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계의 어두운 이면: 대작과 위작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2.1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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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작 (代作): 남을 대신하여 작품을 만듦. 또는 그런 작품.
- 위작 (僞作): 다른 사람의 작품을 흉내 내어 비슷하게 만드는 일. 또는 그 작품.


  중학생 시절 한창 인터넷소설과 웹툰에 빠져있을 시기에, N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던 연우와 서나 작가의 <핑크레이디>라는 웹툰을 매우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미술에 한창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나이였기 때문에, 미대생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야기와 소녀 마음을 자극하는 예쁜 그림체가 나의 마음을 이끌었다. 같은 대학 미대생이었던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은 사랑을 하며 서로의 그림에 영향을 받지만 10년 뒤 만난 그들의 그림체는 너무나 비슷해져 있었고, 한 비평가는 “작가라면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두명이어선 안된다.”며 한쪽을 모방작이라고 평가를 내린다. 이러한 이야기는 나에게 화가와 화가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이후 실제로 ‘핑크레이디 그림작가 은폐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이 웹툰의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렸다. 연인이라는 이름 아래서 조수로 그림을 거의 도맡아 해오던 여자의 이름을 남자가 은폐한 채 연재를 진행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사과문을 올리고 여자의 이름을 같이 표기함으로써 종료된 듯하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도 아직 미술계에서 대작이나 위작은 사라지지 않는 문제이다. 최근에도 <미인도>라는 작품이 고 천경자 화백의 진작인지 논란을 겪고 있고, 가수 겸 화가로 활동중인 조영남씨의 대작이 논란이 되었다. 또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평가받는 이우환 화백 위작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공수업시간에 담당 교수님께서는 프랑스 영화 <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 1988)>을 보여주셨다. 까미유 끌로델은 오귀스트 로댕의 정신적인 지주였는데, 로댕의 화실에서 그의 작품을 조수로서 도와주다 보니 둘의 조각 작품은 비슷해져갔고, 정작 까미유 끌로델 자신의 작품은 ‘로댕의 아류 작품’이라는 평가만을 받을 뿐,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내건 전시를 할 수 없었다. 결국 로댕에게 버림받은 끌로델은 정신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낸다. 이 영화를 보며 웹툰 <핑크레이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과거에서도 까미유 끌로델과 같은 경우가 존재했기 때문에, 현재에 와 웹툰으로 다뤄진 이 내용이 그저 허구적인 사실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어떤 법적인 처벌로 다뤄야 할까? 단지 저작권법으로 이런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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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빅 아이즈>속 장면들


  영화 <빅 아이즈>는 1927년에 태어난 화가 마가렛 킨(Margaret Keane)의 실화를 다룬 내용이다. 마가렛 킨과 결혼하여 그녀의 작품을 자신의 것인 냥 속이고 다닌 월터 킨은 그녀의 그림을 캐릭터화 시켜 많은 상품을 만들어 내었고, 당시 매체들은 이런 행위는 예술로 정의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다. 오늘날에 들어와 각광받고 있는 ‘키치 아트’의 시초라고 불리는 빅 아이즈는 미국 팝아트를 말할 때 언제나 거론되는 작품이다.

  마가렛은 1965년에 이혼을 선언하고, 그로부터 5년 뒤인 1970년에 한 라디오 방송에서 실제 빅 아이즈를 그린 화가는 자신이었다고 폭로하였다. 폭로 이후 법정 소송이 시작된 계기는 1984년 월터가 USA투데이에 “마가렛이 자신이 죽은 줄 알고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 발언을 들은 마가렛은 월터와 USA투데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여기서 1986년 연방 법원 판사는 마가렛과 월터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두 사람이 법정에 와 동시에 빅 아이즈 그림을 그릴 것을 요청하였다. 마가렛은 1시간도 채 안된 시간에 빅 아이즈 그림을 그려냈지만 월터는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그림 그리기를 거부한다. 결국 배심원단은 마가렛의 편을 들어주었고 법원은 월터가 400만 달러의 배상금을 마가렛에게 주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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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 감정’ 결과 위작으로 결론난 이우환 화백의 작품.
K옥션에서 열린 정기 겨울경매에서 4억9000만원에 개인 컬렉터에게 낙찰.


  2012년에서 2013년 사이에 인사동 주변에 위치한 화랑들은 현대미술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우환 화백의 위작들이 유통되었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따라 경찰은 2015년부터 조사에 착수하였다. 경찰 측은 “국제미술과학연구소의 ‘과학 감정’을 거친 후 경찰에서 작품 감정을 의뢰한 6명의 감정위원이 지난 1월 중순 공식 ‘안목 감정’을 한 결과 모두 위작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하며 이우환 화백의 작품 13점이 모두 위작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결과에 대해 이화백은 “그림의 호흡이나 리듬, 색깔을 쓰는 방법이 전부 내 방식이다. 13점의 작품에 내 작품이 아니라고 볼 만한 이상한 점이 없었다.”라며 이의를 제기하였다. 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용한 물감과 붓터치 등이 다르다는 것을 근거로 위작이라고 감정했지만, 물감이나 붓은 그때그때 조금씩 다른 것을 쓰기 때문에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덧붙였다. 주인이 진짜 자신이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작품에 대해 과학적 수사단은 위작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정작 작품을 그리고 판매한 작가는 모든 작품이 자신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 주장함에도, 수사관측은 작품이 모두 위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느 쪽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을 겪게 되었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우환 화백이 직접적으로 작품을 판매하는 행위에 가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기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우환 화백 작품을 위조해 팔아 2억여원을 챙긴 혐의(사기·사서명위조·위조사서명행사)로 화랑운영자 현씨를 추가 기소했다.

  그동안 미술품 위작에 대해서 사기죄·사서명위조죄 등으로 등의 이유로 인한 처벌에 그쳤지만, 이우환 위작사건 외에도 천경자사건 등을 통해 위작 관련 범죄에 대한 명시적 처벌조항이 신설된다고 한다. 특히 미술품 위작 범죄에 대해서 최대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명문화 하였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가칭)을 입법화해 2017년 하반기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전하였다.


  2016년 10월 10일, 사기죄로 기소된 가수 겸 화가 피고인 조영남과 매니저의 첫 공판기일을 가졌다. 조영님이 대작 화가를 시켜 주문한 그림에 덧칠 작업만 하고 서명을 한 후 판매해 총 1억5300여만 원을 편취했다는 이유에서이었다. 이에 대해 "현대예술에서는 콘셉트를 100% 제공했다면 대작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구매한 사람들에게 대작화가가 있고 덧칠만 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사기다."라는 주장이 대립한다. 비평가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에 “개념미술과 팝아트 이후 작가는 컨셉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꽤 일반화한 관행입니다. 핵심은 컨셉입니다. 작품의 컨셉을 누가 제공했느냐죠. 그것을 제공한 사람이 조영남이라면 별 문제 없는 것이고, 그 컨셉마저 다른 이가 제공한 것이라면 대작이지요.”라는 주장을 남겼다. 실제로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actory)’라고 부르며 조수들을 고용해 작품을 생산해낸다. 이미 외국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만연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로 가져올 때 어떠한 판결이 나올지 미술계에서는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작 의혹을 받은 조영남은 결국 사기죄로 불구속기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미술계에서도 “그림의 90% 이상 다른 사람이 밑바탕 그림을 그려주는 것은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보통의 일이다.”는 말을 한 조영남을 추가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가의 작품일수록 구매자들은 그 작품을 누가 직접 그렸는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대작화가가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 채 그들에게 작품을 판매하였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형법 제3471조 1항의 기망 중 진실을 은폐한 행위에 해당된다고 검찰은 판단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기에 빅 아이즈는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마가렛 킨의 작품에 대해 앤디 워홀이 남긴 말이다. 이 말은 거꾸로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은 작품은 훌륭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과거로부터 사람들의 관심과 선호도는 작품의 가치 측정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고, 현대에 와 이러한 모습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술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작과 위작은 가치가 높은 작품들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일부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이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를 둘러싼 사건, 또는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의 영화에서 다뤄진 사건만을 보더라도 이는 우리와 멀리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사례들임을 알 수 있다.

  과연 단순히 ‘법’을 가지고 ‘이 예술이 누구의 것이다.’를 결정지을 수 있을까? 이번 과제를 통해 자료를 모으며 든 의문이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저작권법, 사기죄와 관련된 형법 등의 법조항으로 미술계의 대작과 위작사건을 판결한다. 하지만 법이 모든 것을 결정내릴 수 없는 것이, 고전적인 작품이 아닌 현대예술로 변화할수록 경계는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팝아트로 유명세를 탄 미국의 앤디 워홀만 봐도 수많은 조수들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맡겨둔 채 자신은 아이디어만 제공하는 일명 ‘팩토리’형태의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대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이다. 영화 <빅 아이즈>에서 다룬 실제사건의 재판과정, 재판장 안에서 시간을 주고 그림을 직접 그려보라는 독특한 방식의 재판을 하도록 결정한 이유는 단지 문서로 작성된 것들로 판가름할 수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이제야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부족한 법조항을 채워가는 것으로 해결하지 못할 사건들이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더 기상천외한 재판과정들이 등장하여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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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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