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십니까? [시각에술]

프랑스 영화의 발전, 그리고 예술성
글 입력 2016.11.1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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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혹은 영화를 무지 좋아한다. 영상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좋고 대중성도 좋다. 대중성을 떠난 빌 비올라(Vill viola)의 시간성마저 사랑스럽게 여겨진다. 접하면 접할수록 취향이 아닌 것들을 거르게 되었고 이제와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 대다수가 유럽, 프랑스 영화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단 걸 알았다. 그리고 <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듣게 되는 여러가지 말에 대해 고찰하던 중 영화의 예술성에 대해, 혹은 어떤 흐름에 프랑스는 영화 종주국으로 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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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를 여러 가지 면모에 따라 영화의 첫 발명이라고 분류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 독일, 영국 등등 많은 나라에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비슷한 발명의 흐름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영화는 세기의 전환 사이 간극에서, 근대의 과학에 의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댱연히 영화의 첫 발명국이라는 칭호는 프랑스에게 있어서 큰 자부심 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예상 외의 사실이 있다면, 현재 미국영화는 오락성, 프랑스는 예술영화국으로 분류되는 것과 달리 애초에 오락영화의 발전을 이륙한 건 프랑스였다. 일찍부터 <지고마>나 <판토마> 와같은 범죄를 다룬 극을 제작 해 흥행을 이어나갔고 그리고 그런 흐름 사이에서 필름다르 운동이 발생했다. 필름 다르 운동은 현제 프랑스 영화의 모체라고 여겨지는 운동 중 하나로. 오락성 가득한 영화계에 경종을 울리고 대중적인 흥행물로부터 영화를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리면서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예를 들면 오페라와 연극을  촬영 후 필름화 시켜 예술성을 높이는 운동으로 초기에는 많은 호응을 얻었던 반면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치우친 발상으로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게 된다.
 
  이후 전위성과 아방가르드를 앞세운 시기를 중심으로 순수영화, 절대영화, 초현실주의영화 등 새로운 영화미학이 나타난다. 특히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은 영화예술의 본질을 찾는 운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독특한 예술성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프랑스 영화도 결국 미국 영화자본의 공세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아마 이시기부터 지금의 미국과 프랑스를 나누는 기준 잣대가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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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Roue The Wheel (철로위의 장미),1923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아벨강스의 철로위의 장미는 처음으로 봤던 프랑스 무성영화로 하이라이트 씬인 기차사고 장면을 봤던 날은 여전히 몇 안되는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숏컷으로 관객이 인지할  수도 없이 순식간에 화면을 전환시키는 방식과 심장을 죄는 급박함은 기술의 발전이, 혹은 신세대적인 것이 무조건 이전의 것보다 좋을 수는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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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전세계 예술활동에 영향을 미쳤던 전쟁이 발밣하고 프랑스 역시 전쟁 전후로 큰 변화를 맛 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발생한 경제공황은 잠시 프랑스 영화발전의 발목을 잡았지만, 33년경부터는 다시 활기를 띄어 오히려 전성기로 불리고 있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프랑스문학에서 자주 보이는 낭만주의의 전통이 영화 속에 한껏 발휘되고, 휴머니즘이 찬미되며 서민층의 낙관적인 태도가 스크린에 그대로 녹아나 있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게 되며, 독일의 점령하에서 감시와 검열에 다시 침체에 빠지게 되어 그전과 같은 밝은 휴머니즘이나 낭만주의적 기풍은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은 이전의 유명 감독들의 끝을 의미하기도 해 결국 이 무렵에는 실존주의가 주축이 된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를 필두로 해서 다방면으로 발산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영화의 전후 리얼리즘이 이 무렵에 가장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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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400 blows(400번의 구타),1959


마지막으로 근대 이야기를 할 때 누벨바그 운동을 빼 놓을 수 없다. 누벨바그는 전의 거장들이 추구했던 낭만적 허구적, 태도를 거부하고 인간과 우주의 부조리함에 대한 실존주의적 감각을 갖고 허구적이고 드라마틱했던 스타일을 탈피한 생생한 영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합체였다.

 예시로 가져온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는 '할 수 있는 짓은 나쁜 일은 다 한다'라는 프랑스 관용어로 일말의 애정이나 사랑 없이 부모와 선생이라는 권위 하나로 주인공 앙트완을 압박하는 모든 상황을 탈피하고자 하는 일탈과정을 미화 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비단 아이와 부모, 선생의 관계가 아니라 외면 받는 다양한 시대적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과연 거장 트뤼포의 첫 장편 대뷔작이면서 당시에도 센세이션하고 지금까지 사랑받기 부족함 없을을 증명하기 딱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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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말했듯이 난 편식을 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영화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적인 면과 철학적인 블랙코미디 장르를 선호한다 할 뿐이지 소위 예.술.적.인 영화만을 골라 보며 스스로 고급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라며 자만 해 하지는 않았다. 종종 나와 같은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라 다가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에게 미국 영화산업 흐름을 강요하거나 혹은 반대로 히어로물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가지 않냐며 억지로 동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으로서 미국과 유럽, 상업성과 예술성이란 잣대를 두고 편을 가르는 행위는 옳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편식의 기준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에 들어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아져 도대체 영화의 시작은 어디였고, 언제부터 편가르기가 시작된건지 혼란스러워 다 같이 이런 이야기를 해 볼 장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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