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책과영화] 03. 니크 바르코프와 롤프 쉬벨의 < 글루미 선데이 >

글 입력 2016.11.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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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작품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유의미한가, 무의미한가 혹은 의미 자체가 존재하기는 하는가, 하는 식으로 야기되는 숱한 의문들까지도 모두 작품이 품고 있는 ‘가능성의 메시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해석의 여지는 언제나 개인에게로 열려있을 수밖에 없는데 때문에, 한 작품을 경험하고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감정을 비슷한 깊이의 정조(情調)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기적 같은 일인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음악이든 시각 예술이든 문학이든 간에 어떤 예술 작품을 접할 때, 수용자가 그 작품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양상은 크게 두 경우가 있다. 작품이 의도하는 혹은 작품의 의도를 넘어서서 해석할 수 있는 명료하고 중화된 상태의 상징적 가치를 이해하면서 만족감 내지 교훈, 성찰을 얻는 경우 그리고 수용자의 감정과 충격이 극한으로 몰리며 기존의 감각과 이성이 마비되고 전복되는 경우다. 

  그런데 여기, ‘세계 2차 대전’이라는 격동하는 시대에 ‘자살의 노래’라 불리며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곡이 있다.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1935년 헝가리 가수 레죄 세레스가 이 곡을 작곡, 발표하고 나서 수백 건의 자살이 연달아 일어나자 BBC 방송 금지 판정을 받을 정도였다고 하니 지금으로써는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암울하고 심각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노래에서 ‘똑같은 메시지’를 듣고 너도나도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할 수 있었을까?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로 퇴폐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인지라 < 글루미 선데이 >는 빌리 홀리데이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하면서 곡 자체도 크게 유명세를 탔고, 1988년 니크 바르코프에 의해 소설로 출간, 1999년에는 롤프 쉬벨 감독이 바로코프의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화 한다.



그러나 결국은 같은 이야기 < 글루미 선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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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크 바르코프의 소설과 롤프 쉬벨의 영화는 일단 줄거리부터가 다르다. 영화에서는 일로나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둘러싼 세 남자의 우정과 갈등 양상을 중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소설은 그런 러브스토리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들의 긴밀한 상호작용 사이에서 내내 치명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던 영화 속 일로나는 소설에서는 피아니스트의 노래를 듣고 자살한 명문가의 여자로 잠시 언급될 뿐이다. 

  니크 바르코프의 < 글루미 선데이 >는 ‘우울한 일요일의 노래’를 작품 전반의 분위기를 형성시키는 실화 모티프로 사용하면서 나치 시대의 정치상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세계 2차 대전’ 중의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배경이며 레스토랑 지배인이었던 유대인 자보와 나치 연대장 한스 비크가 주요인물이다. 내러티브 방식에 있어서 소설은 영화와 달리 이렇다 할 큰 스토리가 드러나지 않고 서술자와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을 전면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인물들의 개성이 영화에 비해 흐릿하게 표현되거나 주제를 이해하기 힘들게 서술되진 않았다. 작가는 자보와 비크라는 인물상을 통해 ‘예술’과 ‘역사’의 비틀린 아이러니를 설명하는데 영화에서 미처 다 그려지지 못했거나 파격적인 러브스토리에 가려진 이면들이 소설 속에서는 구체적인 생각과 대화를 통해 확실히 드러난다.

  자보는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요리에 자부심을 갖고 그것을 예술로까지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에게서 요리란 세계를 죽음 충동과 야릇한 멜랑꼴리로 현혹시킨 피아니스트의 노래와 다르지 않다. 인간의 본질, 생의 내밀한 목소리를 관통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예술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작품 속에서 내내 요리에 대해서 만큼이나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에 애정을 갖는데,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그가 만든 노래의 진정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끝까지 고민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헝가리에 드리워진 살벌한 전쟁의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타국으로 도망가지도, 레스토랑을 버리지도 않는 자보의 행동이 이러한 지점으로 설명된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비크는 나치 연대장으로 복무하며 나치의 사상과 체제에 동조하긴 하지만 맹목적인 충성심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것이 우선인 독특한 캐릭터인데 그는 전후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 유대인을 탈출시키고 그들의 증언을 수집하여 현대 독일 사회의 엘리트 지배계층으로 복권되는 등 기가 찰 정도로 약삭빠른 인물로 묘사된다. 이런 식으로 작가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나치의 잔재와 인간의 탐욕을 꼬집으며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대화를 통해 전시 상황의 암울함을 담담하게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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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영화는 단순히 복잡하게 얽힌 운명 앞에 내쳐진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만을 그린 것인가. 딱히 그렇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시작하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ost로는 오직 ‘글루미 선데이’ 단 한 곡만을 쓰면서 그것을 적절히 변주해 분위기를 형성해 나간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난 후에 계속 마음을 붙드는 것은 사각관계 러브 스토리가 아닌 아름답지만 어쩐지 황폐한 헝가리의 정경 그리고 처연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다. 물론 한 여자가 두 명의 남자를 동시에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녀의 반쪽을 갖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곁에 있으려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심지어 그 남자들은 사랑의 라이벌 관계이면서도 서로 돕고 돕는다) 우리는 ‘사랑이 대체 뭐지? 저들의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지?’라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지만, 주인공들을 우울의 극한으로 몰고 가는 노래의 진짜 메시지를 어렴풋이 느끼고 나면 작품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다. 

  ‘글루미 선데이’의 작곡가로 나오는 안드라스는 자살하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묻고 또 묻는다. 자신이 쓴 곡이긴 하지만 이 곡의 진정한 의미는 따로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 그리고 자보는 죽은 안드라스를 회상하며 힘들게 말한다. 홀로코스트, 학살의 시대에서 ‘존엄 없이 사는 것보다는 존엄 속에 죽는 것이 낫다’라고. 일상을 파국으로 만드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탐욕 속에서 그들의 상식 밖의 사랑은 오히려 단순하고 인간적인 면모로 다가온다.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들은 자신이 갈망하는 것과 자신을 채워주는 것 사이에서 기꺼이 떠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과 다툼, 이별이 있는 모든 일상 속에 똑같은 곡이 흐른다. 글루미 선데이. 듣고 싶지 않은, 알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 했던 이 죽음의 노래는 생의 덧없음과 역사의 폭력, 일상의 파국, 거대 권력의 부조리와 무참히 짓밟힌 인간 존엄을 관통하고 있었다. 
  당시 일어났던 수많은 이들의 자살은 이유 없는 충동으로 인한 미스터리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인은 ‘글루미 선데이의 저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엄 없는 현재의 실체, 시대의 메시지를 알아버리고 난 후 엄습하는 허무와 환멸이 드리워진 이유 있는 죽음이었다.





Gloomy Sunday

우울한 일요일
내 시간은 헛되이 떠도네
사랑스러운 그림자들
수많은 하얀 꽃들과 함께 내가 머무네
검은 슬픔의 의자가 당신을 데려갈 때까지
결코 그대를 깨우지 않으리
천사는 다시 그대를 돌려주지 않을 거야
내가 당신 곁에 머문다면 천사는 분노할까

내가 흘려보낸 그림자들과 함께
내 마음은 모든 것을 끝내려 하네
곧 촛불과 기도가 다가올 거야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기를
나는 기쁘게 떠나간다네
죽음은 꿈이 아니리
죽음에서야 나는 당신을 안을 수 있네
내 영혼의 마지막 호흡으로 당신을 축복하리

꿈꿀 뿐, 나는 깨어나 잠든 그대를 보는
꿈을 꿀 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소망하네
내 꿈이 당신을 유혹하지 않기를
내 마음이 속삭이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간절히 갈망하는지


"우울한 일요일의 노래. 즐거움을 증오하고 의무와 질서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마주하면, 인생의 즐거움을 좇는 사람들은 마치 패배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정녕 패배자일까? 이 소설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_ 작가의 말 중"






* 영화와 소설 모두 세계 2차 대전, 홀로코스트라는 암울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며 그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일상이 어떻게 파국을 맞이하고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무참하게 훼손되는지를 보여준다. 러브스토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두 작품이 사뭇 다르게 보이기도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나치 시대를 다루는 일반적인 작품들처럼 아픔과 참상이 극대화되지 않으면서도, 시대상에 대한 깊은 통렬함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영화가 소설이 지향했던 주제 의식을 잘 따랐다고 생각한다.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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