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단상2 [문화 전반]

마리 루티의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읽고
글 입력 2016.12.1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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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내기

그러나 사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사랑에 대해 아는 것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다. 그저 연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에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으며 조금씩 주변을 살피듯 천천히 하나씩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직 제대로 겪어 보지 않은 이별에 대해서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사랑의 과정을 그리는 책을 읽으면서도 서로 만나고 사랑을 키워가는 부분에서는 정말 온몸으로 공감하곤 했다. 내가 느끼는 같은 감정에 대해서도 그렇게나 자세하게 멋있는 문장으로 서술한 것에 곧잘 놀랐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 이별의 낌새가 서서히 나타나고 서로 어긋나는 부분부터는 그저 소설 속 나와는 무관한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전반부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면, 후반부에서는 그저 책 속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이야기의 전개 속에 몰입하지 못하고 그들의 상황을 관망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리 루티 교수의 《하버드 사랑학 수업》에서도 거의 반절을 차지하는 떠나보내는 일에 대한 서술이 그저 당연한 말들의 연속으로 느껴졌다.

애도를 잘하는 것이 잘사는 길입니다. 애도하는 법을 알면 상실이 순전히 상실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앞장에서 밝혔듯 이 연애에 투자하면 대개는 보상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상실이 들이닥친 순간부터 우리가 다시 숨쉬게 되는 순간까지 이 보상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올 방법을 강구합니다. 이 시간이야말로 우리를 무척 지치게 하죠. 하지만 우리 삶의 그 어떤 시간보다 통찰로 가득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통찰이야말로 보상의 일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진화를 가속화합니다. 그것은 번민에 빠져 괴로워하는 삶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월을 보상해줍니다.

이러한 말들은 비단 사랑의 상실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의 그 어떤 고통에 있어서도 해당되는 말이기에 오히려 진부하다고 생각되었다. 인간 삶에는 당연히 굴곡이 있고, 그 중에는 어두운 심연 속에 들어갈 때에도 있다. 결국 언젠가는 그것을 헤쳐 나올 수 있을 것이고 훗날 뒤돌아봤을 때 그 때의 아픈 경험 역시 내 삶의 초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러한 말은 그야말로 누구든 누구에게나 해줄 수 있는 고루한 훈계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이렇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많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내 인생에 있어 영영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여겨질 경우 그 타격이 더 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실제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여전히 그 일들이 오히려 굉장히 동화처럼 여겨지고 잘 상상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성격 상 아무리 근사한 사람이더라도 이보다 더 나은 사람과는 앞으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내 자신이 너무 못나 보이고 슬프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실연을 털고 일어나는 과정이 상대에 대한 배반으로 느껴지기 않을 것 같다. 상대가 나에게서 먼저 등 돌린 경우, 더욱더 쉽게 슬픔이 증오로 바뀌어 상대방을 후회하게 해 주겠다며 이를 갈고 스스로 더 멋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 같기 때문이다. 역시 직접 느껴보지 않는 일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말로만 주절주절 하는 것은 참 쉽다.



특별함

마리 루티 교수는 존 그레이 교수뿐만 아니라 사랑에 대한 여러 다른 가설을 쓴 사람들의 의견이 잘못 되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 역시도 그녀의 주장 중 빈틈을 찾아 공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명쾌한 정의와 설명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행위로 파악된다. 그렇기에 사랑을 유형화하고 각 상황에 대한 해석을 내리려는 시도 자체에 날카롭게 눈초리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나의 사랑은 타인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 사랑의 감정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느끼고 있고, 심지어 그것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어 일률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네 항상 내게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나하고 자식하며 누구에게 기대어 어찌하여 살라 하고 다 던지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자네가 날 향해 마음을 어떻게 가졌으며 나는 자네 향해 마음을 어떻게 가졌던가? 매양 자네에게 내 이르되, 함께 누워서, “이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 남도 우리 같은가?” 하고 자네에게 일렀는데,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 자네 여의고 아무래도 내 살 힘이 없으니 쉬 자네한테 가고자 하니 날 데려가소. 자네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방법이 없으니, (중략) 내 꿈에 이 편지 보신 말 자세히 듣고자 이리 써서 넣네. 자세히 보시고 내게 이르소.”

<원이 엄마의 편지>라고 불리는 조선 시대 부부의 글 속에서도 그러한 자신들의 사랑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부분이 드러난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라는 부분은 과연 타인들도 우리만큼 사랑하고 있을지에 대해 자신들의 사랑에 대한 차별성과 자부심을 드러낸다. 이렇듯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그 가치와 특별함이 부각되는 것이다. 《하버드 사랑학 수업》 역시 사랑을 통해 우리는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며, 사랑 속의 갈망과 불확실성까지도 원한다고 말한다.


 
사랑, 삶의 축제

사랑은 인생에 풍미를 더해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다른 활동에도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스트레스로 가득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귀 기울이기도 어려울 만큼 우리 삶의 속도는 너무나 빠릅니다. 우리는 또 우리의 감각과 반응을 둔감하게 만드는 반복적인 일을 요구받곤 합니다. 출퇴근을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일마저도 힘을 빼놓습니다. 몸과 마음이 고갈된 듯한 기분이 들죠. 사랑에 빠지는 것이 그토록 좋은 이유는 이런 지겨움을 없애주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원기를 회복시켜주고 일상에 충만함을 부여합니다. 사랑은 차디찬 냉소주의자마저도 걸려들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하면 자유까지도 포기하게 되죠. 우리는 몸을 기꺼이 내맡기는 포로가 됩니다. ‘그것’을 찾는 일이 대단히 즐거워집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 또한 스스로만을 위해 살아왔던 자기 보존적이고 단조롭던 삶이 관계 속에서 차별성을 부여받으면서 가치와 재미를 갖게 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지.”라고 말하듯,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하며 우리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리고 사랑과 함께 일상의 모든 것은 특별하게 느껴지며 이는 세계 전체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가 건네는 물 한 잔 속에는 서로의 관계가 녹아 있고 상대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어린 왕자의 말처럼 물 한 잔도 축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이 주는 특별함에 매혹되어, 우리 삶의 축제를 꿈꾸며 오늘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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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Google


[이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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