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담담하게 삶을 위로하는 시인 -고은 [순간의 꽃] [문학]

글 입력 2016.11.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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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이다지도 헛헛한 이유는 단지 쓸쓸한 가을이기 때문일까.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계절로 접어들 때 즈음에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오늘은 꼭 일찍 수면에 빠지리라 굳게 다짐하며 눈을 꼭 감으면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상념들에 사로잡혀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수많은 별들이 떠올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우주를 헤엄치는 순간에 나의 눈꺼풀 또한 파르르 떨렸다. 이처럼 쉬이 잠들이 못하는 밤에는 나는 장문의 소설보다는 문장이 간결한 시집을 꺼내들고 읽곤 했다. 때로는 미사여구 가득한 문장들 보다는 짧은 문장들이 내 마음 한구석을 저릿하게 만든다. 요즘 나의 마음 깊숙한 곳의 감성을 파고드는 시집 한권이 있다. 바로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청춘을 노래하는 시인 고은의 [순간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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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 순간의 꽃, p29.



이 구절을 읽었을 때 평범하고 사소한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꼈다. 혼밥, 혼술 요즘 시대에 혼자 하는 것들이 많아져 그 행위를 지칭하는 단어가 생길만큼 현대인들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보다 혼자임에 익숙해져갔다. 그러나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진다고 하여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적막한 집에서 홀로 밥을 먹고 있노라면 마음 맞는 누군가와 밥을 먹으며 힘들었던 하루를 서로 나누고 밥 한술, 반찬 하나에 그 고단함을 꼭꼭 씹어먹고 넘겨버리는 행위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비로소 혼자 돼서야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된다. 뜨뜻한 국 한 숟가락을 호로록 넘기는 행위가 나의 공허한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순간이었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흔하지만 최고의 행복을 선사하는 것, 별거 아닌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사실 사랑에서 비롯된 소중한것들이었다.






어쩌자고 이렇게 큰 하늘인가
나는 달랑 혼자인데

- 순간의 꽃, p52



자정을 넘긴 야심한 밤에 나는 이 두 문장에 잠이 퍼뜩 깨버렸다. 간결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의미는 내게 폭풍처럼 다가와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으며 나는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마냥 휘청거렸다.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마주한 세상이 얼마나 차갑고 매서운지 온몸으로 느꼈다. 이제 막 사회초년생이 된 나에게 세상은 호의적이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매일 밤 좌절과 막막함 부정적인 모든 것들이 나를 덮쳐왔고 짙은 회의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더 나아지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며 별 다를 것 없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세상을 품으리라 힘차게 도약했지만 나는 이다지고 작고 약한 존재였다.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고 계절 또한 부지런히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는 방랑자였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 깊은 귀감이 되는 이 시인에게도 하늘은 여전히 크고 스스로를 작은 존재로 여겼다.


넓은 하늘은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만 가혹한줄 알았는데 나이가 먹어도 혼자 인 것에 절망하고 괴로워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시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독하게 행복하기만 한 삶을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낙원이 아니라 고난 위에 서 있다고 하였다. 어찌보면 전혀 희망적이지도 밝지도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통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이 상황에서 오히려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초연함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고뇌하는 청춘에게 뜻밖의 위로가 된 문장이었다.





다시 한번 폭발하고 싶어라
불바다이고 싶어라


한라산 백록담

-순간의 꽃, p68



나는 이 시를 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이 휴식기라 할지언정 몇번은 폭발하고 분출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폭발의 끝을 알리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를 때 진정으로 생이 죽음으로서 영면에 드는 것이다. 백세시대인 현재 나는 겨우 사분의 일을 넘긴 시점이다. 나는 현재 스스로가 슬럼프에 접어든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슬럼프가 예상보다 길어지면 모든 것이 끝난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었다. 과연 내가 이 무력감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배되었다. 다시 한번 폭발하고 싶다는 것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나는 폭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휴식기가 길어져도 결국 극복하고 움츠렸던 몸을 일으켜 다시 일어섰다는 것이다. 평생을 활화산같이 역동적인 인생을 보내기엔 너무나 많은 고난과 역경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한번의 분출로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다시 폭발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불꽃은 본능적으로 남겨둔다. 스스로 휴화산 상태에 접어들면서 다시 붉은 불꽃을 만들어낼 순간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지금 휴식기의 기간이 조금 더 길어진것일지도 모른다. 다시금 나를 세상에 알리기에는 때가 이르다고 판단해 본능적으로 움츠리며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걸 수도 있다. 한라산의 백록담은 언제가는 한번 더 폭발할 것이다. 그 폭발은 한번이 아닌 여러번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만한 거대한 폭발이 될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주변을 놀라게 할 만한 뜨거운 화염을 가슴에 품은 채 그것을 불꽃으로 틔우기 위해 밑거름을 만드는 단계인 것이다. 언젠가 불바다에 뛰어들어도 그 뜨거움에 녹지 않고 더 빨간 불꽃을 틔울 사람이 될 것을 다짐했다.


삶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가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고은은 이렇게 대답했다.





절망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꿈과 희망은
가장 무서운 어둠 속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절망을 두려워한다면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없다. 희망과 좌절, 행복과 슬픔, 긍정의 것과 부정의 것이 반복되기에 때론 지기도 하며 극복할 수 있는것이다. 세월이 프르면서 이것이 진정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온다. 지금 세상은 청춘에게 가혹한 시대이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겨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용쓰다가 결국은 작은 행복 하나 편히 누리지 못하고 암울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주에서 본다면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고민은 먼지 한 톨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힘든 현실은 힘든 대로 잘 버텨가면 된다는 것이다. 최상의 해답을 찾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 공감할 만한 타협안을 찾아가며 어떻게든 살아간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하나의 시가 된다. 우리의 슬프고 힘든 순간도 하나의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며 살아갔음 한다. 우리들의 삶을 문장으로 담담하게 읇조리며 위로하는 이 시집을 잠들기 전 머리맡에 두고 읽어보았음 한다.


[강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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