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대역이기에 더욱 온전하게 빛나는 배우의 삶, 연극 언더스터디

글 입력 2016.11.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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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이기에
더욱 온전하게 빛나는
배우의 삶,
연극 언더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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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study 대역 (배우)
메인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



언더스터디의 정의입니다. 언더스터디는 쉽게 말하자면 대역입니다. 사실 ‘대신’이란 표현이 주는 어감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대신이란 표현은 최선이 아닌 차선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최선인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어서 선택 된, 최선이 있었다면 절대로 선택되지 않았을 그것이 바로 ‘대신’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신’은 ‘기회’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최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빛을 내보일 기회. 그리고 때로 이 기회는 차선을 최선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연극에서 이 ‘대신’의 의미는 더욱 특별합니다. 기본적으로 배우는 배역의 삶을 ‘대신’ 살아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무대에 서는 순간, 배우는 그 배우 그 자신임과 동시에 그 배역입니다. 그 배역은 배우를 통해서만 살아있을 수 있고 연극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배우는 배역의 삶을 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우가 그 배역 자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배역 자체를 살려낼 수는 없으니 사람이 그를 ‘대신’ 연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배우의 아이러니는 이 ‘대신’에서 시작합니다. 

나의 삶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아야하는, 아니 다른 이의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인 배우의 삶. 이 지점에서 배우의 삶과 무대 위 인물의 삶은 동일하진 않지만 떼어놓을 수 없는 미묘한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연극 속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즉 ‘대신’ 살고 있는 삶은 ‘배역’의 삶임과 동시에 배우 그 자체의 삶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렇기에 배우는 배역의 삶을 ‘대신’ 살지만 배우에겐 그 삶이 ‘대신’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곧 자신의 삶이고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현실 속이 아닌 연극 속 배우에게도 일종의 ‘기회’로 작용합니다. 배역을 살려낼 수가 없기에 배우가 배역의 삶을 대신 살지만, 배우가 배역을 해석하고 나름으로 연기함으로써 ‘배역’은 배우의 생명력을 받아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차선이었던 ‘연기’가, 배우의 생명력을 받은 ‘삶’이 되는 순간. 배우가 배역을 표현해내는 것이 아닌, 배역으로서 살게 되는 순간. 차선은 곧 최선이 됩니다. 그 순간만큼은 배우가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역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 되니 말입니다. 

이 ‘대신’에 관한 아이러니는 언더스터디, 즉 대역을 설 때 더욱 심해집니다. 배역의 삶을 대신 사는 배우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대역을 서는 순간은, 배역을 대신 사는 ‘배우’로서도 다른 배우의 역할을 대신하는 ‘현실 속 인물’로서도 차선이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배우에게 있어 무대 위의 삶은 곧 현실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자칫 그의 삶 자체가 ‘대신’으로 보이기도 하죠. 무언가를 계속해서 대신해야하는 배우는 늘상 무대 위의 삶과 현실의 삶을 혼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분리되지 않기에 더더욱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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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엔 대역이 없다.
무대에 서는 순간 그 삶은 온전히 너의 것이야."


연극 언더스터디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배우. 다른 배우를 ‘대신’하는 배우. 그것이 곧 삶인 배우에게, 언더스터디는 ‘인생엔 대역이 없다’고 말합니다. 무대에 서는 순간 그 삶은 온전히 너의 것이라구요. 아직 연극을 보지 않은 제게도 이 대사가 주는 울림은 남다릅니다. 

이 대사는 배우에겐 늘 존재할 수밖에 없는 대신의 아이러니를 깨뜨립니다. 무대 위의 삶은 배우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인생엔 ‘대역’이 없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선 그 누구도 ‘대신’이 아닙니다. 연극의 삶을 본인의 삶으로 받아들일 때, 배우는 그 누구의 차선도 아닌 최선이 됩니다. 배역의 삶을 ‘대신’ 살아줄지라도, 누군가의 대역으로 무대에 설지라도 그 순간의 ‘삶’을 살아내는 배우의 삶은, ‘삶’이라는 무대에 있어 온전히 배우 그 자신의 것입니다. 연기인생을 살아온 배우가 그 오랜 세월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기에, 이 대사는 더욱 빛이 납니다.

뿐 아니라 연극 ‘언더스터디’의 스토리는 메인배우인 오선생이 언더스터디인 정환에게 배역을 넘겨주고 은퇴하는 것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정환이 오선생을 통해 ‘대신’의 삶이 곧 자신의 삶임을, ‘대신’ 살아가더라도 그를 받아들이면 이는 곧 ‘대신’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 즉 ‘대신’에서 최선으로 바뀌는 과정은, 오선생의 ‘언더스터디’에서 메인배우가 되는 과
정과 닮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뿐 아니라 '오선생'의 '대신'이었던 '정환'에게, 그 '대신'은 '기회'로 작용하죠. 연극 속 여러 상황과 대사 그리고 가치관은 면밀히 얽혀있는 것입니다.

이는 연극을 뛰어넘어, 연극 외적인 부분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오선생을 연기하는 ‘오현경’배우는, 실제로 연극판에서 60여년을 지내온 배우입니다. 그가 연기하는 ‘오선생’은, 그리고 ‘오선생’이 그간 고민하고 내린 해답은 배우 ‘오현경’과 닮아있을 수 밖에 없으며 그가 내린 해답과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배역의 이름 자체가 ‘오선생’이라는 점에서 배우 오현경과 배역 오선생의 경계는 흐려집니다. ‘오선생’을 연기하는 배우 오현경의 삶은, 오선생 그 자체이며 그렇기에 ‘대신’이라 부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을 받는 역으로 나오는 ‘정환’의 류태호 배우도 ‘오선생’만큼은 아니더라도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또 노장에게 여러 깨달음을 얻는다는 점에서 ‘정환’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습니다. 배우에 대해 얘기하는 연극 ‘언더스터디’에서 그들이 연기하는 것은 본인과 동 떨어진 어느 ‘배역’이 아니라, 본인의 삶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연극에서 실제로 함의하고 있는 것들이나, 은유들은 직접 연극을 봐야 알겠지만. 연극으로 연극과 배우의 삶을 다루며, 그를 '언더스터디'라는. 배우의 아이러니를 표현한 소재로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이 연극이 퍽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연극 뮤지컬을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는데요. 바로 "나는 원캐다"입니다. 대역없이 원캐스팅으로 진행되는 무대처럼, 내 인생에서 '나'도 대체불가능한 존재라는 거죠. 삶은 죽음을 생각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합니다. 마찬가지로, 언더스터디를 보며 '대신'에 대해서 고민함으로써 원캐인 저 자신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극을 보며 원캐인 우리의 삶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예매는 여기. 아래는 상세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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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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