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대한 낙서 展 : 위대함과 낙서 사이의 간극에서 [전시]

글 입력 2016.12.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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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을 갔을 때 기억에 남았던 것이, 작은 골목의 벽, 기차를 타면 보이는 차창 밖의 담벼락, 길바닥까지 ‘낙서’가 도배되어 있던 풍경이다. 스프레이로 칠해진 글자와 그림이 어지럽게 뒤엉켜 지저분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것들도 많았다. 거리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국적인 분위기도 풍겼다. 베를린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라는 곳에 가면 이러한 그래피티들이 아예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무언가 원초적인 힘이 느껴진다. 인간이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곳이 벽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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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낙서 展>은 그래피티에 대한 이러한 나의 느낌, 어찌보면 선입견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찾아간 전시였다. 그래서인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고 조금 실망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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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7색의 작품 자체는 굉장히 미적으로도,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적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흘러내리는 로고’나 ‘그려진 그림자’라는 본인만의 독특한 주제로 눈길을 사로잡은 제우스(ZEVS)의 작품에서는 브랜드가 지닌 강력한 시각적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매끈하게 채워진 페인트의 질감에서는 모던한 아름다움이 묻어나온다. JR의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에서는 사람의 얼굴과 몸이 건축물과 어우러질 때의 오묘한 위압감을 느꼈다. 3층에서 따로 전시된 한국판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 또한 친숙하지만 낯선 한국인의 얼굴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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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재미있게 봤던 작품은 닉 워커(Nick Walker)의 것인데, 그가 또 다른 자아로 표현한 반달(Vandal) 아저씨의 캐릭터와 유쾌하고 재기 넘치는 표현들이 신나는 음악과 잘 어울렸다. 복면을 쓴 소녀, 궁둥이를 보이는 모나리자, 권총 속에 들어간 미키마우스 등 그는 순수하고 고상한 이미지와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절묘하게 혼합하는 ‘악동’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존 원(JonOne) 또한 물감을 마구 집어 던지고, 색을 뭉그러뜨리는 데도 조화와 패턴이 느껴지는 어지러움의 아름다움을 기막히게 표현해냈다. 독특한 시그니처 스타일을 보여준 크래쉬(Crash), 본인만의 기하학적, 입체적인 그래피티로 정체성을 표현한 라틀라스(L’Atlas), 메시지의 반복적인 노출, 동양적 문양으로 거리를 벗어난 스트리트 아트를 보여준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까지, 하나하나 개성 넘치고 영감을 주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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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깔끔한 박물관의 유리장 속에 진열된 작품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고답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피티가 더 이상 뉴욕의 반항적 젊은이들의 문화가 아닌, 세계적 예술 장르의 수준으로 올랐다는 것을 느끼기엔 충분했으나, 그래피티라는 장르가 애초에 가졌던 의미, 차별과 편견이 없고, 대중과 예술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렸다는 의미가 이 전시 안에서는 오히려 퇴색된 것 같다. 스트리트 아트가 주는 생동감을 전달하기 위해 영상 작품을 활용하였지만 역부족이었고, 새롭게 리모델링하였다는 서예박물관의 전시장도 그래피티의 역동성, 반항성, 반달리즘 등을 표현하기 힘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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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리의 낙서(Graffiti)가 하위 예술을 넘어 위대한(Great) 예술, 고급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이러한 광경을 보며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것일까? 위대함과 낙서 사이의 간극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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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16.12.9(금) - 2017.2.26(일)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12/26, 2/27)

관람시간
오전 11시 - 오후 7시
(입장마감 : 오후 6시)

장 소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1층, 2층

입장권 및 예매문의
예술의전당 02-580-1300 www.s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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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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