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결같이 순하고 푸르던, 대만 3박 4일 여행-(1) [여행]

글 입력 2016.12.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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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만 뻔하지 않다. 과한 듯하지만 아련한 감성을 잘 이끌어낸다. 아마도 한국사람에게 대만은 '첫사랑의 나라'가 아닐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등  풋풋하고 순수한 첫사랑을 그려내어 세계에 첫사랑 느낌을 퍼뜨리고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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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발자취를 밟아보려 대만을 찾는 한국사람도 많다고 했건만, 사실 나에겐 영화는 영화였고 대만은 대만이었다. 사소한 시작이었다. 올해가 가기전 친구와 꼭 해외로 한 번쯤 여행을 가자고 마음먹었는데 정신차려보니 벌써 12월이 끝나가기에. 교환학생으로 우리 학교에 찾아왔던 대만 친구 운청이를 한번 만나러 가고 싶어서. 늘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국을 벗어나는 걸 내심 두려워했는데 정말 나가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바쁜 일상을 벗어나보고 싶어서 특별한 준비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막상 그냥 이제 가나보다 하고 무덤덤한 줄 알았는데 출발 며칠 전에는 갑자기 설레기도 했다. 서울개구리 아니랄까봐 인천공항 곳곳을 두리번거리고 창가에 비치는 비행기를 보고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했다. 다음엔 이런 것쯤이야,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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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결같다, 순하다, 푸르다. 
  대만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의 기억을 3단어로 정리해보니 그랬다. 나에게 대만 음식은 한결같이 순했다. 아주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많이 없었다. 기름이 많이 들어가고 금방 불에 볶아 내거나 하는 음식은 많지만 아주 느끼한 편도 아니다. 그마저도 느끼하면 차가 도와준다. 그래서 절로 나오는 '크' 소리의 얼큰함은 없지만 속이 편한 편이다. 대만의 풍경도 한결같이 푸르렀다. 영하 10도의 서울을 벗어나니 늦여름 초가을 아침 15-17도, 오후 21-25도의 대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 내내 날씨가 좋아 구름 거의 없는 푸른하늘에 단풍 없이 초록빛으로 가득한 나무를 구경했다. 수많은 풍경중에서 나는 억새가 유독 눈에 오래 남았다. 한국처럼 밀빛 장관이 펼쳐지는 억새밭이 아니었다. 억새는 밀빛으로 변해있었는데 억새의 이파리는 모두 초록색이었다. 운청이에게 물어보니 노랗고 빨갛게 드는 단풍을 여기서는 많이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만의 1년은 아마도 대체로 이렇게 푸른가보다.



1. 12월 16일 - 대만에서의 첫 날 : 타이페이메인스테이션, 스린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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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날, 공항에서 타이페이 메인역으로 슝슝. 비행기가 늦어져 예정보다 더 밤중에 도착했다. 드디어 왔구나. 하고 갑자기 신나서 타이페이 스테이션에서 한 장 찰칵. 스린 야시장으로 가는 대만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대만 지하철은 역이 천장이 높고 줄도 세로로 서지 않고 가로로 두 줄로 선다. 좌석은 민트색, 파란색. 우리처럼 빼곡히 붙어있지 않고 좀 널널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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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린야시장에 도착했다. 친구와 '이대+홍대+동대문'같은 느낌이라고 같이 결론내렸다. 상인 분들은 우리가 어떻게 한국인인 걸 아셨는지 잔뜩 한국어로 말씀해 주셔서 놀라기도 했다. 운청이에게 물어보니 한국 사람인 게 티가 난다고 했다. 하긴 티가 났을거다. 암만. 함께한 나의 오랜 친구는 바꾼 돈 가격이 너무 커서 돈을 환전한다고 말릴 틈도 없이 천 원을 몽땅 넣었다. 알고보니 그게 코인 교환기라서 우리는 졸지에 10원짜리 100개를 쓸어담아 가방에 우겨넣었다. 500원을 바꾸려던 대만 분은 그 김에 놀랐는지 가버렸다. 부끄러워하는 친구에게 우리가 덕분에 500원을 날리려던 대만 분의 마음을 돌리지 않았느냐며 놀라고도 웃긴 마음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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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에서 큐브스테이크, 대왕 카스테라를 하도 많이 봐서인지 별로 놀랍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우리 분명 먹방 찍자고 했던 것 같은데 변덕이 죽을 끓게 되었다. 그 많은 먹을거리를 뒤로 하고 대만에서의 첫 음식은 밀크티와 금감차였다. 밀크티를 고르려다가 뭔가 레몬이나 라임과 비슷한 것 같아서 고른 금감차는 대만에서의 1일 1차로 자리매김했다. 맛은 레몬에이드+오렌지에이드 같은 맛인데 시큼새큼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딱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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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쭉 시장을 돌아서 지하에 있는 먹거리를 찾으러 들어갔다. 친구의 로망이었던 우육면, 파인애플 새우튀김, 굴전, 취두부가 첫 날 첫 식사가 되었다. 우육면은 덜 얼큰하고 순한 육개장면 같은 맛이다. 역시나 순딩순딩하다. 운청이가 굴전과 취두부가 맛있다고 해서 시켜봤는데 맛있다. 새우튀김은 데코레이션은 거의 디저트같이 생겼지만 달지 않고 맛있다. 굴전은 우리나라 전과는 반죽이 다른 편이다. 굴이 들어갔지만 꿔바로우 튀김옷같은 찹쌀처럼 쫀득한 반죽에 뭔가 알 수 없지만 맛있는 소스를 찍어먹는다. 굴전 가게만 따로 있고 다들 옹기종기 앉아서 술과 함께 드시는 걸 보니 많이 찾는 음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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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에 왔으니 대만 술로 하루를 마무리해보자. 맥주 또한 역시나 순하다. 운청이는 대만의 맥주가 맛이 없다고 했지만 맛은 보급형 페일 에일 같은 맛이었다. 술 한잔에도 홍익인간이 되는 불우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산뜻한 볼홍조만을 선사하는 천사같은 존재였다. 취두부는 아주 강렬한 냄새가 인상적인데 비해 맛은 오묘한 두부조림맛이다. 첫 맛은 괜찮다 싶다가 뒷맛이 오묘해서 이 맛의 고비를 넘기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볼수록 매력있는 취두부는 냄새가 선인장이나 장미가시처럼 거리감을 줄 뿐이지, 먹다보면 진가를 알게 될 것 같은 존재감이 있었다. 물론 시간은 좀 걸릴 수도 있겠지만! 매력있는 취두부는 이튿날 우리에게 나름 큰 도움(!)을 주었다.



2. 12월 17일 -대만에서의 이튿날: 2.28 평화공원, 중정기념관, 지우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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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 아침, 숙소 근처였던 2.28 평화공원과 중정기념당을 찾았다. 2.28 평화공원은 대만의 아픈 역사가 담긴 곳이다. 얼핏 듣기로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꼭 가고 싶어 친구들을 조르기도 했다. 대만에서 가장 좋았던 인간의 작품을 꼽자면 이 곳을 꼽겠다. 물론 마음에 쏙 든다기 보다는 지금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대만을 한결같이 순하고 푸르다고 표현했지만 이 곳에선 예외일 수도 있겠다. 조용한 아침,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 산책하러 나온 근처 병원의 환자들. 뛰어노는 아이들, 나무 위에서 끼룩거리는 청설모. 장대높이 뛰기를 해도 좋을 것 같은 높이의 야자수를 비롯해 역시나 푸릇푸릇한 나무들. 지금은 너무나 평화로워보이지만 내면은 평화스럽지가 않다. 현재진행형이라 더 기억에 남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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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평화공원. 과거엔 대만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선혈이 낭자하게 했던 역사적 산물이다. 우선 이 공원 자체가 대만이 일제 식민지배를 받았을 때 일본이 지은 대만 타이페이 내의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다. 이 공원에 얽힌 갈등구조는크게 두 개다. 처음엔 일본 대 대만의 구조로, 그 이후에는 대만 내의 본성인과 외성인의 대립구조이다. 일본은 식민 지배가 끝나자 또 장제스를 중심으로 한 국민당 일파들(외성인)에게 대만을 넘기고 철수했다. 국민당은 기존에 명, 청 시대 이후부터 대만에 거주하고 있던 본성인들 대신 국가를 운영했는데 제 2의 식민지배와 같았다고 한다. 이제 살만해지나 했더니 부정부패에 요직 점거에, 대만 사회 내부 본성인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당시 유행하던 말이 '개(일본)이 가고, 돼지(외성인)이 왔네'라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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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사건 사진 - 출처 Wordpress)


 그러던 중 1947년 2월 27일, 한 본성인 할머니분이 국가에서만 판매할 수 있던 담배를 팔다가 권총으로  머리를 찍히는 등 구타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할머니는 구타를 당하고 나서 다음날 사망했고, 그 과정을 말리던 민간인 학생(본성인)또한 경찰에 사살되면서 이 사건은 외성인 대 본성인의 구도로 확대되어 억눌렸던 분노를 터뜨리는 큰 시위로 이어진다. 경찰과 관련 공무원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으나 불법시위로 간주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본성인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이에 분노한 본성인들 또한 경찰을 공격하면서 유혈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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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제스는 이  사건이 폭동으로 커질 것을 염려해 시위에 참여한 민간인들을 공권력을 동원해 학살했다. 기록상으로는 2만 8천 여명이 사살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 사건을 비롯해 대만에서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고 싶었던 장제스는 계엄령을 선포한다. 38년이 지난 1988년에서야 계엄령은 해제된다. 당시 총통이었던 리덩후이가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이 곳이 2.28평화공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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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이 문제를 알고 나서 보면 이 공원의 평화가 그냥 쉽게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조용한 듯 보이지만 계속 살아숨쉬고 있는 마음과 노력, 잔잔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이 공원에서 평온하게 꼼지락거리며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미래에도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모습이 되겠지 싶다. 싸우는 건 한 순간인데, 그 잔재를 안고 평화를 찾는 것은 왜 이리도 어려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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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들린 중정기념당. 중정은 장제스를 뜻하는 말이다. 2.28사건을 알고 나서 중정기념당을 가보면 느낌이 묘하다. 물론 일단 가고 나면 흰색과 파랑색이 예쁘게 조화된 기념당과 입구 패방에, 음악과 연극 등을 연습하는 주황색과 빨강색 건물의 희극원과 음악청이 있다. 알록달록해서 색감 조화에 반하게 된다. 장제스의 나이라는 89개의 계단을 지나 위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면 이 곳은 전반적으로 일본과 유럽이 오묘하게 섞여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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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일본과 닮았냐고 하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 중정기념당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다. 일본의 오사카성 사진을 봤을 때 분위기와 비슷하다. 중정기념당을 보면서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아름다우면서도 좀 인공적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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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념당 안도 마찬가지다. 뒤돌아서서 장제스의 동상을 마주하면 기분이 묘하다. 여기에 그가 있다. 국부라는 칭송을 받는 장제스가 있고, 2.28사건 등에서 엿볼 수 있었던 독재자 장제스가 있다. 이 곳이 계속 그의 본명에서 따온 중정기념당이라고 불려야 하는지, 혹은 장제스의 기념관이나 동상을 없앨지 말지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정권마다 중정기념당으로 불렸다 이름이 대만민주화기념관으로 바뀌었다 했다. 입구 패방의 현판 역시 중정에서 따온 대중지정에서 자유광장으로 바뀐 상태이다. 역사유적으로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과,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때로 충돌하고 있다. 관광객에는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푸르고 붉은 중정기념당. 하지만 결코 내면은 평화롭진 않다. 그 날 날씨만 속절없이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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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당 앞을 나와 샤오롱바오와 새우딤섬, 조개와 수세미로 만든 요리를 먹었다. 수세미라니(!) 대만에서의 새 발견이기도 한다. 느낌은 오이와 애호박의 중간느낌이다. 아삭아삭하고 시원하다. 운청이는 계란과 수세미를 볶아서 집에서 잘 먹는다고 했는데, 막상 한국에서 먹는 애호박은 대만에서 잘 먹지 않는다고. 느끼할 수도 있을 샤오롱바오와 딤섬을 잘 잡아주는 개운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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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압권이었던 건 이 음료! 함께 한 오랜 친구에게 이거 매실+냉면 육수맛이라고 했더니 격한 공감을 얻었다. 대만은 날씨가 그렇게 더운데도 시원한 음식이 별로 없단다. 냉면성애자인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운청이는 운청이대로 한국의 냉면이 신기하기도 했단다. 중국식 냉면도 맛없다고 했다. 딱 저 음료를 육수삼아 면만 넣어먹으면 되겠다고 했더니 한참 웃었다. 운청이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있을 때 새삼 골뱅이 비빔국수를 함께 먹었는데 맛있어하면서도 대만에서는 골뱅이를 먹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새삼 다른 점이 참 많다. 대만 사람과 한국 사람의 식성에서만 봐도. 날씨도 그렇다. 쨍쨍한 초가을 12월 대만과 겨울의 문턱 영하의 12월 한국. 나는 대만에서 나의 사랑 가을을 다시 만나 기뻤지만 운청이는 지난 겨울 한국에서 무척 적응되지 않는 추위에 괴롭진 않았을까.

오늘의 마지막 코스 지우펀부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문화의 소통을 강조하는 ART insight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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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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