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배우와 관객만이 함께할 수 있는 이야기, 연극 언더스터디

글 입력 2016.11.2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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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스터디’였기에 대신이 아닌

대역은 대역이 아니었습니다.

언더스터디의 정의는 대역입니다. 메인배우가 무대에 서지 못했을 때 대신서는 배우를 말하죠.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정환이 오선생의 자리를 차지하고, 오선생을 ‘대신’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정환은 오선생의 대신이 아니었죠. 같은 ‘샤일록’이었지만 정환의 샤일록과 오선생의 샤일록은 달랐습니다. 오선생은 오선생으로 완벽했습니다. 그리고 정환 또한 정환으로 완벽했죠. 오선생은 정환으로 대체 될 수 없었으며, 정환 또한 ‘대신’이라고 말하기엔 스스로 빛났습니다. 

그 둘이 온전히 스스로로 존재할 수 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환이 오선생의 ‘언더스터디’였기 때문입니다. 정환이 언더스터디를 선 이유는 온전히 ‘오선생이 무대에 설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혹시 모를 불안을 자신의 존재로 메운 거죠. 보통 언더스터디는 무대에 서기를 손꼽아 기다리기 마련이지만, 정환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오선생에게 아무 일이 없어 자신이 무대에 서는 일이 없길 바랐죠. 정환에게 ‘언더스터디’는 무대에 서기위한 기회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오선생을 향한 마음이었죠.

정환을 언더스터디로 세운 오선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선생은 정환을 단순한 ‘보험’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선생에게 정환은 자신을 ‘대신’해서 서는 이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이. 자신이 내린 배를 계속해서 항해해 나갈 이였습니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연을 하고, 언더스터디로 정환을 내세우며, 그를 위해서 옷을 미리 고치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여주는 오선생의 태도에서 그를 알 수 있죠. 그 둘에게 ‘언더스터디’는 통념적인 의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선생은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오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해서 무대에 오르지 않습니다. 정환에게 그 자리를 넘겨준 거죠. 정환 또한 오선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연하게’ 무대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그가 남겨준 자리를 이어 받았을 뿐이죠. 이 둘의 관계는 정환이 오선생을 ‘대체’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언더스터디’였기에 정환과 오선생 모두 ‘대신’이 아니라 독보적인 스스로로 존재할 수 있던 것입니다.



무대 아래서의 마지막 연기

“지우야, 네가 분장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

이 대사는 그간의 오선생의 모든 행동들이 ‘연기’였음을 보여줍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오선생 덕에 ‘바보’역할을 맡은 후, 정말 오선생의 일이라면 ‘바보’처럼 구는 자신의 제자를 위한 오선생의 마지막 연기. 끝에 끝까지 배우로서의 자신을 기다려준 바보 같은 제자를 향한 연기. 

막공이 하루 남았음에도 그제서야 옷을 고쳐오라고 했던 것이나, 대사를 잊은 척 정환이 대사를 모두 외고 있는지 확인했던 그의 모습에서 60년간 무대에 섰던 배우의 관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무대에서와 같이, 그는 정환을 감쪽같이 숨겨왔던 것이죠. 

“매번 공포에 떨면서도 같은 짓거리를 반복해야하는 게 연극배우의 숙명 아니냐.“

매 무대에 오르는 것은 배우에겐 공포면서도 숙명입니다. 60여년간을 올라왔던 오선생에게도 매 무대는 공포였나 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숙명을 끝낼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오선생은, 무대 아래서 그의 마지막이자 일생일대의 연기를 보여주죠. 무대 아래였지만 그의 연기는, 그리고 퇴장은 완벽했습니다. 정환이 말했던 ‘마지막 커튼콜’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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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에서 연극의 틀을 깨는 

언더스터디는 무대 위면서, 무대 뒤를 표방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무대 위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무대 뒤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관객들은 무대 위를 보면서도 뒤를 보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휩싸이게 돼죠. 저 또한 이미 완성 된 연극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극이 올라가기 전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긴장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관객’이기에, 관객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됐었거든요. 저런 고집 부리다가 연극을 망치면, 연극을 미루면, 연극을 뒤늦게 취소하면, 무대에서 무너지면. 그럼 그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은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 말입니다. 무대 위에서 무대 뒤를 보여주고 있으며, 무대 위에 또 다른 무대가 있었기에 관객은 연극을 보면서도 ‘연극’이란 것 자체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던 것입니다. 연극을 지켜보는 제 3자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거죠.

그리고 이 긴장과 고민은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습니다. 


화가는 그림을 남깁니다.
소설가는 책을 남기지요.
그러나 연극은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습니다.

제 배우인생은
언제나 그때 그 무대를 기억하는
여러분과 함께 지내온 세월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이번 항구에서 내립니다.

비록 오늘은 제가 샤일록을 연기하지 않지만
저 보다 더 뛰어난 배우가
새로운 샤일록을 여러분께 선보일 것입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끝으로 이렇게 어두컴컴한 객석에서
저와 함께 감정의 교류를 하면서 저로 하여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3자가 아닌 ‘관객’으로 존재했기에 이 대사가 더 마음 깊숙한 곳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남는 것이 없는 연극의 세계. 남는 것이라곤 티켓 한 장 밖에 없기에, 그 티켓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관객들에게. ‘연극은 남길 것이 없다’는 오선생의 대사는, ‘남는 것이 없음’을 공유하고 있는 관객과 배우만이 서로 나눌 수 있는 인사와도 같았습니다. 남는 것이 없는 것이 연극의 본질이며, 매력이자 잔인한 점이니 말입니다. 그 잔인한 매력을 위해 평생을 바쳐왔을 배우나, 그를 평생을 바라봐왔을 관객에게 저 대사는 하나의 위로이자 인사였습니다.

거기다 배우 인생은 그 무대를 기억하는 관객들과 지내온 세월이라는 대사는. 관객과 배우 사이에 존재하던 제4의 벽을 허뭅니다. 오선생이 ‘베니스의 상인’의 관객에게 하는 것임과 동시에 오현경 배우가 ‘언더스터디’의 관객들에게 하는 말인 거죠. 이번 항구에서 먼저 내린다는 그의 말은, 지금까지 그와 관객은 한 배를 타고 있었음을 은유합니다. 그에게 배우 인생이란 관객과 함께 타고 온 배였던 것이죠. 

실제로 캄캄한 객석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어두운 객석에서 자신과 감정 교류를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배우의 말에서 저는 진심을 느꼈습니다. 오선생이자 배우 오현경인, 평생을 연극배우로 살아온 그들의 진심을요.

연극 언더스터디는 철저하게 연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연극의 틀을 깨고 나와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지도, ‘이것은 연극이고 당신들은 관객이다!’라며 연극 안의 상황을 철저하게 ‘연극’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저 평범한 연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형식 속에서 배우는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겁니다. 인물의 입을 빌어서 배우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연극과 현실, 인물과 배우, 관찰자와 관객. 그 미묘한 줄다리기는 연극 ‘언더스터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연극 언더스터디를 보면서 배우가 공포에 떨면서도 무대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숙명이라면, 관객은. 저는 그 무대를 보러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와 저는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오선생은 배에서 내렸지만, 정환이 이끌어가든 누가 이끌어가든. 관객과 배우가 함께하는 '연극'이란 배는 계속해서 항해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인생이 끝날 때까지 그 배에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 훗날. 오선생처럼 내릴 때. 제게 남은 것은 한낱 종이에 불과한 티켓과 기억 뿐일지라도. 연극과, 여러분과 함께 한 세월이 제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또한 오선생이 정환에게 배의 한 자리를 내어줬듯, 저 또한 수많은 이들에게 제 자리를 내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더욱 열심히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문화예술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내리더라도 누군가는 제 자리를 채워 연극이란 배가 계속해서 항해할 수 있도록. 인생에는 대역이 없더라도, 연극의 향유자로서의 제게는 '언더스터디'가 존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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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1).jpg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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