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엇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날이 있다 [문학]

여림의 유고전집,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이 보내는 한 편의 위로
글 입력 2016.11.2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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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날이 있다. 

 이런 날엔 누군가 걸어오는 말도 버겁게 느껴지고, 종일 비어 있던 속은 맷돌이라도 들어 앉은 듯 불편하다. 그럴 때면 나는 대체로 밝은 것들을 찾으러 다녔다. TV에서 쏟아지는 웃음, 경쾌한 음악, '해피한 엔딩'을 가진 영화들을. 그러곤 초콜렛이나 귤 같은 것을 찾으러 식탁 위의 간식 바구니를 들추는 식이었다. 그러다 깨달은 것은 밝고 달콤한 것들이 모든 슬픔을 위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날의 슬픔과 이런 날의 아픔은 오직 그 정도 만큼의 눈물로만 위로받을 수 있었다.  '이런 날'을 견뎌야 했던 나에게 같은 양의 눈물로 위로를 주었던 시집 한 권을, -특히 시를 멀리해온 사람들에게-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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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림이란 이름이 익숙한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2002년 11월, 36년의 짧은 생을 뒤로 하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첫 시집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작가)는 그가 떠난 뒤 1주기를 기념해 출간되었다. 생전 단 한 편의 시만을 발표했던 시인이었기에, 유고집에 실린 시들은 그의 장례식이 치뤄진 후에나 발견된 것들이었다. 시집은 머지않아 절판되었다. 그리고 최근, 여림의 이 '귀한' 시집을 아쉬워했던 한 출판사에서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길』(최측의 농간)이란 이름으로 그의 유고집을 재출간했다. 이전 시집에 실렸던 작품들뿐 아니라 새로 발견된 유작시, 편지나 수필 등 흩어져 있던 원고들도 여러 편 실려있어 그가 남긴 다양한 문장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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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은 여림의 등단작이자 그가 유일하게 세상에 내놓았던 작품이다. 시를 천천히 읽다보면 '실업'(失業)이란 낱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직업을 잃다'란 뜻으로 숱하게 독해해 온 그동안의 시간이 무색하게, 그 의미만으론 이 낱말이 보여주는 절망과 상실감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 속에서 '실업'의 생활은 ‘즐거운 나날’이며 '가슴이 벅'찬 것으로 서술되지만 이는 진심이 아니다. '생업'(生業)을 잃은 생활에서 '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제자리걸음'처럼 의미없는 행위 뿐이다. '실업'의 시간은 곧 '희망'이 없는 시간이며 '나'의 삶이 없는 '부재중'의 시간이다. 이 시는 살아있는 동안에 생업을,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을 잃은 누군가의 절망감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35년을 아니, 거기에서 10년을 뺀 나머지의 생애'를 시로 인해 '피폐해'갔다 .
(「1999년 2월 3일, 아침 04시 40분」)

  
  이 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여림은 등단하게 된다. 그는 당선소감에서 이로써 자신의 '필생의 업'을 이룰 수 있었으며, 시를 떠나고자 했더라도 자신이 '또다시' ‘시에 마음을 도굴당하고' 말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시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어린 시절 누나의 공책에서 처음 대면한 시들에게 마음을 뺏겼고 시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시가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말하면서도 이로부터 벗어난 삶은, 시를 쓰지 않는 삶은 그에게 불가능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들은 대부분 연하고도 여린 곳, 아물지 못한 상처에서부터 내뱉어진 목소리다. '나'가 세상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는 ‘추락의 통증’과 ‘치유할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계단밟기」) 그는 늘 홀로 있으며,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 '나'는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들은 '나'를 그저 '배경으로 지나'간다. 시 속에서는 이런 상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 묘사되며 절망감이 더해지기도 한다. '어디서나 계단의 끝은 벼랑'이라거나, 탈출을 시도해야 할 ‘나’는 ‘목발’을(「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 쥐고 있다는 식이다. 시인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얼룩진 이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다. 
 
 이렇듯 이 시집엔 비감(悲感)을 풍기는 시가 많다. 그러나 이런 감상에만 매몰되지 않게끔 해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세상에 보이는 애정이다. '나'는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했고 -비록 그런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있고 싶'어했노라 말한다.(「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그의 시엔 세상이 보여주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포착되어 있기도 하다. ‘저의 몸을 온통 가시로 뒤덮’은 선인장은 결국 '손톱만한 꽃봉우리 몇 개'(「선인장」)를 피워 내듯 말이다.  


둘러보면 모두들 살붙이 같고 피붙이인 사람들 
포장 틈새로 스며드는 살바람에 찬 손 가득
깨진 유리병 같은 소주 몇 잔을 털어 넣고
구겨진 지폐처럼 등이 굽어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오랜 친구처럼
한두 마디 인사라도 허물없이 건네고 싶어진다

포장을 걷으면 환하고 따뜻한 길
좀 전에 내린 것은 눈이 아니라 별이었구나
옷자락에 묻어나는 별들의 사금파리
멀리 집의 불빛이 소혹성처럼 둥글다

「나는 집으로 간다」 中

 
 여림의 시에는 마음을 울리는 것이 있다. 자신의 시는 미완의 작품이라 발표할 수 없었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에게 시란, 사람들에게 발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듯한 그 문장들은 시인 여림과 시 속의 '나'를 분리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점들은 그의 시가 가진 울림을 키운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는 솔직하게 슬프고, 아름답다. 누군들 상처입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눈물로 위로받을 수 밖에 없는 때가 오지 않을까. 그의 시는 누군가를 대신해 눈물이 되어주었다. 그 자신이 견뎌야 했던 상처를 내보이며 '오랜 친구처럼 한두 마디 인사라도 허물없이 건네'주는 것(「나는 집으로 간다」 ), 그곳에 여림의 시가 지닌 힘이 있다. 


대표이미지 출처 :flickr.com/photos/schermpeter42


[이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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