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뻔한 듯 뻔하지 않은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1.14 02: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movie_imageKZ51PLVT.jpg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2016, 감독 스콧 데릭슨)가 3주째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히어로물 영화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의 야심찬 신작으로, ‘마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히어로’라는 설정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는 마블 코믹스 작가 중 한 명인 스티브 딧코가 1963년 창조해 냈으며, 마블 캐릭터 중에서도 특히 괴상하고 ‘탈 히어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hero.jpg
 

개인적으로 히어로물을 별로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히어로들의 세계에서는 ‘권선징악’의 모티프가 너무나도 분명한 것이 불만이다. 시적 정의(詩的 正義, Poetic Justice)라는 용어가 있다. 17세기 영국의 문학 비평가 토머스 라이머가 만든 말로, 시나 소설 등에서 등장인물의 선행이나 악행에 비례하여 결말 부분에서 상이나 벌을 내리는 것을 가리킨다. ‘시적’이라는 용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식의 정의는 사실 판타지다. 현실에서는 꼭 착하고 정의로운 자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악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꼭 벌을 받게 되는 것 또한 아니다.


movie_image520VP348.jpg
 

심지어 현실 세계에서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 사람을 한 명 죽였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가? 평생 불우이웃을 도우며 사는 목사가 가정에서는 아내에게 폭언을 일삼는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다원적이며 다층적인 자아를 지니고 그것들 사이의 갈등을 조절하고 때로 굴복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아는 대부분의 고전적 히어로물, 예를 들어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은 ‘악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정의로운 영웅’이라는 다소 유치하고 단순한 주제를 반복한다. 관객들도 영화의 내용보다는 화려한 액션, 히어로물만의 익살스러운 유머, 캐릭터의 강한 개성 등에 주목하여 영화를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movie_imageJ8EWYL7H.jpg


<닥터 스트레인지> 또한 이런 식의 정통 히어로적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에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진부한 주제를 역대 급의 화려한 영상미와 유명한 배우들의 연기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나름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설정과 갈등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실력 있지만 오만한 외과 의사로, 사고로 두 손의 신경이 마비되자 이를 치료하기 위해 네팔로 향했다가 마법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가 히어로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철저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으며 마법사가 된 후에도 그는 한동안 ‘우주의 정의’ 보다는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네팔에서의 마법사 스승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 또한 완벽한 ‘선’의 위치에 서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정의를 위해 싸우지만 악의 힘을 빌려 자신의 생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동료 마법사에게까지 의심을 받게 된다. 또 하나, 궁극적 악마 ‘도르마무’는 사람의 형상을 하지 않고 있다. 우주 어딘가에서 악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매우 추상적인 존재로 그려진 것이다.


movie_imageK3SFGQQF.jpg
 

 전체적으로는 역시 진부한 권선징악의 스토리라인이라는 것은 차치하고, 히어로물에서도 이런 식의 다원적 인간 캐릭터를 그리고, 추상적이면서도 복잡한 우주 관념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놀라웠다. 뻔한 캐릭터에 식상함을 느낀 관객들을 의식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히어로물의 발전이 고무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우려가 되기도 하다. 인간을 더 인간답게 그려, 복잡하면서도 모호한 인간 내면의 감정과 갈등을 세밀하게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영화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다층적인 인간의 감정을 하나하나 들추어 보면 이야기가 진부하거나 뻔할 수가 없다. 그러나 관객들이 히어로물에서 바라는 것이 과연 그런 것들일까? 관객이 DC코믹스나 마블에서 원하는 것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판타지’일 것이다. 유치하고 동화적이지만 결국에는 정의로운 자가 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된다는 설정은 현실의 각박함에 지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히어로는 분명 더욱 입체적으로 진화했지만 히어로의 한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히어로와 평범한 소시민, 진부한 것과 참신한 것,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잘한 것이 이번 영화의 흥행 요소 중 하나임을 예측할 수 있겠다.


[채현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