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반부논어로 ‘곡성’을 음미하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1.07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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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을 마주했다.
난 영화든 책이던 편식이 심하다. 심지어 인생영화, 내 경우에는 더 더블(The double), 블랙스완(Black Swan) 같은 영화들은 좋았던 첫 경험으로 남기고 싶다며 오히려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있는 끝없는 생각이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신선함을 잃게 되는 것처럼.

사실 영화를 보고 호감을 느꼈을 때 거기엔 영화 본질 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다. 클래식은 비 오는 날 침대에 파묻혀 보는 것이 좋고, 쏘우는 학교에서 방학을 코앞에 두고 다 같이 소리 지르며 볼 때 짜릿하다. 더 더블 역시 ‘생일 저녁 사랑하는 친구와 학교에 남아‘ 라는 요소가 함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좋다고 느낀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드물었고 <곡성>역시 ’최고의 국내 영화야! ‘ 라고 외치고는 있지만, 정작 정확한 감흥의 근거는 없다. 그렇게 표류 된 일방적인 호감만 남아있던 와중 AXT 7/8월 호에 실린 황 현산 평론가님의 <곡성>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과장 없이 팔뚝에 닭살이 올랐다.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모자>와 하일지 <경마장 가는 길> 기욤 니클루의 <잭 몽골리>를 빌려와 곡성과 나 홍진 감독 사이 은밀한 관계에 대한 고찰은 청량감 있게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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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ashleyj.tistory.com/48


‘나 홍진은 미끼를 던졌고 우리는 그것을 물었다.’


  최근 감독이 일방적으로 관객을 우롱하는 형식의 영화들에 빠져 있던 중이라 ‘어머 나 홍진 감독에게 조롱당한 느낌이야!’ 즐거워했지만 어딘지 거치적거리는 의문들이 남아있었는데 그 간지러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주셨다. 우선 악을 고발하는 태도를 라모와 R, 탐정 3가지로 나눴다. 개인적으로 나는 감독이 시니시즘을 순응주의에 연결시키며 철저하게 악을 붕괴시키는 라모일것이라 확신했지만, 평론가는 <잭몽골리>의 서사처럼 결국 외부관찰자로 남지 못하고 그 안에 침몰되었다고 표현했다. 그래, 나 역시 분명히 나 홍진 감독이 고발하고자 하는 부분에 통쾌함을 느끼고 공감했지만 여운 끝 무렵부터는 알 수 없는 의문이 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고발자로 남지 못하고 휩쓸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앞서 말했던 저 감정 남기기로서의 행위는 기막힌 오만 이였음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의 쾌락을 남기기 위해 다른 요소들을 방해물로 여기며 오히려 소중한 감정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매사에 음미 해 보는 버릇을 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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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blog.naver.com/cheeseinthepanasonic/220724479622


 앞선 이런 불쾌함에도 <곡성>이라는 영화가 최근 지지부진했던 한국영화에 획을 긋는 작품 중 하나라는 의견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단순 오픈 엔딩이나 서비스 컷을 위해 성급히 결말짓는 구성 보다 말도 많고 호불호가 크되 토론의 여지를 남겨주는 매체에 더 후한 평가를 내리는 편이라 <곡성>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 덧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믿음, 그게 종교적 의미든 신뢰의 의미이던지 간에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선과 악을 구분 짓게 강요하고 악을 매도하게 하며 스크린 밖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도록 유도한다. 그 절정은 막바지에 무명과 종구의 대립에서 최고조에 이르러 어느 쪽이던 결정짓게 재촉한다. 그리곤 결국 유약한 사람으로서의 판단은 쉽게 뒤바뀔 수 있음을 말하고, 우리의 정의, 인식, 신앙 그 외에 많은 개념 자체에 의문점을 던지고 있다. 그렇기에 또 다시 영화에 대한 수없이 많은 해석들이 연장된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앞뒤가 맞지 않는, 예를들어 왜 하필이면 효진이 인지, 외지인의 훈도시는 환각인지, 뜬금없는 좀비 장면과 외지인의 부활 등 여러 가지 걸리는 것들은 “세상사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많고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피해 받는 상황에 대해 미신적으로라도 당위성을 부여 하고 싶었다-” 는 감독의 말을 듣고 개의치 않기로 했다. <곡성>은 그 자체로도, 나를 반성시킨 의미로도 소중한 영화로 남을 것이고 혹 개봉 당시 불쾌함에 중간에 영화관을 빠져나왔던 분이 이글을 읽고 있다면 앞서 말했던 황 현산씨의 평론과 함께 다시 음미 해 보는 건 어떨지 추천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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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AXT no007 2016 7/8 p72 - 78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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