특이했는데, 가장 색달랐던 점은 시간이 흐르는 장면을 막간으로 두되, 조명, 음악, 목소리를 통해 장면을 서술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그 흐름을 조금쯤 건조하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 처럼, 배우 분들은 무대 뒤가 아니라 계속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대 위는 간단한 블라인드가 벽의 역할을 했는데 시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절히 다르게 사용된다.

매일같이 아프고 깨져 피멍이 들고 자꾸만 생채기가 나도, 지금 이 땅 위 어딘가 너라는 존재가 있기에 괜찮다. 내가 아프면 네가 나타나니까 괜찮다. 어쩌면 외려 너라는 존재가 나로 하여금 자꾸만 상처를 만들게 하는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상관없다. 연극은 계속 아프고 먹먹한 이야기를 따듯하게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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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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