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ina] 임신중단 합법화가 필요한 이유

글 입력 2016.12.0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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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ody My choice"
"내 자궁은 나의 것"
"낙태는 살인이 아닌 나의 선택"
 

최근 들어 낙태죄 폐지, 임신중단 합법화를 외치는 여성들의 시위가 잦아졌다. 지난 11월 20일에도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여성들이 이처럼 거리로 나와 임신중단 합법화를 주장하게 된 까닭은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입법 예고했던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 때문이다. 이 법안에 의하면, 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의 항목으로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포함시켜 낙태 시술을 한 의사에게 12개월의 자격정지를 내려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논란이 일자 복지부는 징계수위를 현행과 같은 1개월의 자격정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명칭 또한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서 ‘형법 위반행위’로 변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계속되는 이유는 바로 이 형법 위반행위, 낙태죄에 있다.


낙태를 여성의 책임으로 규정짓는 낙태죄

한국은 ‘낙태죄’를 정하여 인위적인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때문에 낙태를 한 임신부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임신부 외에 낙태행위를 한 사람 또한 처벌한다. 하지만 모자보건법에 따라 예외적으로 낙태가 허용되는 조건이 몇 가지 존재한다. 임신부 또는 배우자에게 유전성 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라면 배우자의 동의하에 합법적인 낙태가 가능하다.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여성 억압적인 행태인가. 불법임을 알면서도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여성들의 고충과 자기결정권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보건복지부의 조사를 살펴보면, 낙태를 선택한 여성의 절반 이상이 '원치 않는 임신(50.7%)', '미혼(26.2%)', '경제적으로 양육이 어려움(17.9%)'을 임신중단의 원인으로 삼았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 원인은 무시한 채 여성에게만 낙태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낳아도 죄. 낳지 않아도 죄. 

특히 미혼모(비혼모)의 현실은 낙태를 둘러싼 이 사회의 태도가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리도 태아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 낙태를 살인이라 규정짓고 금지시켰다면, 미혼모 가정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함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미혼모 가정이 받는 지원은 월 10만원~15만원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으며 사회적 시선 또한 냉혹하긴 마찬가지이다. 여성에게는 ‘몸을 함부로 굴려서’, ‘피임을 제대로 못해서’ 아이를 출산한 ‘미혼모’라는 편견, 아이에게는 ‘근본도 모르는 자식’ ‘애비 없는 자식’ 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는가. 이들을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에 방치하는 사회가 과연 생명의 존귀함을 외칠 자격이 있는지 참으로 의아하다.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들 또한 문란한 성생활을 즐긴 여성이라는 비난과 조롱에서 자유로울 수 없긴 매한가지다. 그래. 이 쯤 되면 가히 낙인찍기나 다름없다. 여성이 혼자 임신을 할리 없건만 남성의 존재는 삭제해버린 채 모든 비난과 책임을 여성에게만 뒤집어씌우다니. 심지어 피임마저 여성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졸렬함 그 자체이다. 남성이 성적 주체가 되어 여성을 객체화하고 소비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피임을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이중적인 태도인 지 정녕 모르는 것일까. 문란한 여자, 걸레녀와 같은 프레임으로 여성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여 성적으로 수동적인 태도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현실 속에서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란 쉽지 않다. 올바른 피임법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국가마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마당에 왜 니 몸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냐며 손가락질부터 하니 보기만 해도 피곤해진다.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면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낙태도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여성이 처한 현실을 알면서도 질외사정이나 콘돔 거부, 질내사정을 요구하는 남성들의 무책임한 태도야말로 문제가 아닌가. 낙태와 피임 등은 결국 여성의 자기결정권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가에 귀속된 여성의 몸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는 유독 남녀 성비 불균형이 심한 시대이다.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성비를 살펴보면, 여아 100명당 남자 아이의 수는 107.2로 정상을 유지했으나 1986년 111.7로 훌쩍 뛰어올라 1990년에는 성비 불균형이 116.5까지 치솟는다. 무려 1996년까지도 110대를 기록해 남녀 성비의 심각한 불균형이 지속된 것이다.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이유는 바로 태아감별법과 가족계획사업에 있다. 정부는 1982년부터 1995년까지 한 자녀 갖기 운동을 벌인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적게 낳아 건강하게 키우자' 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산아제한정책을 벌인 것이다. 정부의 정책과 남아선호사상이 만나 수많은 여아들이 낙태 당했으나 통계가 증명하듯이 국가 또한 이를 묵인하고 방조했다. 과거에는 인구 제한 정책을 위해 여성의 출산을 통제하고 현재는 저출산을 명목으로 여성의 낙태를 통제하니 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인식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때문에 낙태죄 폐지가 의미하는 것은 그 사회가 얼만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주체성을 인정해주는지를 나타내는 징표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거리에 나와 여성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제도의 타파를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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