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도 실패하지 않았어 : 리틀미스선샤인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2.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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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실패한 인생이라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최근의 일이었다. 주변에 취업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내게도 그들의 고민이 피어났다. 그러다 한 친구가 말했다. 카페를 차리고 싶은데, 실패하면 어떡하냐고. 시간을 그냥 날리는 거면 어떡하냐고. 친구가 너무나 진지하게 물어서 섣불리 답할 수가 없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실패가 반드시 나쁜 것인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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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흔히 말하는 실패한 인생의 가족들이 있다. 할아버지는 헤로인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났고, 15살 손자에게는 섹스를 강조한다. 아빠는 본인의 책을 팔아 성공하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경멸한다. 15살인 아들은 전투 조종사가 되기 전까지 말하지 않겠다고 선전포고 한 뒤 9개월째 자신의 의사를 노트에 적어 소통한다. 삼촌은 게이 애인에게 차인 후 자살 시도를 한 프로스트 석학이다. 마지막으로 이 실패한 인생을 사는 가족의 막내딸인 올리브는 미인대회에 집착하는 7살짜리 소녀이다.

 이 실패한 인생의 가족들은 저마다 서로를 경멸하고 미워하고 싸우지만, 막내딸인 올리브의 미인대회 참가가 확정되면서 달라진다. 이들은 노란색 고물 버스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 작은 고물 버스 안에서 가족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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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에도 나오지만 이들은 실패한 인생을 산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누구 한 명 정상적인 사람이 없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성공하지 못했고 하다못해 연애에 있어서도 실패해 자살 시도까지 했다. 우리는 이들을 보면서 웃지만 좀 더 깊이 이들을 보면 이들은 전혀 웃기는 삶을 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 도전한다. 그럼에도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이들을 손가락질 할 자격이, 과연 우리에게 있을까?

 19살 당시의 나는 나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친구들은 과외니 학원이니 하면서 공부할 때 나는 글을 쓰고 있었고 주변 선생님들은 그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공부나 해, 라는 말은 나 스스로를 '실패' 속으로 규정하는 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백일장에서는 번번이 떨어졌고 성적이 좋지도 않았다.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손에 꼽히는 아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냥 가장 좋아하는 게 글을 쓰는 거였다. 이걸로 밥을 먹고 살 수 있을지, 대학에 갈 수 있을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 가장 하고 싶던 것이 그저 글이었을 뿐이다. 부모님은 내 글에 기대가 없었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의 환경이 이러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게 무서워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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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에 들지 못한 새벽에는 스탠드 불을 켜놓고 혼자 일기를 쓰기도 했다. 사실 일기라기 보다는 메모에 가까웠다. 문득 생각난 문장들, 떠오른 단어들을 적어두고 그것으로 글을 썼다. 노트 한 권이 이런 조각글로 채워질 즈음에 내게도 기회가 왔다. 부모님이 글을 쓰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허락의 이유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가 점을 보고 왔는데, 그곳에서 대학에 붙을 수 있으니 글을 쓰는 걸 허락하라 말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집으로 오자마자 내게 글을 써도 좋다고 했다. 8월의 초였다.

 대부분 알겠지만 19살의 8월은 무척이나 바쁜 여름이었다. 수시가 얼마 남지 않은 때이기도 했고 특히나 실기를 준비해야 하는 내게는 겨우 2달 남짓한 시간이 남은 때였다. 늦게 장마가 온 8월, 방학 동안 나는 정말이지 죽어라 글만 썼다. 얼음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도 했고, 타인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도 했다. 문장 하나를 가지고 글을 전개한 적도 있었다. 부모님의 지원 속에서도 백일장은 번번이 떨어졌다. 2달을 준비하면서 나는 실기보다 재수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저 올해는 어떤 식으로 시험을 보는지 감이나 잡자, 고 생각했다.

 운이 좋았는지 그 해 대학에 붙었다. 그것도 꽤나 좋은 곳으로. 부모님은 무척이나 기뻐했지만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합격, 그러니까 19살 아이들에게 성공을 안겨주는 것은 대학이었다. 그런데 합격한 기분이 이렇게 허탈하다니. 부모님이 울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 이렇게 간단하고 어이없는 것 때문에, 그렇게도 힘들었다니. 그때서야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라는 건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이라고 해서 성공이 아니었고 낙방이라고 해서 실패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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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수를 생각했기 때문에 시험에서 떨리지 않았고, 하도 낙방하다 보니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누군가 '너 또 떨어졌어?'라고 말해도 크게 상처받지 않았다. 도전하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친했던 친구는 낙방이라는 것에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굴었다. 한 번도 실패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던 친구였다. 아무리 위로해줘도 근본적인 패배감은 친구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친구가 패배감을 놓아주지 않았던 건지도 몰랐다. 친구는 그 이후 도전하는 것에 소극적인 사람이 됐다. 그 전까지는 두려움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낙방에 크게 데인 이후에는 무엇이든 자신을 낮추고 시작했다. "나는 안 돼."라는 말은 친구의 자존감을 먹고 사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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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내가 합격했기 때문에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진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나는 지금도 공모전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뿐만이 아니라 합평에서도 그닥 좋은 평은 받지 못한다. 물론 나도 상처를 받고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떨어졌다는 이유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도전을 겁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이치이고 당연한 것이다. 실패는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고 성공은 보상에 불과하다. 보상은 기쁨이 끝나면 사라지지만 실패는 일어서는 방법을 찾게끔 만든다. 그러니까, 세상에 실패라는 악몽은 없는 것이다.

  영화 리틀미스선샤인의 마지막 장면엔 미인대회에 출전한 올리브가 나온다. 올리브는 할아버지에게 배운 저질 댄스를 추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다. 올리브의 가족들은 올리브가 상처 받지 않게 하려고 모두 무대에 난입해 저질 댄스를 춘다. 이 흥겨운 장면에서 우리는 이들의 삶을 과연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들은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성공과 실패라는 담론을 너무나 좋아한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을 나누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성공함으로써 느끼는 우월감에 도취되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를 성공과 실패로 나눌 수는 없다. 그들의 까다로운 기준에 부합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안다. 우리의 기준은 우리가 세우는 것이지 사회가 세우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나를 지나친 낙관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경쟁 사회 속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도태 되지 않느냐고 내게 물을 수도 있다. 내게도 삶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남았고 내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성공이라는 이름의 보상과 기회라는 이름의 실패가 남아있을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아무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오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니 오늘의 실패에 주눅들지 말라. 우리는 아무도 실패하지 않았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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