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록으로서의 역사, 기억으로서의 문학 [문학]

글 입력 2016.12.15 10:0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인간은 문자를 통해 자신의 삶과 의식, 행위에 대한 기억을 쓰기 시작하면서 기록을 남겼다. 문자 이전의 인간은 구술, 즉 수 세기를 걸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을 형상화함으로써 그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집단과 사회를 구체적으로 형성했다. 그러나 쓰기가 사람들 사이를 장악하면서 개인들은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구술만으로는 불가능했을 분명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쓰기는 정보의 저장과 전달, 활용에 보다 효과적인 수단으로, 말하기를 압도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대체하였다. 이렇게 쓰여진 기록으로 재구성된 역사는 기억의 대표자 또는 보증인으로서 공식화되었으며, 이러한 재구성에는 사회 이데올로기가 개입하게 되었다.

 이처럼 축적된 기록들은 후에 역사가들에게 중요한 사료로써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 사료에는 기록되어 전해진 역사기록뿐만이 아니라 그림이나 문학 등도 포함되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역사기록만으로는 상세히 조사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때때로 역사가들은 당시의 그림이나 문학을 통해 당시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사회의 면면을 조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문학과 같은 사료들은 'H'istory가 아닌 'h'istory를 조사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사료를 통해 역사의 지점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사료란 과거를 거슬러 오르기 위한 디딤돌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도 사료란 중요한 위치를 확보한다. 특히나 역사적 사실을 문학적 공간으로 이끌고 와 해석할 때에는 더욱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예컨대 역사의 공간 위에서 살아남은 역사들이 대중들에게 실제적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문학의 공간에서도 사료를 바탕으로 한 재창조의 작업이 이루어지며 이는 곧 독자들에 의해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결국 문학은 역사사료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시에 역사기록과 같이 과거를 거슬러 오를 수 있는 단서이자 역사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된다. 이는 문학 역시 역사를 해석하고 그것을 창작물로 남기는 것에 있어 사회적 책임을 져야 이유가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e24816b076607150252175598b1277c5_4sQM8AEdxzW57zf3S.jpg
(일러스트/ 경향신문)



 1) 기록으로서의 역사

 하나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앞으로의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역사가가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진보나 퇴보의 시간에 속에 속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록된 역사는 살아남아 숨쉬는 역사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지만 미래 역사의 사료가 될 가능성도 높다. 역사를 기록하고 사료를 선택함에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사료로써 책임감이 부여된 역사는 과거로 거슬러 오르는 디딤돌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제대로 기록된 사료가 아니라면 역사가는 역사의 지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역사는 승자, 혹은 살아남은 권력의 수단으로 탈바꿈되어 역사가를 일종의 공동정범으로 이끌 위험도 존재한다.
예컨대 홀로코스트를 둘러싼 서양의 논쟁에 대해 생각해보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온갖 사료를 발굴한 다음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인종청소나 대량학살 같은 것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정부와 군부, 조선총독부의 온갖 문서를 다 뒤져 보아도 위안부들이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가 되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가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수정주의자들이나 위안부를 직업여성으로 보는 일본과 한국 역사가들은 모두 그들의 주장이 철저한 사료적 작업을 거쳐 밝혀낸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그들이 발굴해낸 사료를 근거로 들어 그들이 주장하는 게 역사의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큰 책임을 요구로 하는 작업이다. 카가 언급한 것처럼 사실로서의 역사와는 다르게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역사가가 존재하는 사회의 지점이나 사회적 환경)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결과가 “왜” 나타났는가에 대한 연구의 과정에 있어 사료의 선택은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카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17)라고 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 있다. 역사가는 단순히 현재의 시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점에서 역사를 훑어봄으로써 진실된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록으로 재구성된 역사는 기억의 대표자 또는 보증인으로서 공식화된다. 이는 살아남은 역사의 공간 위에서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근거가 되고, 역사가를 역사의 지점으로 인도하는 안내판이 된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가 어떠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왜”이런 결과를 나타낸 것인 지와 더불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내포한다. 결국 역사가에게 기록으로서의 역사란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을 포함해 미래를 어떤 사회로 만들 것인가, 하는 열쇠를 쥐게 한다. 그들이 주목하는 부분에 따라 역사가 나아갈 방향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난장이.jpg난장이 표지.jpg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c) 심수근)

  

 2) 기억으로서의 문학

 문학은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2차 창작물이 되어 역사적 사료이자 또 하나의 역사가 된다. 문학은 역사와 함께 과거를 보존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의 이유가 기억이라는 점에서는 구별된다.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는 기록과 기억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기록은 시대의 중요한 부분을 집중해 최대한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 그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기억은 기록에 비해 주관성이 더 짙으며 기억으로서 남기는 것에 있어 저자의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즉, 역사가에 비해 주관성이 더 짙고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억은 기록과 구별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문학은 역사를 다방면으로 볼 수 있는 사료가 된다. 동시에 문학은 역사가 집중하지 않았던 개인들에 대해 집중한다. 예컨대 조세희 작가의『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70년대 산업화에 조화되지 못하고 밀려난 도시 빈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적 사실로 보자면 70년대는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점에 해당한다. 정치적으로는 유신헌법을 통해 군사독재를 강화했고,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일본의 선진자본에 종속되면서 국가적 독점자본주의가 심화되는 시기였다. 70년대 당시 한국사회는 산업사회의 성장에 비례하여 성장주의의 모순에 저항하는 농민운동이나, 도시 빈민운동, 노동운동 등 이른바 민중운동이 성장하게 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대표되는 인물들을 주목한다. 전태일과 박정희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역사는 빈민가의 사람들까지는 주목하지 않는다. 역사는 산업화와 그 이면까지는 관찰하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개인들에게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이는 역사의 지점에 있어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역사에 편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의 경우, 산업화를 주목하면서도 그 속의 개인들을 더욱 집중적으로 주목한다. 문학은 난장이 아버지의 죽음과 그의 아들인 영호의 죽음을 조명한다. 난장이 아버지나 아들인 영호와 같은 개인의 죽음은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남긴 사료를 바탕으로 하되, 사료가 담지 않은 재료를 이용한 창작물이다. 문학가들은 역사가 일일이 비추지 못하는 곳을 보는 데에 열중한다. 역사 속에 남지 못하는 개인들의 비극이 문학에 있어 더욱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장치로 활용되는 동시에, 문학의 목적에 대해 고민하게끔 만든다. 문학은 커다란 대의를 위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다. 즉, 문학의 목적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성찰하고 그것을 기억으로 남겨두는 것에 의의를 둔다. 결국 기억으로서의 문학이란 과거의 기억을 문학으로 남김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소외되었는지, 우리가 어떤 비극을 마주해야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문학은 역사와 달리 굉장히 주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역사의 사료나 참고에 있어 문학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보았을 때, 우리는 문학가 역시 하나의 역사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기록과는 다르게 기억은 주관성이 더 짙고 더 미세한 부분을 집중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역사와 문학은 각각 고유의 영역에서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의 영역으로 역사적 사건을 끌고 와 그것을 해석하고 재창조한다는 점에서 동의성(同意性)을 갖는다. 역사에 있어 문학은 중요한 사료가 되고 문학에 있어 역사 역시 중요한 사료이자 재료가 된다. 결국 역사와 문학은 서로 상호보완적이면서도 분리된 개인의 영역에 존재한다. 둘은 역사의 사건을 선별해 각자가 서있는 지점에서 그것을 이해한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문학은 역사를 허구적 상상력을 이용해 재창조하는 반면에 역사는 퍼즐을 맞추듯 사건의 인과관계에 집중해 재해석 한다는 차이점을 지니기도 한다.

 E.H 카는 “역사가란 사실들의 비천한 노예도 아니고, 난폭한 지배자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즉 주고받는 관계이면서 동시에 역사가와 역사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임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는 문학에서도 비슷하다. 문학가와 작품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이다. 문학가와 문학 역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어쩌면 역사가는 사실을 기술하는 문학가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문학가 역시 주관적 감성을 서술하는 역사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나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