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결같이 순하고 푸르던, 대만 3박 4일 여행-(2) [여행]

글 입력 2016.12.2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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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2월 17일 - 대만에서의 이튿날: 2.28평화공원, 중정기념당, 지우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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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마지막 코스. 지우펀으로 향했다.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해서 부랴부랴 갔는데 막상 주말이라서 꽤 오랜 시간 홍등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많이 조사를 하고 가지 않아서 직접 가고 나서 새로 깨닫게 된 것들이 많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홍등이 나왔더라. 이 정도만 알고 갔던터라 왠지 음식점이 많고 주점이 그득그득할 것 같았다. 왜 한국 사극에서 보면 등이 걸린 곳에서 밥 한 술에 어련히 술 한 잔 걸치고 휘적휘적 떠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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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막상 식당은 많긴 했지만 술집 대신 오히려 가장 예쁜 홍등거리에는 찻집이 많았다. 홍등을 보면서 우유푸딩 한 입에 맛있는 우롱차를 우려 먹는 기분이란, 편견에 사로잡혔던 관광객의 부끄러움 정도는 씻어줄 수 있는 정도였다. 현란하게 차를 만들어 주셨는데 우리는 정직하게 잔을 한번씩 휘리릭 정확히 뒤집으면서 차를 열심히 우려먹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 길을 헤매고 돌아다녔는데 첫 날 우리와 만났던 취두부보다도 강력한 취두부향을 맡았다.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다가 숙소에 못들어오는 건 아닌가 싶던 순간 그 취두부향을 다시 만나서 무사히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감사한 취두부. 우리가 인연이긴 한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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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들어가면 아쉬울 것 같아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약간 족발같은 느낌이 났던 돼지고기 요리와 바지락을 센 불에 볶은 요리. 조개요리가 특히 맛있다! 고수는 아닌데 향기가 나는 나물과 함께 볶아서 먹는데 좋은 술안주이자 밥반찬인 것 같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그 나물은 목에 좋으니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가끔 생각날 것 같은 그 양념. 어딜가나 어느 요리에나 많이 쓰는 것 같은데 대체 뭘까 궁금하다. 대만의 맛으로 기억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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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 아직 깨지 않은 다음날 아침, 조심히 문을 열고 지우펀의 아침을 만났다. 자꾸 비교병이라도 걸렸는지 한국의 풍경과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둥글둥글한 능선은 비슷하지만 좀 더 아담한 능선이었다. 그 끝에는 작은 섬들이 보이는 푸른 바다가 보인다. 이 곳 분들은 매일매일 이 바다를 보겠지. 좋겠다, 싶다가도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왔다갔다 하다보면 피곤하겠다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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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여유로웠다. 아침에 내 뒤를 아무렇지 않게 슬쩍 지나갔던 강아지와 어제 해질녘 환풍기 위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던 고양이. 나라마다 정말 강아지와 고양이도 느낌이 다르긴 한가보다. 주둥이가 뭉툭하고 나른해보였던 강아지와 눈이 크고 말이 많았던 고양이. 지우펀을 떠났다.



3. 12월 18일: 대만에서의 셋째날, 스펀 풍등과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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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믹스처럼 달달한 홍차에 아침을 먹고 스펀으로 나섰다. 역시나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다. 기차를 내리는데 벌써 풍등이 이리저리 하늘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피해서 우리는 예정에도 없이 갑자기 폭포를 보러갔다. 운청이도 풍등은 날리러 왔었는데 폭포는 안보고 갔다고 해서, 날씨가 그날 또 유독 좀 맑고 더워서, 시원함을 찾아 도망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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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다리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고 나서 폭포를 만났다. 에메랄드빛 물이 쏴아아 내려오는 모습에 너도 나도 홀린 것처럼 사진을 찍게 될 정도로. 어떤 분은 너무나 홀려버려서인지 들어가면 안 되는 곳까지 들어가서 관리인분께 된통 혼났다. 마음의 고민이 있을 때 찾아가면 속 시원할 것 같던 이 폭포. 금도끼니 은도끼니 이런 것보다 속 시원하게 제일이지 싶다. 대만 여행에서 의도치 않았지만 내게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여기다. 인간의 작품이 아닌 자연의 작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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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많이 보낸터라 부랴부랴 풍등을 날리러 왔다. 빨강색, 녹색, 노란색, 분홍색. 각자 건강, 소원, 돈과 사랑을 비는 풍등을 골랐다. 처음엔 뭐 쓰지 하다 각자 삘 받아서 신나서 이리 저리 썼다. 이 풍등 사실 대만영화에서만 봐서 대만에서만 하나 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도 대구에서 관등축제도 한다고 하니. 등잔 밑이 어둡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수백개씩 풍등을 날리며 소원을 비는 이 곳. 다음에 다시 들리게 된다면 감사의 풍등을 날려보겠다고 다짐하면서. 막상 소원을 쓰려니 벼락부자니, 겁나 멋진 남친이니, 순간이동이니, 엄청난 행운이니 이런 거창한 건 떠오르지 않았다. 소소한 소원을 담은 우리 풍등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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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없이 고양이 구경하랴, 기념품 가게 구경하다 보니 1시간에 한번 있는 기차를 놓치고야 말았다. 오늘 일정이 틀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긴 원래도 빠듯했다. 택시투어를 온 것 같은 한국사람이 잠시 부러웠으나, 에이 바쁘게 살지 말자 싶었다. 그게 또 청개구리 심보였다. 남들 다 하는대로는 하기가 싫어서 사서 고생한 것도 있었다. 원래는 단수이를 들렸다 오려고 했는데 예정 외로 폭포를 보고 왔으니 단수이는 다음에 들리는 것으로. 모든 걸 마스터하고 가겠다는 욕심을 버리기로 다짐했던 거니까. 1시간동안 기차를 기다리면서 다른 관광객의 아이스크림을 냅다 먹어버리는 용감무쌍한 고양이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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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지친 하루 내일 공항 근처의 숙소로 돌아왔다. 버섯볶음, 닭발볶음, XO면과 우육면. 버섯볶음과 닭발볶음은 어제 먹은 조개요리와 양념이 같다. 닭발은 놀라운게 발가락이 길다. 성장발육이 남다른 대만의 닭발. 각자 음료도 하나 시켰다. 망고코코넛밀크티와, 팥밀크티, 나는 오늘도 금감차. 그러고도 배가 잘 안차서 우육면을 또 시켜 먹었더니 운청이는 신기한 모양이다. 운청이는 우리가 음식을 나눠먹는걸 신기해했다. 원래는 대만에선 각자 1인 1메뉴 먹고 식사를 끝내는 편인데 우리는 여러개 시켜 나눠먹고 있어서 신기하다고. 사실 있지 운청아, 신기해야 할 건 우리 뱃고래인 것 같기도 해.
 
  직장을 다니고 있는 운청이는 일요일 저녁이라서 우리와 일찍 헤어져야 했다. 막상 우리 기념품이다 간식이다 산다 그래놓고 많이 못먹고 못사서 운청이가 미안해했다. 하지만 사실 고맙고 미안한 건 우리였다. 아는 친구인 운청이가 있다고 덜컥 와서 2-3일을 연달아 이리 저리 돌아다니게 했으니 피곤한 것도 당연한 것. 1년 만에 만난 운청이와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일하는 얘기, 지내는 얘기를 하다보니 고스란히 숨어있던 변화의 흔적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드문드문 중국어로 들은 옆자리 분 이야기도 들렸다. 자기 별자리가 사수자리라는 아주머니. 운청이는 자기도 듣고 있었다고, 자기 아들이 나이가 많은데 결혼을 안해서 걱정이라고 그 분이 그랬다고 덧붙였다. 어딜가나 고민은 비슷한가봐. 우리 얘기와 다른 사람들 얘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고, 지하철에서 헤어지는 순간 새삼 갑자기 여행을 처음 온 것처럼 설렜고 걱정도 됐다. 그냥 운청이를 보는데 좀 뭉클하기도 했다. 다음 한국 가이드는 내게 맡겨서 된통 고생 좀 시키라고 했다. 다음에 만날 땐 좀 더 멋진 사람이 되어있겠다고, 속으로 다짐도 하고.


   
4. 12월 19일 대만에서의 마지막 날 - 공항에서 다시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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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찍 일어났다. 마지막 날이니 불현듯 생각났다. 함께 여행한 친구가 낯을 가려서 운청이와 셋이 지내는 걸 좀 걱정했었다. 혹시나 불편했었나, 참고 있었던 건 아닌가 자기 전에 이야기를 했다. 가기 전에 우리는 미리 한바탕 했던 터라 여행와서는 싸우지 않았다. 나를 믿으라고, 내가 어색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말했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한거면 많이 미안할 것 같았다. 다행히 운청이가 우리 말을 잘하기도 하고 재밌는 친구라(물론 발음이 그 사이에 많이 어눌해져서 박보검 → 밥버거, 쥐 → 쉬 등으로 들려서 우리는 종종 빵 터지기도 했다) 친구가 재밌고 첫 해외여행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것으로 되었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짐이 무거워질 시간이다. 우리는 생 초짜 관광객처럼 공항에서 먹을 거리를 바리바리 사기 시작했다. 여행 내내 짐이 무거울 것 같아 미뤄두긴 했다. 그래서 펑리수니, 누가크래커니 사지를 못했는데 어느 새 한 아름 가득이었다.  종류별로 펑리수를 비교해보기도 하고, 누가크래커를 몇개 살까 고민도 하고. 젤리를 보고 지름신이 오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앞에서 처음 시작처럼 비행기에 들뜨고 설레지 않은 채, 편안하게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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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떠나다보니 역시 예상 외의 순간이 많았다.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는 예상보다 한 시간이 늦었고, 여행이 처음이다 보니 동선을 고려해서 숙소를 아주 잘 잡았다고도 못하겠다. 먹방을 찍으러 간다고 했는데 사실은 경치를 보다 왔다. 멀리멀리 다니다 보니 기차시간을 놓치면 한 시간씩 덩그러니 기다리기도 했다.그렇다고 남들 다 하는 대로 몰아쳐서 보기는 싫은 마음에 대충 계획은 짜놓고 중간중간 많이 바뀌기도 했다. 여행지에서는 유독 더 일찍 일어나는 버릇때매 벌떡 깨보면 새벽일 때가 많았다. 자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다가 다시 자다 깨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아침 가는 버스 안에서, 한국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가는 익숙한 길 안에서, 짧고 빠듯한 여정 그 사이에서 내심 궁금했던 질문의 답을 약간 찾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 걸까. 혹자는 빚을 내서라도 가라고 했고, 매년 가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안된다고도 했다. 여행은 그 나라에 대한 로망을 가득 품고 가서 현실을 보고 오는 것이다. 사진으로 보고 영상으로 본 것은 잘 다듬어진 겉모습이며,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적나라한 얼굴이다. 매순간 꿈결같지도 않고, 되려 모르는 곳에서 당황스럽고 고생스러운 일이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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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겐 새로운 고생을 할 수 있어서인 것 같다. 예상 외의 순간 속에서 지내면서 했던 고생들이 힘이 되었다. 익숙한 일상에 돌아오고 나서도 그 새로운 고생 속에서 튼튼해져 온 것이다. 같이 간 친구는 공항에서 수속을 할 때 처음에 너무 길어서 여행을 못가겠다 했는데 떠날 때가 되니 대만에서 더 오래 지내고 싶단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사실 대만도 좋았지만, 한국의 포근한 집도 좋았다. 아직 생각보다 근질근질하진 않다. 집을 떠나던 날을 설레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설렜다. 그래도 나는 내심 가고싶었던 곳들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조금 덜 두려워하며, 그래도 또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또 그런 고생이 내가 되고, 기억이 되고, 웃음이 되려니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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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돌아가기 몇 시간 전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월요일 대만의 아침을 보며 쓴 이 글이 이 모든 여행을 압축하고 있는 것 같아 공유하려 한다. 첫 해외여행, 익숙하지 않아 좋은 날이었다.


- 이 글은 문화의 소통을 강조하는 ART insight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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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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