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청춘'은 결코 가볍지 않다, 뮤지컬 청춘밴드zero.

글 입력 2016.12.11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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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결코
가볍지 않다
뮤지컬 청춘밴드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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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밴드"

오디션, 도로시밴드는 물론이고 '청춘밴드 zero'까지. 다수의 밴드 뮤지컬은 '청춘'을 노래합니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습니다. 왜 밴드 뮤지컬은 항상 우정과 청춘을 노래할까. 혹은, 왜 ‘청춘’을 노래하고자 할 때는 ‘밴드’라는 형식을 가져오는 것일까. 꿈, 열정, 무모함 등. ‘청춘’을 대표하는 수많은 키워드들이 ‘밴드’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일까. 미래가 불확실한 분야이니 만큼, 아직 인기를 얻지 못한 밴드를 하고 있는 이들이 20대에 많이 분포해있기 때문일까. 

이렇게나 수많은 고민을 해도 해결되지 않던 이 질문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해결 됐습니다. 밴드뮤지컬 만큼 ‘청춘’이란 단어가 표상하는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형식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기 때문입니다. 여느 뮤지컬도 그렇지만, 뮤지컬 안에서의 그들의 모션은 ‘연기’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밴드뮤지컬에서의 이들은 극 안에서도 ‘공연’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그저 ‘노래’만을 부를 수 있죠. 열정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발산해도 위화감이 들지 않습니다. 특히나 청춘밴드 제로처럼 락 뮤지컬로, 쉴 새 없이 뛰고 소리치는 공연에서야 말할 것도 없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엄청난 에너지를 바로 앞에서 느끼는 것만큼 ‘청춘’이란 단어 자체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무나 연기로 채색되지 않은 날것의 ‘에너지’ 그 자체만으로도 밴드 뮤지컬은 ‘청춘’이란 느낌을 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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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불안한"

‘청춘밴드 zero'는 청춘을 노래합니다. 제목부터, 밴드라는 형식, 밴드 이름(blue spring)까지. 청춘 그 자체를 말하죠. 하지만 그렇게 너무 ’청춘‘을 강조해서 일까요. 저는 그 ‘청춘’이란 단어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그려내고 있는 청춘은, 너무나도 ‘청춘답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청춘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시기, 가장 열정이 넘치는 시기로 표상이 됩니다. 책임질 것이 없기에 무모하며, 현실보단 꿈을 쫓는 시기라고도 하죠. 이 모든 것이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청춘의 모습엔 이면이 존재합니다.

젊다는 것은 아직 어리고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해도 다 처음이기에 서툴 수밖에 없죠.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열정이 넘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잘 하지 못할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열심히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책임질 것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말 그대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죠. 현실보다 꿈을 쫓는 것은 아직 정착할 ‘현실’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리가 잡힌 게 아니라, 이제 잡아가야 하는 이들이 바로 ‘청춘’입니다.

그렇기에 청춘에게선 ‘불안’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직 자리가 잡힌 것이 아니기에, 이 자리가 내 자리라고 확신할 수 없기에.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면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불안 말입니다. 누군가는 ‘이것 아니면 안돼’라는 ‘꿈’을 말하지만, 사실상 그 꿈이야말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하고, 이것 아니면 안 되겠다 싶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재능 및 현실적인 제약들이 간절함과 비례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외려 간절한만큼 불안할 수밖에 없죠. 꿈이 있다 하더라도, 없다하더라도 청춘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항상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청춘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외부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내부적인’ 것들이죠.

하지만 청춘밴드의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철저하게 외부적입니다. 돈도 없고, 미래도 불확실함에도 이들은 자신의 길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밴드 말곤 하고 있는 것이 없는 강인은 물론, 부모님의 엄청난 반대 속에서 밴드를 하고 있는 미료나, 밴드를 하기 위해 계속해서 어머니께 신세를 지는 설사준 까지도 아무도 이 길을 불안해하고 있진 않습니다. 자신에겐 이 길만이 있다는 확신에 찬 듯이 보이죠. 비록 뜨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에겐 너무도 당연한 길에 단지 거대 기획사인 ‘황용’만이 장애물일 따름입니다. 

심지어 멤버들끼리의 불화도 그들이 ‘불안함’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서로에 대한 신뢰나, 이 팀의 존속여부에 대한 불안이죠. 그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그 누구도 ‘이 팀’을 나가겠다고 하지, ‘밴드 따위’ 관두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모든 선택은 ‘밴드’라는 것을 기본으로 놓고 있죠.

저는 이를 보며 과연 저런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다소 냉소적인 생각을 하게 됐었습니다. 청춘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 ‘청춘’스러움만을 좇다보니 외려 실제 청춘들을 배제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었죠. 물론 이런 생각이 든 건 제가 지금 바로 그 ‘청춘’인 나이로. 세상으로부터 그 ‘청춘스러움’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청춘에 대한 강박이, 청춘에 대한 환상이. 어떤 청춘에겐 ‘청춘스러움’에 대한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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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뮤즈가 아닌"


청춘에겐 사랑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뮤지션에게 아픈 과거는 꼭 딛고 일어나야 할 하나의 시련과도 같죠. 그래서인지, 청춘을 노래하는 ‘밴드’뮤지컬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과거의 연인’이 존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리더’의 연인 말이죠. 고래고래에서도, 도로시 밴드에서도, 청춘밴드 zero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청춘밴드 zero를 보며 굉장히 강렬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특히나 ‘도로시 밴드’와는 ‘거대 기획사’라는 요소까지 비슷해 더더욱 그랬죠. 저는 이 과정을 겪으며, 그 ‘리더의 과거의 연인’의 포지션에 많은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과거의 연인, 그것도 리더의 연인은 서사 내에서 그 밴드 자체의 ‘상처’로 작용하게 됩니다. 심지어 도로시 밴드나 청춘밴드처럼 그 연인이 밴드 중 일원이었을 경우 그 상처는 더더욱 크게 작용하게 되죠. 밴드원들은 그 당시 일들을 ‘밴드가 해체 될 위기’였다고 회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금 밴드가 존립하게 되는 것은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여성’을 맞이하면서죠. 대개 새로운 여성은 처음엔 전의 여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는 곧 현재 서사에서 밴드가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죠. 블루스프링의 가장 큰 갈등이 미료가 ‘한나 선배 얘기 좀 그만하라’며 강인에게 화를 낸 장면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밴드가 안정을 찾아가는 서사는 그 새로운 여성이 밴드 내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서사이기도 합니다. 전 여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리를 확립하는. 혹은 전 여성의 자리를 이어가는 서사죠. 저는 이 서사들을 보면서 굉장히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왜 ‘남초’집단에 여성은 유일성을 가지고 존재하게 되며, 그리고 그 유일한 자리는 왜 항상 ‘리더의 연인’격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 또 여성이 그 밴드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은 왜 리더가 과거의 연인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과 동반되는 것이며 거기엔 새로운 여성의 도움이 지대하게 작용하는 것일까.

저는 이를 보며, 여성이 남초 사회에서 자리하기 위해선 ‘연인’의 위치밖에는 용납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서사에 고민이 너무 없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밴드 뮤지컬은 대부분 남성배우로 이뤄져 있습니다. 여성 관객이 많은 연극 뮤지컬 장르적 특징 때문에 아무래도 남성배우를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거기에 여성을 등장시키기 위해서 ‘연인’이란 요소를 집어넣는 것은 너무 고민이 없는 서사입니다.

물론 청춘에게 있어서 사랑은 빼놓기 힘든 요소입니다. ‘연인’이란 존재가 매우 크게 작용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청춘’에게 ‘연인’이 시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도 맞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드 뮤지컬에서의 이러한 서사는 너무나도 안일합니다. 특히나 밴드의 위기나, 성장이 그 ‘연인’과 함께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서사 속 밴드 속 ‘여성’의 위치는 ‘밴드의 일원’이 아니라 리더의 ‘뮤즈’에 불과하게 됩니다. 남성주의적인 서사에서 고민이 사라지는 순간 여성은 그저 상징적인 가치만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청춘, 결코 가볍지 않은"

청춘, 푸른 봄. 말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입니다. 경쾌하죠. 그 어감때문인지 사람들은 청춘에 수많은 환상들을 덧씌웁니다. 밝고, 희망차고, 어딘지 가벼울 것이라는 그런 환상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환상때문에, 수많은 '청춘'들이 자신은 청춘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는 '청춘'이란 그 환상 속에서 깨어날 때가 온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청춘'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청춘이 가지고 있는 꿈, 열정과 같은 요소는 분명히 매력적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자칫 그에 매몰돼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영원히 '청춘'을 노래하면서도, '청춘'의 허상만을 쫓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수많은 고민들이 필요하죠. 극은 가벼울지라도, 그에 담긴 고민만은 무거워야할 필요가 있습는 것이죠. '청춘'이란 이름 하에 발산하는 그 에너지 만으로도 '청춘밴드zero'는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청춘밴드가 노래하는 것이 더욱 더 '청춘'에 가까워지길. 더 많은 고민 끝에 만들어진 극이 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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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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