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꽃은 지기위해 피어난다, 연극 ‘언더스터디(Understudy)

글 입력 2016.11.1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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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125번째 문화초대
:연극 ‘언더스터디(Under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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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평생 하나의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삶은 어떤 삶일까. 아직 구체적인 직업도 없는 나에게 있어 오로지 한 우물만 파온 이들은 그 자체로 존경의 대상으로 보이곤 한다. 여기 연기 인생 60년을 맞이하는 한 원로배우의 이야기가 있다. 연기와 함께한 순간은 쌓이고 쌓여 지금의 그를 만들어 주었고, 언더스터디의 탄생을 알리게 했다. 그런 점에서 연극 언더스터디는 어떤 이야기가 있고, 그 극의 흐름에 따라 이어진다기보다는 한 개인의 삶에 대한 회고이자 헌정으로 느껴진다.

 언더스터디는 연극판에서 평상시에는 다른 배역을 하다가 메인배우가 부득이한 상황으로 공연에 오르기 힘든 경우 메인배우 대신에 투입되는 배우다. 그가 곧 메인배우는 아니지만 메인배우가 맡은 자리가 공석이 되면 출연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관객이 메인배우를 기준으로 공연을 선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에 언더스터디의 활약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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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언더스터디는’ 제목 그대로 언더스터디에 관련된 이야기다. 언더스터디는 60년간 연기란 한 길만 걸어온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의 길을 말하는 연극이다. 자신이 더 이상 무대위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노배우는 20년간 자신과 함께한, 애제자이자 이번 공연의 언더스터디인 정환을 자신의 배역으로 물려주고자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배역을 물려줄 것을 다짐하고 몰래 자신만의 작전을 꾸미면서 마침내 정환이 언더스터디로 무대에 오르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어찌 보면 극의 흐름은 충분히 유추 가능하겠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은 차마 담아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언더스터디는 단순한 연극이 아닌 연극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1.우선, 연극만이 가지는 그 특유의 경계를 잘 표현했다. 언더스터디의 주된 배경은 분장실이다. 분장실은 무대와 현실의 중간지점이다. 그곳에서 노배우는 샤일록이였다가, 배우 이전에 사람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는 정환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언더스터디거나, 때로는 한 사람이다. 무대에 서는 선생과, 무대를 내려와서 분장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선생은 같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환영에 있고 때로는 현실에 있다. 분장실에는 배우의 삶고, 한 인간의 삶이 같이 공존한다. 그런 면에서 언더스터디는 배우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경계의 틈을 넘나드면서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2.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그게 마지막인줄 모르고 있거나, 어떤 이는 다가올 마지막을 알며 의연하게 맞이한다. 언더스터디는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선생의 마지막 길을 장식하는 연극이다. 언더스터디의 선생은 어찌 보면 실제 배우 오현경님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까지도 배우로 남고 싶다고 하시는 대한민국 연극계의 거목 오현경 선생님이 갖고 있는 그간의 연기 인생과, 이를 마무리하는 마침표와도 같은 언더스터디다. 연극배우의 연기 인생을 담고 있는 언더스터디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으로서의 마지막, 혹은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서 알 수 있다면 어떤 마무리를 지으면서 내려올 것인가에 대한 짧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준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있지만, 마지막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잊지 말자.


 #3.연극의 내용은 오현경이란 배우의 60년 연기인생에 대한 헌정에 가까웠다. 그래서 사실 극 중반에 이르러서는 다소 지루한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선생이 사라진 시간에 선생에게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적인 고민과 갈등을 더 잘 표현해주었더라면..이라는 약간의 아쉬움도 들었다. 그래도 한 노배우에 대한 경의의 표현으로 언더스터디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연극이었다. 선생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화가는 그림을 남깁니다. 소설가는 책을 남기지요. 그러나 연극은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습니다. 제 배우인생은 언제나 그때 그 무대를 기억하는 여러분과 함께 지내온 세월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제 연기를 기억하는 분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이번 항구에서 내립니다. 비록 오늘은 제가 샤일록을 연기하지 않지만, 저보다 더 뛰어난 배우가 새로운 샤일록을 여러분께 선보일 것입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끝으로 이렇게 어두컴컴한 객석에서 저와 함께 감정의 교류를 하면서 저로 하여금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갖게 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연기와 함께한 인생을 바라보며 아쉬움 반, 후련함 반이 느껴지는 진심어린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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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배우의 대사로 막을 내린 언더스터디를 보고 오는 길에, 문득 이병기 시인의 ‘낙화’가 떠올랐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지금도 막이 내리기 전 보이던 노배우의 잔잔한 미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연극 그 이상의 연극 언더스터디였다.



<공연 소개>


제목 : 언더스터디 
: 전형재 / 연출: 송미숙
출연: 오현경, 류태호, 정상철, 차유경, 최태용, 김대건, 
이은주, 반상윤, 이소영, 조아라, 이승현, 장찬호, 이다혜
기간: 2016년 11월 4일 - 11월 13일
공동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극단 풍등
제작: 극단 풍등
후원: 서울연극협회, 한국연극연출가협회, 경기대 미디어예술문화연구소
예술감독: 오세곤 / 드라마터그: 최명희
무대감독: 김종호/ 무대 디자인: 박미란
조명디자인: 이상근/ 분장디자인: 박팔영
의상디자인: 장주영/ 음악: 정영진/ 조연출: 심현우
진행: 정준환/ 사진: 이강물/ 기획,홍보: 덕우기획, 김혜연


*이미지 출처=본인, 극단 풍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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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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