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단상1 [문화 전반]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글 입력 2016.12.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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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일까?

연애를 하기 전부터 궁금해 하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연애를 하면서 더 궁금해진 감정이었다. “사랑해”라는 말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면서도 과연 내가 지금 진짜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바로 그 ‘사랑’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느낌보다는 고차원적일 것 같았고, 편안함이나 정서적인 안정감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 끓어 넘치고 폭발할 것만 같은 에너지 넘치는 형태라고 추측하곤 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경우, 그들을 분명 사랑하지만 그들을 대할 때의 사랑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감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지곤 했다. 내가 지나치게 이성적인 나머지 감정적으로 휘몰아치는 연애는 못하는 건가? 아니면 사랑은 사실 열정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감정인 것일까? 가족에 대한 사랑은 연인과의 사랑과는 아예 다른 건가? 아니면 사실 내가 아직 진정한 사랑의 짝을 찾지 못한 것인가?


 
감정의 짬뽕탕

즐거움이나 슬픔 같은 감정의 경우, 그에 수반되는 행태가 분명하기에 그러한 감정을 비교적 명확히 인식한다. 즐거울 때에는 한껏 들뜨며 웃음을 터뜨리고, 슬플 때에는 쓸쓸함을 느끼거나 눈물을 터뜨려 그러한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다. 혹은 그러한 행동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감정을 유추하기도 한다. 이렇듯 확실하게 대응되는 이들 감정과는 다르게, 사랑은 그 모든 행태들을 포괄하여 나타나기에 더욱 모호하게 느껴진다. 이보다도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가도, 그 가운데 분노를 느껴 화를 내고, 동시에 외로워서 울기도 하는 모든 감정의 상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모든 마음의 상태와 행동들은 ‘사랑’의 일부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덤덤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 싶으면서도, ‘사랑’을 정의 내리려는 그 자체가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감정 상태가 사랑의 과정 속 일부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나의 모든 상태가 그로부터 파생된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함께 있는 그 자체가 즐겁고 뭐든 해 주고 싶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남모를 고독감에 쓸쓸해하고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오들오들 떨기도 하는 이 모든 것을 나는 ‘사랑’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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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의 감정을 정의내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데에 비해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말 자체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신중을 가하지는 않는다. “사랑해”라는 말이 연인 간 너무 많이 쓰여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외의 공간에서 손쉽게 들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학교에서의 인사말이 “안녕하세요”가 아닌, “사랑합니다”였다. 기업에서도 정책적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 “안녕하십니까”가 아닌 “사랑합니다”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 서로 간의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따뜻한 마음을 상기시키기보다는 안녕하냐고 묻는 인사에 대응하는 형식이 ‘안녕하세요’에서 ‘사랑합니다’로 바뀌었을 뿐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사랑의 의미를 담기보다는, 같은 기호더라도 다른 상황 맥락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언어와 의미와 기호 사이에는 절대적이거나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언어의 자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기에 나도 처음에는 오글거리고 괜히 쑥스럽다고 느껴지던 ‘사랑합니다’라는 인사가 어느 순간 ‘안녕하세요’를 대체하며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 순간 아마 선생님들이 본래 의도하려 했던 사제 간의 따뜻한 ‘사랑’의 의미는 그 말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렇듯 오늘날 ‘사랑’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남발되고 있어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연인들 사이에서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긴가민가하면서도 어찌됐든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명목에서 “사랑해”를 인사말처럼 사용한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관계가 더욱 깊어졌을 때 그들이 느끼는 ‘사랑’의 느낌은 “사랑해”라는 말이 표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깊은 감정의 무엇임에도 그 속에 그들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어 안타까워한다.


순간 나는 클로이의 팔꿈치 근처에 있던, 무료로 나오는 작은 마시멜로 접시를 보았다.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기에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남용되고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사랑은, 적어도 클로이와 나에게는, 이제 단순히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에서 맛있게 녹는, 지름 몇 밀리미터의 달콤하고 말캉말캉한 물체였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이 부분은 그러한 “사랑해”가 얼마나 자의적인 표현인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말을 다른 말로 대체함으로써 그들만의 사랑을 더욱 특별하게 재창조한다. 나 역시 “사랑해”라고 말에 처음에는 설레고 두근거리다가도 점차 둔감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글 속에서 그 말을 할 때마다 느끼던 알 수 없는 답답함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감정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글 속의 주인공이 굉장히 낭만적으로 여겨졌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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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Google


[이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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