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향이라는 것은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2.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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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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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무료해 하던 나에게, 친구가 한 영화를 추천해주었다. 영화는 바로 브루클린(Brooklyn, 2015)이었고, 예쁜 색감으로 이뤄진 영상미에 공감되는 내용을 가진 좋은 작품이라며 소개해주었다. 포스터만 보았을 때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짐작했지만, 막상 감상을 해보니 그것만이 주된 내용은 아니었다. 생각보다는 무게가 있는 내용이었고, 그것이 화면의 색감과 카메라의 구도, 배우의 연기로 시너지를 내는 듯했다. 주인공 에일리스 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은 캐릭터 그 자체로 느껴지며 영화에 깊이를 더했다. 영화에 대한 감상에 앞서 간략한 스토리에 대해 잠시 설명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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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뉴욕의 브루클린으로 떠나는 주인공, 에일리스-
 
 
아일랜드 소녀 에일리스는 그녀가 더 나은 미래를 찾아 꿈꾸길 원하는 언니의 권유로 미국 브루클린에 가서 일하게 된다. 낯선 타국에서 하숙집 생활을 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얻은 에일리스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 탓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상사에게는 꾸지람을 듣고, 집에서 온 편지가 제일 반갑다. 그러던 중, 브루클린 내 아일랜드인 댄스 모임에 가게 되고,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자의 이름은 토니이고,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와 점점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에일리스는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 점점 낯설기만 했던 땅에서 적응을 해나가 이제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어느 날 갑작스런 언니의 죽음으로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야만 했다. 연인 토니는 에일리스가 고향으로 돌아가 혹여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그녀가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청혼을 한다. 에일리스는 받아들이고, 둘은 비밀리에 결혼을 한다. 아일랜드에 돌아온 에일리스는 미국에서 일한 경력 덕분에,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녀를 찾는 곳이 많아졌고, 결국 언니의 회사에서 그녀가 맡고 있었던 일을 대신하게 된다. 또한, 언니를 잃고 혼자 남은 어머니, 그녀의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은 에일리스가 아일랜드에 남기를 바랐고, 친구와 잠깐 놀러갔다 만난 짐과는 묘한 사랑의 기운이 싹트게 된다. 그녀는 많은 재산으로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짐과의 만남과 미국에서의 토니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도 그녀가 미국에서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우연히 동네 사람의 귓속에 들어갔고, 그녀는 고민했던 마음을 접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토니와 재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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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땅, 브루클린에서 만난 토니와 결혼을 약속한 에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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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다시 찾아온 고향에서 짐을 만나 흔들리는 에일리스-
 
 
그녀의 마지막 결정은 토니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나오기보다는, 미국에서의 결혼소식이 우연히 발각되어 소문이 퍼지기 전에 돌아오자는 일종의 도피처럼 느껴진다. 짐과 토니, 안정된 삶과 새로운 삶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 남겼던 결정적인 한마디는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네요’였다. 보잘 것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에 느꼈던 아일랜드에 대한 감정이 좋게만 남아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있었을 때, 고향은 미화되었을 것이다. 좋은 기억만 남았고, 갓 돌아온 그녀에게 주는 환대는 행복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 있다 보면 미화되어 아름다운 그 곳도 다시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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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에 적응하여 이제는 그곳이 집처럼 느껴지는 주인공-
 

어찌 되었건 그녀는 처음엔 절망스러울 정도로 힘들었던 미국을 택했다. 결국 그 곳이 그녀의 또 다른 고향이 된 것이다. 마음과 사랑이 뿌리 내린 곳, 그곳이 그녀에게는 고향이었던 것이다. 나 또한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 산 지 4년째이다. 초반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에일리스처럼 고향에 대한 기억이 미화되었고, 그녀처럼 그 마을이 어떤 곳이 잊고 있었다. 잠깐 있으면 안식처이지만 계속 있다 보면 예전에 내가 떠나오기 전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익숙해서 좋은 것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에 오히려 이번에는 서울에 대한 기억들이 미화된다.
 
 
하지만 이렇게 기대고 싶은 공간 하나쯤은 만들고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현재에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도 분명 있겠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히려 힘이 되고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는 저 곳을, 저 곳에서는 이 곳을 그리워하겠지만 그냥 그 그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지내고 싶다. 사무치는 그리움, 무언가가 확 바뀌리라 하는 기대감이 아닌 그저 휴식처 같은 공간으로 말이다. 영화를 통해 고향은 꼭 나고 자란 곳만이 아님을, 내가 정의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고, 몇 개라도 될 수 있는 곳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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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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