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체의 인간, 가장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 「열쇠」 [문학]

글 입력 2016.11.11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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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탐미주의 작가 타니자끼 준이찌로오(1886~1965)가 71세에 집필한 소설 「열쇠」는 현대 독자들에게도 꽤 충격적으로 다가올 만한 주제인 부부간의 성(性)생활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습니다. 50대의 노교수와 40대의 부인이 그들의 부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일기에 적는 형식으로 소설은 진행되는데, 부인을 상대로 변태적인 성적 쾌락, 질투심 등을 만족시키려 하는 노교수, 겉으로는 조신하지만 속으로는 굉장한 음욕을 품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신문에 연재될 당시부터 외설이냐, 문학이냐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고 합니다. 포르노와 예술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것을 보면 분명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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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문화를 표현하는 단어 중에는 혼네(本音)와 다테마(建前)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본심과 겉모습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사람들에게 겉으로 보여 지는 모습과 진짜 속마음이 다른, 혹은 다른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열쇠」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내밀한 속마음을 드러내는 곳인 일기장에조차도 서로가 자신의 일기장을 훔쳐볼 것을 의식해 진실을 숨깁니다. 독자들은 부부의 두 일기장을 동시에 엿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그들의 진심인지 확신하지 못하죠. 심지어 부부간의 가장 사적이며 육체적으로 친밀한 행위인 성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숨기고, 서로를 훔쳐보고, 들키고 하는 노교수와 부인과의 관계는 마치 게임 같습니다. 그 아슬아슬함은 서로를 향한 욕정에 불을 지피지만 지나친 욕정과 그로 인한 긴장감은 노교수의 건강 악화와 죽음이라는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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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부부간의 관계에 있어 얼마만큼의 소통이 필요한가?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모습을 비난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디까지 타락하고, 어디까지 쾌락을 탐닉할 수 있을까? 악마주의, 심미주의의 천재 작가로 알려진 타니자끼 준이찌로오는 지나칠 정도로 성적 쾌락에 집착하는 이 노부부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일까요? 70세의 나이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이토록 파격적인 작품을 내놓은 것은 어떤 의도에서였을까요?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한 번쯤은, 도덕이라는 이름에 가려지고 음지에 내몰렸던 성(性)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보고 공론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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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성, 질투, 위선, 가식, 거짓말 등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아직까지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를 다룬 한 편의 소설, 영화, 음악, 미술 작품들은 사회 전반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죠. 예술이 도덕적 관념을 담고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쉽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기준에서라면 타니자끼 준이찌로오의 소설과 같은 탐미주의 작품들은 명작의 반열에서 제외되어야 하겠지요. 성적 쾌락에만 집착하고, 그로인해 서로를 파멸시키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도덕의식을 찾는 것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문학 작품을 비롯한 예술의 역할은 ‘가르침’이 아니라 ‘보여줌’이 아닐까요? 독자, 혹은 관객에게 그것이 좋든 나쁘든 인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문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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