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폰스 무하 : 그래픽디자인의 선구자展 [전시]

자연스럽게 당신 안으로 파고들 부드러운 선과 옅은 색채들
글 입력 2016.12.1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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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폰스 무하는 처음 들어보는 미술가였다. 나는 학교를 다니며 미술에 대한 공부도 접하고 있고 그에 흥미가 있는데도, 이렇게 예술의 전당 등에서 하는 큰 전시에서 모르는 이름을 접하게 되면 항상 아주 조금씩은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고 반성하게 된다.

우선 알폰스 무하는 전시의 부제처럼 그래픽디자인의 선구자로 불리는 체코의 화가이다. 그래픽디자인이란 인쇄매체를 통하여 표현·제작되는 디자인을 말한다. 그는 광고, 카탈로그 등에서 활발히 작업하며 그만의 ‘무하 스타일’을 완성시켜나갔고, ‘새로운 미술’을 뜻하는 아르누보의 양식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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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시는 6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먼저 전시관에 들어가면 관객이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어도 그의 작품 스타일을 ‘느낄 수 있도록’ 천장부터 무하스타일의 작품이 천처럼 늘어져 있고 벽에도 그의 사진이 붙어있다. 이 공간에서부터 시작되는 전시의 프롤로그 파트에서는 그의 전체적인 삶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상당히 전통적인 느낌이 보이고 지금까지 전해지는 그의 스타일은 매우 조금씩 드러날 뿐이었다. 하지만 점점 곡선적인 그의 특징이 보이고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모델로 디자인한 포스터에서 와서는 그 스타일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완연하게 들었다. 이 파트에서는 이처럼 그의 디자인적인 디테일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장을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보면, 그에 대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그 영상에서 나는 그의 유려한 곡선에 영감을 받은 타투이스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무하의 후손으로부터 그와 사라 베르나르와의 관계도 들을 수 있었다. 알폰스 무하는 "대중의 감각을 자극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그들을 깨우기 위해서 예술가는 유혹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라고 했다. 분명 그는 그만의 언어로 대중의 감각을 깨우고 유혹하는 그 방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발전시켜 온 것 같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그가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건네는 언어에 대한 ‘스토리텔링의 예술’이다. 스토리텔링은 모두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지만 그 방식은 작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상세히, 세심한 묘사를 하는 반면, 누군가는 마치 초상화처럼 이야기의 느낌만을 전달할 수도 있다. 무하만의 스토리텔링은 마치 동화책 속의 삽화처럼 연극적이고 서술적으로 장면을 묘사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변형한 그림(악마와 트발도프스키 : '판트발도프스키'를 위한 습작)이 있었다. 내가 이 파트에서 이 그림을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이 그림이 삽화적 묘사라는 그의 특성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을 똑바로 마주하고 서 있으면 그림 속의 음산한 분위기가 발치까지 풍기고 그림 안에서 창문 하나를 두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후 그가 보여준 여러 포스터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는 글자 하나를 그림에 넣더라도 장식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래픽디자인의 작품에서는 타이포그래피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글자들에서는 얇은 선과 두꺼운 선의 조화를 볼 수 있었고 신기하게 선이 두꺼워도 세심하게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삽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의 예술’ 이후로는 ‘광고 예술’을 다룬 파트가 이어졌다. 사실 그는 시대를 잘 타고 났다는 행운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가 광고 작업에 뛰어들었던 때는 석판 인쇄와 광고 수요의 급증으로 포스터의 황금시대가 열리는, 광고가 예술이라는 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시기였고, 그는 파리 도착 후 7년, 사라 베르나르가 주연한 연극 <지스몽다> 재개봉 포스터를 시작으로 그의 스타일을 담은 광고 예술의 세계를 펼쳐보였다. 알폰스 무하에게 끊임 없이 존중, 영감을 선물한 사라 베르나르에 대해 그는 "그녀의 움직임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있다. 그녀의 모든 몸짓에는 나선의 원칙이 있는데 그녀의 옷은 그녀를 휘감고, 부드러운 나선형태의 움직임으로 그녀를 껴안는다. 옷자락은 땅에서 나선의 모양을 이룬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읽으며 알폰스 무하는 우연을 운명처럼 관찰하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운명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다른 이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우연같은 운명을 몸에 두른 여인이란 얼마나 예술적으로 보였을 것인가. 그가 그린 <지스몽다> 포스터는 일자로 쭉 뻗은 빳빳해 보이는 옷을 그렸는데도 딱딱해보이지 않고 유려하게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후 그가 작업한 연극의 포스터들을 통해서 그가 극의 분위기를 잘 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포스터를 보고 이 극이 비극일지 희극일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앞서 보았던 그의 스토리텔링은 광고 예술에서도 빛을 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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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 <지스몽다> 포스터)


  그의 작품에는 반복적인 패턴이 부수적으로 들어가는데 그래서 더 장식적이고 복잡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복잡함이라는 것이 화려함과 정신없음이라는 종이 한 끗 차이 사이에서 화려함에 잘 자리잡을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하지 않은 색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색채보다는 톤을 더 잘 구사하고, 뮤트톤의 저채도 계열 색들을 많이 사용한다. 원색을 사용할 때에도 쨍한 느낌보다는 조금 바랜 듯, 안개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다.

  그의 그림에는 특유의 구도를 몸에 지닌 여인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은 그림마다 내뿜는 분위기가 다르다. 나는 성숙한 여인의 갈색 분위기에서부터 낭만을 꿈꾸는 아가씨인 듯 한 분홍색 분위기, 강인해 보이는 짙은 회색의 여인까지 많은 분위기의 여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입체적이면서 동시에 평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보이면서도 그림 속의 인물처럼 멀리 동떨어져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네 번째 파트는 ‘만인을 위한 예술가’이다. 그는 "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되겠다."고 말하며 평생을 사회에 헌신한 예술가였다. 예술의 힘으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그의 생각에 동감하는 일인으로서 그러한 자신의 가치관을 실천하며 살아온 무하에게 이루 말 할 수 없는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특성 상 그래픽디자인은 일러스트와 타이포그래피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때문에 그가 구성을 중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구성은 예술가가 그의 감정을 옮길 때 쓰는 말과도 같다."라고 이야기하며 구성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 파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은 ‘사계 :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사계라는 작품은 인간이 지금까지 사계를 통해 보고 느껴 온 모든 외형과 감정들을 느낌, 혹은 감정으로, 추상적으로 전달하기에 완벽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이 그림을 접하고 나면 무하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각 그림에서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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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사계 : 봄)

  
  다섯 번째 파트는 ‘미, 일상생활의 영감’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무하는 예술이 타인과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예술가의 임무가 사람들이 미와 조화를 사랑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라 믿으며 메이저 예술과 마이너 예술, 또는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자 했다.

그는 디자인이란 저급예술이라는 인식을 부수기 위해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했다. 이 파트에서는 그의 장식문양을 이용한 악세사리, 식기, 포도주병 등등 실용적인 물건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의 인기가 그만큼 치솟았다는 것과 또 동시에 그가 예술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 파트에서는 ‘사계’에 이어 보석 연작도 볼 수가 있다. 이는 사계와 같이 추상적인 느낌을 외형으로 표현해내는 그의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토파즈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자애로움을, 루비에서 강렬함과 요염함을, 자수정에서 우아함과 고귀함을, 에메랄드에서 발랄함과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림에서 해석 없이 이런 감정들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니 새삼 그의 대단함을 다시 느끼게 한다.
 
 
  마지막 파트는 바로 무하의 스타일을 적용,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한국,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무하 스타일' 이후의 이야기’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는 말은 무하 스타일의 구성은 비슷하지만 그림체는 자신의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시대에서까지 여전히 응용되는 그의 ‘죽지 않는’ 예술세계까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알폰스 무하 : 그래픽디자인의 선구자展>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추상적 느낌과 감성을 주고 감각적으로 일깨워준 고마운 전시였다. 낯선 화가의 분위기에 매료되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알폰스 무하를 찾기를 권한다.


[정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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