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 언더스터디 >

글 입력 2016.11.13 20:4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극단풍등_언더스터디_포스터_최종.jpg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해 연극 <언더스터디>를 관람했다. 배우를 위한 연극, 연극을 담은 연극, 인생을 말하는 연극을 지향하며 배우의 삶을 그려내는 이 작품이, 배우가 아닌 나에게는 어떻게 와 닿을지 궁금했다. "인생에는 대역이 없다. 무대에 서는 순간 그 삶은 온전한 너의 몫이야." 이 두 마디에 사로잡혀서 이 연극을 꼭 봐야겠다고 결심했으니 말이다.





 
시놉시스

어느 대극장, 오선생이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을 연기하고 있다. 선생은 60년을 무대에서 보낸 노배우다. 분장실에서는 선생의 언더스터디인 정환이 모니터를 보며 선생의 대사와 연기를 지켜보고 있다. 정환은 20년차 연극 배우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선생의 언더스터디다. 그러던 오늘, 공연이 끝난 후 선생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 오랫동안 선생을 지켜봐 온 정환은 이상한 생각이 들지만 선생의 능청스런 연기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선생은 자신의 병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배역을 정환에게 물려줄 것을 결심하고 몰래 자신만의 작전을 꾸미는데......






연극 <언더스터디>를 실제로 관람하니 시놉시스에서 느껴지는 그 묵직함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을 완전히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연극 속의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구조여서 현대극과 고전 중의 고전인 셰익스피어 희극 일부를 오가며 극이 진행되는데, 공연의 서막이 <베니스의 상인>으로 시작되면서 시적인 대사들이 홀을 가득 채우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연극 속의 연극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무대 자체의 공간을 분리하여 연극 속 현실과 연극 속 연극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 연출이 참으로 절묘했다.


<베니스의 상인>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배우 오선생은 자신의 언더스터디(대역)인 정환이 무대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하고 마무리지어야 하는 상황이 못내 아쉬웠던 듯하다. 그는 내일 있을 <베니스의 상인> 무대가 자신의 연기 인생을 마무리짓는 마지막 공연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무대에 오를 기회를 정환에게 넘기기로 마음 먹는다. 그래서 마지막날이 되기 전,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서부터 그는 치매노인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오선생과 함께 이를 모의한 딸 오마리를 제외하고 모든 주변 인물들이 속아 넘어가는, 심지어 오선생 자신과 16년동안 함께 연기활동을 해온 정환조차 속을 수밖에 없는 그런 연기를 펼쳤다.


오랜 세월동안 무대에서 셰익스피어 희극을 다루었던 오선생은 <베니스의 상인> 마지막 공연 당일, 정말 완벽한 치매노인이 되어 사람들 앞에 섰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연극배우들 앞에선 오선생 본연의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의 의상실에 정환만이 남게 되자 완벽한 치매노인의 모습을 보였다. <베니스의 상인>과 <리어왕>의 대사들을 뒤섞어 읊으면서, 치매가 온 노인의 모습을 연기한 것이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대사 연습을 끝내고, 죽이 먹고 싶다는 핑계로 정환을 심부름 보낸 오선생은 정환에게 메모를 남기고 자리를 비운다. 그가 원했던 대로, 정환에게 언더스터디를 넘어 배우로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었다.





2016-10-26 00;41;31.PNG
 




<언더스터디>를 보면서, 중학교 국어 교육과정에서 배웠던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생각났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中 


극 중 오선생은 분명, 가야할 때를 알고 있는 이였다. <낙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라는 것을 안 오선생은 정환에게 기회를 열어주며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수상의 영예를 안지 못했던 배우 그리고 노배우의 대역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서슴없이 캐스팅을 수락하여 오선생을 돌보았던 언더스터디 정환. 그런 정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오선생은 불안과 위태로운 현실과 끊임없이 싸우는 배우의 길을 먼저 걸었던 선배로서, 치열하게 살아나가고 있는 후배 정환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것을 배워라.
연극 한 편에 배우의 성패가 걸려 있다는 욕심은 버려.
단지 충성스럽게 너의 영혼을 드러내 보이는 거야.

매번 공포에 떨면서도 같은 짓거리를 반복해야 하는 게
연극 배우의 정해진 숙명 아니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너의 범선을 띄우고 키를 잡을 때가 오지.

때로는 너를 좌절시키기 위해
태풍과 암초가 복병처럼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래도 너의 범선을 멈추지는 말아라.
미안하구나, 이번 항구에서 나 먼저 내리마."








60년동안 배우의 길을 걸어온 대배우 오현경의 독백이 모든 배우들을, 그리고 배우의 길이 아닌 또다른 인생길을 걸어가는 관객들에게 위로가 되는 연극이었다.




[석미화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