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야하다고 치부하기엔 아까운 영화들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1.1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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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 따르면 ‘야하다’는 단어의 정의는 ‘천하게 아리땁다’, ‘깊숙하지 못하고 되바라지다’ 라고 한다. 종종 이 정의 그대로 야한 장면들을 써먹는 영화들이 있기도 하다. 그런 영화들을 보자면 원래 포르노와 영화에 경계가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을 들게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곡예를 타는 것 같다. 노골적인 성인 영화를 제외하고라도 대부분의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에 한번쯤은 들어가기 마련인 야한 장면들은 정말 극 전개에 필요해서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그저 홍보를 하기 위한 자극적인 요소로써 필요했던 것인지 항상 논란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그저 노출, 19금, 야한 영화라는 단어로만 치부되기에는 아까운 영화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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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년 개봉했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복잡하고 치열하거나, 화려한 연출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굉장히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심지어 엠마와 아델 역을 맡았던 두 여배우는 대부분 화장도 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옷, 얼굴, 연기, 촬영 세트 등 전반적으로 인위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더불어 감독은 일부러 배우들에게 대본을 자세히 외우지 말라 지시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영화 속 배우들이 나누는 대화들은 그들이 실제로 나누는 대화인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저 일상 생활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촬영한 것만 같다. 동성애와 파격 노출, 정사신 이라는 외부적인 조각들로 오히려 이렇게나 평범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3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날 때쯤 아델의 가슴 속 새겨졌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동성애라는 틀을 넘어 사랑을 해보았던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색깔로 와 닿아 물들인다.

그런데 영화의 성공과는 별개로 원작자인 쥘리 마로는 영화 속 등장하는 정사 장면들이 현실적으로 묘사된 레즈비언끼리의 섹스 신이 아니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여성끼리의 사랑을 남성의 시선, 판타지로 곡해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제껏 넘치도록 많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신들도 섣불리 얼마나 곡해되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적어도 아델과 엠마가 사랑을 나누었던 순간들은 그저 ‘깊숙하지 못하고 되바라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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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2016년 개봉한 “아가씨” 또한 개봉 당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비슷한 논란을 겪었다. “아가씨”의 소재도 동성애였고, 감독 역시 남성이었다는 점에서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는 연출, 촬영 기법, 연기 등이 다르고,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도 확연히 다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에로티시즘을 깔고 남성들의 억압적이고 뒤틀린 욕망에서 벗어나는 두 여인들의 탈주를 그리고 있기에 좀 더 논란의 대상이 될 여지가 있었다고 본다. 다소 이분법적으로 남성들의 세계는 모두 잘못되었고, 여성들의 사랑은 진실된 것처럼 그려지긴 했지만 히데코와 숙희의 수위 높은 신들이 거짓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런 신들을 그려낼 때 박찬욱 감독은 오히려 이성애의 관능에만 집중하고, 동성애의 관능은 너무 무관심하게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의 관능에도 불구하고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은 그저 야했다기보다는 둘의 신분적인, 정신적인 평등과 연대를 그려내고,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들만 뽑아보긴 했지만 사실 얼마 전, 11월 5일 미국의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라는 영화 매체에서는 ‘21세기 가장 섹시한 영화’라는 주제로 15편의 영화들을 선정했고, 소개한 영화들은 모두 이 순위에 등재되었던 영화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섹시하다는 것 (성적 매력이 있는, 도발적인)과 야하다는 것은 다소 다른 의미이고, 순위에 있는 영화들의 많은 주인공들이 성적인 접촉을 통해 성장을 하거나 좁은 세계에서 탈피하기도 한다. 섹시하다고 해도 좋지만, 그저 섹시하기만 하거나, 그저 야하기만 한 얕은 영화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최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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