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정투쟁 밀어내기 [문학]

‘루소의 『에밀』 읽기’를 통해 살펴본 삶 속에서의 작은 노력들
글 입력 2016.11.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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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이전의 봉건사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계급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는 ‘귀속주의’ 사회였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개인의 능력에 의해 성취한 것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업적주의’로 인정 방식이 변화한다. 이러한 업적주의의 기본전제는 모든 사람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노력하면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성취한 결과물에 의해 개인의 능력을 평가받게 된다. 그 중에서도 눈으로 보이는 결과가 더 많은 인정을 받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므로 사람들은 학력, 재력, 권력 등을 계속해서 탐닉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그 자체보다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것에 더욱 집착하게 되고 타인의 의견을 압도하는 데서 자부심을 충족시키는 등 비교대상을 타인에게 두게 된다(이기범, 2016: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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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투쟁’이라는 것을 처음 들어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단어가 낯설 뿐, 이미 우리주위에 만연해 있는 개념이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자신의 존재자체나 행위에서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인정에서 찾는 것, 그래서 인정받지 못하면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 더 심해지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게 되는 것, 이것이 현대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인정투쟁의 예이다. 의외로 인정투쟁에도 긍정적인 측면은 존재한다. 우리는 주위사람에게 인정받을 때 기뻐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우리의 존재감이 인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을 보여준다. 또 자존심 역시 인정에 의해 생긴다고 말할 수 있다. 루소에 의하면 자존심은 친구와 이성을 갈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이기범, 2016: 126)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감성이다. 사랑받고자 하는 감정은 상호적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이기범, 2016: 127). 자존심이 긍정적으로 발달하면 상호존중이라는 성향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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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인정‘투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존재감이 타인의 인정에 달려있게 되면 스스로의 ‘진정성’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집착하게 되고 자신이 주체가 아닌 타인에게 의존하는 노예의 삶이 된다. 잠깐 승자가 된다 해도 그것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평가된 사람과 비교되어 얻은 인정이므로 결국에는 모두가 패자가 되고 자기소외에 빠지게 된다. 근대 이후부터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우리 존재의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이다.

 루소는 인정투쟁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주의교육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개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자생력을 개발시키는 방안으로 구체화된다. 자생력은 개인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하지 않고 그들이 역경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개발된다. 한편으로 사회는 자연인 교육을 위해 개인에 대한 간섭과 영향을 최소화시켜야 한다(이기범, 2016: 72). 이는 다른 말로 ‘소극적 교육’이라고 하는데 부적절한 영향을 방지하면서도 개인에게 필요한 경험을 적절한 방식으로 장려하는 일도 여기에 포함된다(이기범, 2016: 104). 그리고 나서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구체적 타자’에서 ‘추상적 타자’들에게로 확장시킬 수 있는 도덕교육과 세계관을 키우는 시민교육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사소한 것이라도 도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사람은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 본성이고 나 역시 그렇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내가 무엇을 얻겠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한 길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인격적인 모독을 느끼고 개인적 여가시간이 조금 줄어든다고 해서 부모님께 용돈받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부모님이 은퇴하고 나서의 나는 수입없는 통장에 빨대를 꽂은 모기에 불과할 것이다. 또 팀과제를 할 때, 편하다고 해서 자료조사만 자처하면 개인발표를 앞두고 피피티 자료를 만드는 것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욱 부담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시간과 수고가 조금 더 들더라도 훗날의 홀로서기를 위해 자립심과 자생력을 키우는 길을 권하고 싶다. 또 사회적 지원으로는 소극적 교육이 필요하다. 개인의 자생력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보완해주는 것을 장려해야할 뿐 아니라 필요이상으로 거대한 자본가들이 소상공인의 설 자리까지 앗아가는 것을 적정선에서 규제해야 한다.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부족한 것은 되도록 같은 공동체의 범위 내에서 해결하는 것은 인정투쟁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부족함 없는 생활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활발하진 않지만 노동자 협동조합 같은 소상인 연합,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를 위한 행복주택, 마을공동체 사업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개인으로 존재했을 때 부딪히는 유한성을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서 오히려 잠재력을 끌어내고 상호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집단전체가 성장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국가적으로 거대자본에 대한 규제가 보완된다면 우리나라도 조금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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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단행본
이기범. 2016. 루소의 에밀 읽기. 세창미디어.
와타나베 이타루, 2014.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정문주 옮김. 더숲.


[민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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