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의 하루 [시각예술]

도시유목민의 전시 ‘하루를 쓰다2’
글 입력 2016.12.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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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은 온다. 해는 뜨고 알람은 울리고, 아침잠 많은 나는 침대에 누워 정신을 차리기 바쁘다. 밍기적 일어나 씻고, 준비를 하고, 기분에 따라 밥을 챙겨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일정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음날 날씨와 일정을 확인하고,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몇 년 째 이렇게 살아왔고 큰 변화가 없는 이상 앞으로도 매일 매일이 이렇겠지. ‘하루’란 반복적이면서도 단순하고 지루한 단어다. 또 ‘하루’란 그만큼 누구에게나, 가장 평등하고 공평한 산물이다.

시간성과 공간성을 비교할 때 경계해야 할 감각이 시간성 이라고 한다. 공간은 몸에 익었다면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지만, 시간은 인간이 제멋대로 조절 가능한, 어쩌면 그 속에서 절대신이 될 수 있는 개념이다. 예를 들면 빛 하나 없는 골방이라면 몇 시간이던 합리화하며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하루란 비슷한 맥락 이였다. 아무 대가 지불 없이 공평히 받은 만큼 무의미한 것을 즐기며 정말 의미 없이 보내던 시간들이였다. 그런 와중 최성문 작가의 프로젝트 ‘하루를 쓰다2’전시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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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전시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는 충만했다. 2번째를 맞이하는 이 프로젝트는 작년에는 ‘노숙인의 하루’를 중심으로 했다면 올해는 ‘아시아인의 하루’를 소재로 삼고 있었다. 터키, 네팔, 중국, 몽골, 일본, 한국 각지에서 모아온 하루들은 허공에 걸려 있거나 질서 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심지어 발자국도 조금씩 찍혀 있었다. 작품훼손인가 깜짝 놀랐지만, 오히려 밟아 주십사 한다는큐레이터의 말에 조금씩 발을 옮겨보니 확실히 달랐다. 발 한 칸 크기의 종이를 밟아갈 때마다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와 달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루에 더 깊이 관여하는 것 같았다.

요즘 혼밥, 혼술이 대세로 떠오른 만큼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많구나― 싶으면서도 더 이상 관계는 살면서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고 느낀다. 나 역시 타인에 무관심한 사회에 물들어 갔다. 하지만, 하루, 하루를 밟는 행위가 종이 한 장에 실린 존재의 무게감을 전달 해 주고 있었고, 타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내 하루가 시작되는 만큼 타인의 하루 역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지 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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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는 사람의 혼이 담긴다.’는 말이 있다. 이 전시에서처럼 그렇게 많은 글씨들을 유심히 보고 다닌 시간이 있었을까? 글씨가 투박하군, 어린아이가 적었는지 삐뚤 빼둘 하네? 획 하나 하나 얼마나 정성스럽게 적었는지 힘이 꾹 실린 글씨들에 정겨움도 들었다. 읽을 수도 없는 외국 언어지만 손 글씨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사랑이 샘솟았다. JT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청춘시대>에 보면 ’다들 나와 같다. 다 나만큼은 착하다. ‘ 라는 대사가 나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로 얽힐 일이 적어지고 우리는 타인과 스스로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공감능력과 이해심 역시 사라져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글씨란 참 신기한 게 보는 것 만으로도 사라졌던 공감력이 돌아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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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전에 비슷한 작품을 봤었다. 1~5호 정도의 작은 캔버스에 꾸준히 하루 한 글자씩을 적은 작품 이였다. 얼추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최성문 작가의 작품에는 작가 이외의 타인이 참여했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다수의 하루라는 요소는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자유롭게 사색 할 수 있게 해 준다. 함께 전시를 관람한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타고난 한 사람의 산물이 만들어 낼 수 없는, 평범한 7살짜리 아이의 글씨, 이웃의 글씨가 모여 만들어 졌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었다.


  오늘 아침 크리스마스가 밝았다. 연인들에게는 너무나도 기대되는 하루, 종교인들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축복의 날이지만, 이벤트 적으로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그냥 일요일이다. 이렇게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제각기 공평하지만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 이번기회로 잊고 있던 타인의 존재감, 하루라는 시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12월, 연말에 했기에 더욱 의미 있었던 전시. 좋은 선물을 받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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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유목민이 쓴 아시아인의 하루를 쓰다 ②
2016.12.16 - 2017.01.22
관람시간 : 10:00 - 18:00(*매주 월요일 휴관)
성북예술창작센터 (성북구 성북로 23)
문의 : 02.2038.9989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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