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쓸 만한 인간 : 나도 그렇고 당신 또한 마찬가지 [문학]

글 입력 2016.11.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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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주에서 그의 연기가 매력적이었던 탓일까. 박정민의 산문집이 나왔다는 말에 그 책을 손에 쥐었다. 책의 제목은 쓸 만한 인간.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 연기를 한 그의 여운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는지 진지하고 진중한 문체의 산문집을 기대했다. 예상과는 다른 문체에 정신이 멍했다. 진중함과는 거리가 문체, 가벼운 문체에 처음에는 실망했다. 이 실망감이 만족감으로 바뀌는 순간은 책을 읽어 몇 장을 넘기지 않는 순간이다. 가벼운 문체 안에 진지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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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저자를 소개하자면

 박정민이라는 작가를 소개하기 가장 적합한 것은 그가 책에 서술한 문장이다. '작가는 아니다. 글씨만 쓸 줄아는 그저 평범한 당신의 옆집 남자. 가끔 테레비나 영화에 나오기도 한다.' 이 문장은 인간 박정민을 명확하게 정의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영화 동주의 송몽규 역으로 대중에게 다가온 그. 영화 동주는 곱씹을만한 영화인데 강하늘의 윤동주를 보러 갔다가 박정민의 송몽규를 보고 온 작품이라고 기억한다.

 박정민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은 총 4부로 구성돼있다. 이 책의 초반부와 후반부인 1부와 4부보다는 책의 중반부인 2부와 3부에 더 많은 글이 실려 있는데, 이는 일상의 이야기로 마음을 푼 독자에게 중앙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전달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책 속의 그를 보자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런 평에 그는 고맙다라고 담담하게 말할 것 같다.

 쓸만한 인간은 박정민이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아주 가볍게 쓴 글인데 그 안에 담겨있는 주제 의식은 가볍지 않다. 이 책은 당신이 아직 꽃 피울 시기가 아니더라도 쓸 만한, 그것도 필연적으로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인간이라는 화살로 독자의 심장을 관통한다. 단순히 가볍게 이 책을 읽으면 그의 가볍지만 날이 바짝 선 칼날에 온 몸이 베인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책의 내용 중에서

 이 책은 다양한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돼있는데 그 중 2 에피소드의 글을 소개하고 싶다.




 ‘한 번의 인연이지만 이토록 보고 싶을 수가 없다. 여행은 그런 것. 오히려 역향수를 불러일으켜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버리게 하는 그런… 당신의 평생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여행을 단 한 번이라도 하시길 진심으로 빌겠다.’

쓸 만한 인간 中




 박정민은 여행에 대해서 매력적인 말을 서술한다. 여행의 역향수. 그것에 빠져 우울감까지 느낄 정도로 여행은 매력적이라는 것. 책에서 그는 영국, 페루, 일본 등에 다녀온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풀어 놓는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바로 베트남 여행이다. 베트남 여행을 가기 전, 기대감과 두려움이 혼재했다. 현지인들이 영어를 잘 못해 베트남어를 못하면 고생한다는 말, 고수라는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이 많아 힘들 것이라는 둥 여러가지 말이 많았지만 이 두 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식도락을 중시하는 나에게 후자는 치명적인 말이었다. 이런 저런 걱정 속에서 현실과 여행의 경계인 공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싣고 베트남에 도착하자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나를 휩쌓았다. 25년 한식 외길인생을 걸어온 내가 고수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고 고수 체질이라는 사실을, 시급 1,000원인 베트남의 물가가 상상을 초월하지만 물가가 베트남의 문화를 저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베트남의 의상 아오자이를 보면서 이곳의 전통의상예술은 한국의 한복보다 섹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일 남짓의 베트남 여행이지만 가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베트남이 생각난다. 여행의 역향수가 이런 것일까.




 ‘그 전에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중요하지 않아서 마이너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난 알고 있다. 당신들의 꿈은 ‘일 XX 잘해서 맨날 야근하고도 자부심 쩌는 대리’일 리 없다.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은 '가끔씩 직원들 야근 시켜 놓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는 일 XX 잘하는 부장’ 정도는 거뜬히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알고 있다. ‘어느 날 길 가는 노인의 짐을 들어드렸는데 알고 보니 회장님. 고속승진 고고.’ 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쓸 만한 인간 中




 열심히 살고 있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며, 메이저가 아니고 마이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부를 해도 성적은 나오지 않고, 지원하는 활동은 면접조차 볼 기회가 없을 때가 그랬다. 박정민의 저 말은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미친 경쟁사회에서 본인이라는 자아를 내 팽겨친 암흑세상의 한 줄기 촛불이랄까. 사실 책은 도끼다라는 저서가 역설하는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꿔야한다는 말은 믿기 힘들다. 한 권의 책이 인간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이렇게 궁핍하고 각박하진 않을 테니까. 그래도 인생의 방향을 180도 변경하는 일이 아닌 몇 도 수정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아질테고 우리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살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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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능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는 나영석 PD는 서로 거리가 먼 보편적인 소재 두 가지를 엮으면 스파크가 튀는데, 그 스파크가 대중과 호흡할 수 있다면 크레이티브한 것이며, 크레이티브에서 두 소재가 트렌디한 요소인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크레이티브한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한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쓸 만한 인간은 크레이티브한 산문집이다. 산문집을 어려워할 수 있는 사람에게 쉽고 가벼운 문체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대중에게 깊은 통찰력으로 이 두 소재를 충돌시켰고, 가장 중요한 조건인 송몽규라는 진실된 역을 소화한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박정민이 이 책을 썼으니까.

 그는 저자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을 말로 옮기는 일을 하다가 말을 글로 옮기고 싶어졌다고, 쓸 만한 생각 쓸 만한 사람들을 써 내리고 싶었다고.'


[이종국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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