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메리카노 같기도 민트초코 같기도 한, 사랑 [문학]

글 입력 2016.11.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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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아메리카노 어쩌면 민트초코>라는 길지만 숨겨진 의미를 담고 있는 책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일본의 대표적인 여류작가 네 멍이 커피를 소재로 하여 커피에 얽힌 사랑과 인생이야기가 담긴 5편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책이다. 처음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꺼낼 때까지는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여자와 남자 사이의 사랑만을 다룬 소설은 아니었다. 조금의 실망감을 안고 글을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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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피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나무에서 피는 꽃은 더욱 인내가 필요하다. 장미는 나무에서 피는 꽃치고는 빨리 피는 편이어서 봄과 여름 사이에 묘목을 심으면 이듬해 봄에는 꽃을 피운다고 했다. 사랑을 할 때도 꽅을 기를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모든 연인이 비슷한 사랑을 하겠지만 오랜 세월 함께한 사랑은 두 사람이 가꾸기 나름이다.
- <사랑은 아메리카노 어쩌면 민트초코> p.153


  사랑은 종종 아름다우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정말 사랑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다투고, 사랑하는 연인과 다투며, 사랑하는 친구와 다툰다. 이 다툼이 격해지면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다투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때론 상처받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 속에는 ‘사랑’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본능에서 나오는 것인지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사랑받길 원한다.
  SNS를 돌아다니다 보면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이야기를 읽기도 하고, 정말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누군가의 연애 이야기를 읽게 된다. 후자를 읽다보면 ‘이런 일이 진짜 현실에도 일어나는구나.’ 싶으면서 너무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지는 반면 전자는 당장 나에게도 닥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한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나 믿었던 친구가 뒤에서 나의 욕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녀 간의 사랑에 관련한 영화가 있다. 바로 <500일의 썸머>. 영화는 오로지 남자의 시선에서만 진행된다. 남자는 낯선 여자 썸머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500일이 채워갈수록 그가 그녀에게 빠져 들었던 이유들은 점점 싫어지는 이유로 변한다. 장점들이 점차 단점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그는 영화 초반에 "썸머를 사랑해. 그녀의 미소를 사랑해. 그녀의 머리칼이나 그녀의 무릎도 사랑해. 목에 있는 하트모양 점도 좋아하고, 그녀가 가끔 말하기 전에 입술을 핥는 것도 사랑스러워."라고 말하지만 이후엔 "썸머가 싫어. 그녀의 삐뚤삐뚤한 치아도 싫고, 60년대 헤어스타일도 싫고, 울퉁불퉁한 무릎도 싫어. 목에 있는 바퀴벌레 모양 점도 싫고, 말하기 전에 혀를 차는 것도 싫어. 그녀의 목소리도 웃음소리도 싫어."라고 말한다. 사랑은 감정이기 때문에 시도때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그 주기가 상대방과 맞지 않을 때에 우리는 권태기라 칭하기도 하고 '사랑이 식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랑은 감정이기 때문에 달콤하지만 씁쓸하다. 커피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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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의 두 번째 이야기는 고층빌딩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 위치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무려 30년이나 자리를 지켜온 ‘바토’라는 카페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 카페에는 규칙적인 일상들이 반복되는데, 항상 오는 손님들과 주인 자매인 스미레 씨와 렌게 씨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이 따뜻하다.
커피집 바토에는 7개의 불가사의가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토(bateau)'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이야기가 끝나갈때 쯤, 우리는 이 불가사의를 풀게된다. '바토'는 유럽으로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 렌게씨의 옛 연인이 세월이 지나 렌게씨에게 지어준 카페의 이름인 것이다. 이제 주인 자매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렌게씨는 그때의 추억을 간직하며 15년 전에 죽은 고양이의 밥을 아직도 골목길에 준다.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렌게씨에게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사랑은 쉽게 잊혀지기도 하지만,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을 때 커다란 의미로 기억되곤 한다. 사소하다 할 수 있지만 커다란, 때로는 씁쓸하지만 때로는 달콤한. 이런 두가지 면이 공존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 상처 받으면서도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듯 하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바토에 들러 ‘씁쓸한 커피’와 과일 젤리를 주문하고 책을 읽었다. 메뉴판에는 ‘씁쓸한 커피’외에도 ‘쓰지 않은 커피’, ‘연한 커피’, ‘밀크 커피’ 등이 차례로 쓰여 있었지만 내 입맛에는 ‘씁쓸한 커피’가 가장 잘 맞았다. 언젠가 스미레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처럼 젊은 사람은 몸에 아직 쓴맛이 배지 않아서 몸이 쓴 맛을 찾는 거겠죠.”
“스미레 씨 몸에는 쓴 맛이 많이 배었나요?”
“그럼요. 긴 세월에 걸쳐서 조금씩 배었지요. 날마다 잠자리에 들어 모로 누워 있노라면 쓴맛이 목까지 차올라요. 그럴 땐 달짝지근한 걸 마셔줘야 한답니다.”

- <사랑은 아메리카노 어쩌면 민트초코> p.44


[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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