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은밀하고 어리석었고, 다수는 소수를 욕을 하며 다수는 언제나 옳았다. [시각예술]

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글 입력 2016.12.1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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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런 영화가 좋다. 보고나서 여운이 남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 때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과 할 이야기가 생기게 만드는 그런 영화. 며칠간은 자기 전 누워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영화. 아마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이란 그런 영화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크게 서사적 부분, 미술적 부분으로 나눠 보았다. 우선 미술적인 부분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난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화면을 좋아한다. 그리고 리처드 아요데 감독의 The double과 비교해 볼 생각이다. 약간 실망스러웠다. The double도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약간은 정적이고, 한편으론 암묵적으로 화면이 전환된다. 하지만, 더블은 화면, 배우, 소품 모두가 하나 되어 모노톤 색감을 이루지만,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은 그저 평범했다. 종종 소품이 예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각도, 소품의 배치 등등 소소한 부분에서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후에 미술감독이 피에르 구프로이라는 걸 알고 약간 놀라웠다. 그는 테스(1979)의 미술감독도 맡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리메이크와 오리지널 테스 화면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프라하의 봄 스틸 컷과 함께 비교해 보면 아마 피에르 구프로이의 스타일과 이 영화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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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판하면서도 역시 인상 깊은 장면은 있었는데, 이 영화가 초현실적 코미디로 뽑히는 요소 중 한가지 인 중간 중간 부르주아들이 시골길을 걷는 장면이다. 몇몇은 그들이 정처 없이 걷는다 평가했지만, 난 반대라고 생각했다. 첫 장면부터 그들은 [만찬]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어딘가의 목적 없는 목표를 갖고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중간에 나오는 마약밀매 등으로 그 목표로 인해 그 무리 자체가 다 같이 파멸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부뉴엘의 명성답게 102분 러닝타임동안 매번 놓칠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크게는 만찬을 목표로 매번 실패하면서도 식사 약속을 잡는 부르주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작게는 종교, 과한 치장, 오이디푸스 증후군, 평민에 대한 귀족들의 폄하 등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군인을 소재로 한 오이디푸스 증후군을 소재로 삼은 건 미스였다고 본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 오히려 관람자로 하여금 한 가지 주제에서 벗어나 갑자기 공황상태가 되는 느낌이었다. 감독이 그걸 노린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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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이 부르주아들을 감옥에서 석방시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시끄러운 소음으로 목소리를 대처하는 표현 부분이 맘에 들었다. 굳이 어려운 말들을 나열해 이런저런 이유를 말하고는 있지만, 속 알맹이는 없는 허무한 이야기들처럼. 라파엘이 sur-sick이란 보기에 어려운 말을 사용하며 실제론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부르주아의 모순을 잘 표현했다. 시대적으로도 정치를 비판하고, 현재 나라 인들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울부짖으면서 막상 자세한 사정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냄비근성 무뇌안 국민(청자)들인 우리를 꾸짖는 것 같기도 했다. 메이드의 나이가 51살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또한 인상 깊었는데, 그녀의 나이와 얼굴의 모순에서 블랙코미디 적 면모도 있었지만, 그 옆에서 앙리의 “그녀는 내가 어릴 적부터 우리 집안에서 일을 해 왔지요……”라는 대사에서 부뉴엘은 그 당시 어린 나이에서부터 쭉 한 귀족(부르주아)의 밑에서 일을 해야 하는 평민의 세태도 풍자한 것이 아닌지 추측 해 보았다. 토끼 터린요리, 구운 정어리 등 음식 이름들이 세세하게 표현되었다. 그냥 들으면 잘 느끼지 못하지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행위로 생각되어지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푸아그라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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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것이 있다면 왜 굳이 신부 역할이 등장했을까 하는 것이다. 평론가들은 부뉴엘은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은 그가 정한 마지막 작품 이였고, 여기서 “신부”는 그동안 그가 비판해 온 <종교>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부는 어리석었고, 용서를 실천하지 못한 나약한 인간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노동하는 목사”를 실천하고, 자신의 일을 피하거나 넘기지 않으며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해 나가고 있다. 정원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과연 우리에게 있어 극중의 신부를 욕할 자격이 있는 걸까? 아니면 부뉴엘은 애초에 신부를 비판의 대상으로 극 안에 둔 것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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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부르주아들이 만찬 중 들이닥친 무장 강도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명대사 "너희들은 잘못된 길을 걸어왔어" 가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부르주아 외에 평민들의 삶은 그렇게 순진하고, 깨끗할까? 다수는 언제나 옳고 소수는 잘못된 것일까? 물론 그들은 우리를 비웃는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우리도 그들을 비웃는다. 물론 이 영화의 제작 시대를 생각하면 그가 부르주아를 폄하하는 주제를 잡은 것이 이해가 가지만, 이런 식상한 비판에 질렸을 뿐이다. 과연 그들의 만찬을 향한 욕구가 부르주아만의 것일까? 사람이라면 당연한 과시욕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홍차를 마시거나 꽃꽂이를 하는 티타임 수업이 일부 sns에서 성행할까? 여자들이 곱게 화장을 하고, 남자들이 헬스를 다니며 복근을 키우는 이유가 뭘까? 그렇다면 과연 우리 역시 손가락질을 받는 부르주아일까? 아니면 여기서 규정하는 부르주아란 소위 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일까? 아직까지 난 부뉴엘의 의도를 모르겠다.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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