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악인惡人은 누구인가? [문학]

글 입력 2016.11.1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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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이란 무엇일까? 독일의 계몽주의 사상가인 칸트는 "자연의 역사는 신의 작품이므로 선에서 시작되지만, 자유의 역사는 인간의 작품이므로 악에서 출발한다."라고 말했다. 선택이 인간의 권리인 이상, 우리의 자유는 악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악인이란 누구일까? 우리는 악인을 떠올릴 때면 '교활한', '폭력적인', '이기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보편적인 통념상 악인이란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아왔던 악인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악인이라고 떠오르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자상한 아버지, 존경하는 친구, 사랑스런 자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악인'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른 뒤에는 이 모든 아름다운 수식어는 사라진다. 그들은 그저 교활하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인 악인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아이히만.jpg



악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던 한나 아렌트를 떠올린다. 이 재판을 참관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놀란 것은, 악행 자체의 논리적 완결성에 비하면 그 일을 행한 자의 정신적 수준은 너무나 천박하다는 점이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인 아이히만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냐는 질문에 자신은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지만,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고 대답했다. 악행의 이유는 그렇게 짧거나 사실상 거의 없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p.155.



 그러니까, 악인에 대해 다시 정의해보면 악인이란 결국 평범한 사람, 어쩌면 천박한 정신 수준의 사람들일 뿐이다. 메스컴에 보도되는 강력 사건의 주범들 역시 많은 수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혹은 자상한 지인이었다는 점에서 이 공식은  특별할 것 없이 성립된다.
 이 즈음에서 독재와 폭력이라는 악에 대해 저항한 시인이 떠오른다. 김수영이다.


IMG_2215.JPG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함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김수영, <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의 시는 너무나 철저하게 시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탈피했다. 그는 "돼지같은 주인년"이라는 다소 거친 말을 쓰며 작가 본인의 생각을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를 향해, 세 끼의 끼니를 위해 침묵하는 지식인들을 향해 그리고 오직 '시'만을 주장하는 문학인들을 향해 움직이라 소리친다. 어쩌면 김수영에게 악인이란 잘못을 보고도 침묵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든다.

 가슴아프게도, 김수영의 외침은 결국 악인들의 악인(이는 실질적인 행동으로써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뜻한다.)으로 부터 묻혀버린 듯 하지만 말이다.


한나 아렌트.jpg

 
 독일의 정치 이론가이자 철학가인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교활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 평범으로 부터 오는 것이라 말했다. 거대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결국 커다란 대의(大義)나 치밀한 고찰 없이 악을 행한다는 것이다. 2016년 현재 너무나 크고 믿기지 않는 충격의 파도들이 우리를 덮쳤다. 이 파도는 우리를 수장(水葬)시킬 수도, 어쩌면 악을 휩쓸고 사라지는 자정적 파도가 될 수도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속 국민인 이상 파도 이후의 모습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 창 밖으로, 문 너머로, 악인들의 어깨 뒤로 파도는 진격해 오고 있다.
 
우리는 악인인가, 선인인가?
파도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우리의 분노가 향하는 곳이 올바른 곳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전하며 비 내리는 저녁을 마주한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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