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들의 세계: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문학]

글 입력 2016.11.1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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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 없고, 갈등도 없고, 괴로움도 없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마'라는 일종의 마약을 먹으면서 해결한다. 질병을 정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질병에 대한 공포도 없고, 굳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다. 이 멋진 신세계에는 전쟁도 가난도 고통도 없다. 사람들은 그저 과학기술을 믿고 따르면 된다. 그저 거역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으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 속 사람들은 거역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그저 순응할 뿐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소마를 복용하면 된다. 질병과 가난, 고통과 노동이 없는 사회. 우리는 이것을 진정한 “멋진 신세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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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신세계』는 영국의 소설가인 올더스 헉슬리가 집필한 책으로 미래의 세계를 그려낸 소설이다.  2540년, “멋진 신세계”에서 사람들은 인공부화를 통해 태어난다. 이들은 인공부화 병에서 태어나 세상에 나오기 전에 조건반사 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알마,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 등 여러 개의 계급으로 나눠진다. 이러한 철저한 계급 구분을 통해, 이들은 사회에서 맡아야 할 자신들의 계급 구조 속으로 고착화된다. 델타나 입실론 등의 낮은 계급은 뇌나 신체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이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 즉 하층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이다. 또한 인공배양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같은 얼굴과 체형의 쌍둥이들이 태어나게 되는데, 이 쌍둥이들은 2~3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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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공상과학이라는 소재로 미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예컨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영화 "아일랜드"와 "가타카" 등 많은 작품이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20세기에 쓰인 가공 소설, 공상과학소설, 미래소설 중에서 가장 잘 쓰인 소설로 평가된다. 시대와 사회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당시 헉슬리는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다. 헉슬리는 현대문명이 지나친 과학기술의 발달로 균형을 잃어버릴 때 어떤 비인간적 세계가 벌어지는지 천재적 예언가의 눈을 가지고 진단하였고, 더불어 서양의 사상과 기계 문명중심사상은 결국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엄중한 경고를 하였다. 그는 풍자와 철학적 사유,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융합하여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의 수단으로 삼고 위기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남겼다.

 『멋진 신세계』는 제목에서부터 ‘반어적'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무시되고 있는 세계를 ‘멋진’이라는 말로 표현함으로써, 기술 발전으로 인한 미래의 사회를 우려하고 경계하여 쓴 책이다. 즉 "이 사회가 바로 멋진 세계’라는 뜻에서 붙인 제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두렵고 비인간적인 세계를 ‘멋진 신세계’라는 표현을 통해 책의 내용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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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진정으로 희망이 가득 찬 ‘멋진’ 세계가 아니다. 이곳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틀을 벗어난 기괴하고 두려운 세계이다. 모든 질병을 정복했고, 더 이상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지만 결코 행복하고 멋진 세계는 아니다. '멋진 신세계' 속에서 인간들은 효율과 안정, 행복을 위해 인간적인 요소들을 포기했다. 예컨대,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할 필요도, 감정을 공유하고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다. 인공부화장에서 필요한 만큼의 아이들이 배양되고 관리된다. 이 “포드”시스템은 더 이상 인간들을 인간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불행해질 권리를 원한다.”는 존의 말에 우리가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불행하고 고통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헉슬리가 말하고자 한 세계는 “멋진 신세계”가 아닌 “두려운 신세계”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기술이 나아가는 방향이 반드시 올바른 곳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인류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묻고있다. 인류의 만족을 위해 평등과 감정을 박탈당한 사회. 우리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이 즈음에서 한참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하던 수저 계급론이 떠오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터 가난과 부의 세습을 받았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는 끝났고, 공부를 통한 계급 이동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학벌 조차 대물림이 되는 사회, 가난한 자는 죽음까지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는 반항과 분노를 박탈당한 채 순응하며 살아야 했다.
 헉슬리가 경고한 "멋진 신세계"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닮은 점이 많다. 어쩌면 헉슬리가 예견한 2540년의 모습은 2016년, 현재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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