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싸이코패스가 고양이를 죽였다 -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글 입력 2016.11.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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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해도 빨리 지기 시작했다. 춥고, 어둡고. 심지어 비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비라기에는 조금 더 겨울 같은 느낌의. 추운 날씨에 사람들도 굳이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인지, 혜화는 의외로 한산했다. 저녁 여덟시, 선돌극장. 싸이코패스가 고양이를 죽인다는 이야기를 보기 딱 알맞은 분위기였다.

개인적으로 선돌극장을 참 좋아하는데, 지금까지 선돌극장에서 봤던 공연들은 모두 재밌었을 뿐더러 작품성도 있었다. 선돌극장은 혜화역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골목을 돌아 극장을 찾아가는 길마저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느낌이다. 그렇게 걸어 걸어, 빨리 발걸음을 한다고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표소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공간과 이 연극의 매력에 끌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연극영화과의 학생들도 꽤 많이 보였다.

어쩌다 보니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무대 바로 앞에 앉아본 건 처음이다시피 했는데, 선돌극장의 특성상 무대와의 거리가 정말 가까워 조금 부담스러우면서도 설렜다. 빈 무대,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 여댓개가 유독 을씨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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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동네, 조그만 빌라. 동네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즈음, 빌라 안에서도 작은 소동이 인다. 어느 날 관리인이 주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난도질된 고양이 시체. 주민들은 우리 빌라에 사이코패스 살인자가 사는 건 아닌가 하며 불안에 떤다. 그리고 모임에 오지 않은 한 청년을 용의자로 생각하여 의심으로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카센터에서 일을 한다는 그 청년의 모든 것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살인자로 몰아간다.

문제는, 그러던 와중 청년이 죽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는 무고한 시민이었다는 것. 이 사건을 기점으로 상황은 급격하게 변해간다. 이 전부터 조금씩 새어나오던 주민들 내면의 일탈성과 폭력성이 직접적으로 표출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주민들은 이 사람을 정말 싸이코패스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것이라 외치며 하나씩 증거를 조작해나간다. 모임 때에는 그렇게 서먹서먹하던 사람들이 범죄를 공모하면서는 참 죽이 잘 맞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취미도 공통이었다. 고양이 죽이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비밀스러운 것들이 하나씩 풀리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다소 극단적인 묘사가 도드라지긴 했지만, 연극은 현대인의 일그러진 한 면에 대해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주민들은 이 상황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기 위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고양이 한마리도 죽이지 않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


그들에게 사람이 죽는 사건은, 가까스로 고양이만 죽이던 와중 찾아온, 마치 선물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삶과 부대끼며 자꾸만 멍이 든다. 주민들은 자기 삶에 새겨진 멍을 치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멍을 옮겼다. 고양이를 죽이는 것으로 충족되던 해소감은 점점 흐려져 좀 더 자극적인 대상과 상황을 선망하게 만들었다. 싸이코패스를 만드는 싸이코패스들. 터져나온 뒤틀린 욕망은 병처럼, 불처럼 옮겨붙기까지 했다. 연극 내내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를 자처하며 희망적이고 상징적인 역할을 맡았던 선량한 젊은이. 그러나 그 역시 안고 있던 어두움은 어찌할 수 없었나보다. 문득 터져버린 검은 의지들에 의해 빌라의 일상은 굴러 떨어지고 만다.

같이 연극을 보러 간 친구는 연극의 내용이 너무 절망적이라며, 사람의 내면이 지닌 본질적인 것이 저렇게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보기 조금 불편했다 얘기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므로.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공감하고 있기에 불편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꽤 긴 시간임에도 끝까지 집중할 수 있도록 음향 효과가 한 몫을 했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강렬한 배경음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초반과 후반에 비해 중반부가 약간 지루했지만 전개상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되고, 다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비해 개그 요소가 미묘하게 아쉬움을 남겼다. 과한 액션이 분위기를 조금 해치는 기분이 들었다. 블랙 코미디라기 보다는 조금 맥락이 다른 느낌이다.

나는 내 안에 아픈 것들을 어떻게 두고 있는가. 혹여, 언제고 터질 준비를 마친 상처들이 있는지 괜스레 도닥여보게 되는 밤이었다. 괜히 담벼락을 지나는 고양이들에게 미안한 밤이기도 했고. 좋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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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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