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천복'의 가치, 조셉 캠벨 '신화의 힘' 리뷰 [문학]

글 입력 2016.11.02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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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복(bliss)'의 가치
조셉 캠벨 '신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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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신화'에 대해서  

  이 책은 너무 어렵다.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이 책을 완전하게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의 첫 장을 열기 전 까지 신화에 지나치게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열심히 읽었고 <천둥의 신: 토르>의 열혈팬으로서 서구신화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다보니 이 책은 결코 겉핥기식 이야기나 흥미를 위한 책이 아니었다. 저자는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신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목 그대로 신화의 힘은 무엇인가? 정말 오래된 이야기인 신화가 현대에까지 구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신화를 읽어야할까? 에 대한 기원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그 나름대로의 신화와 종교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았다. 


   앞의 질문들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다른 고전이야기들처럼 우리에게 그 작품이 쓰인 시대상이나 사회문제를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교훈을 주니까 신화를 읽어야한다고 단편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화는 재미있으니까 구전된다고 생각했다. 외적으로 뛰어나며 능력도 뛰어난 여러 신들이 희로애락을 느끼고 사건사고를 겪는다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물론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신들의 외모를 뛰어나도록 설정한 것일수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현대에 신화의 변용을 많이 한 작품들이 있기에 신화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는 것인지, 신화가 주는 교육적 요소들이 뛰어나서 현대에 신화를 주제로 여러 작품들이 형성되는 것인지 그 선후관계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또 다른 책들도 참고해보고 했는데, 선후관계라기보다는 상관관계라는 결론이 나왔다. 다 똑같은 막장드라마 속에서 뱀파이어이야기라던가 신화에 기반을 한 이야기들은 참신하고 차용할 소재들이 많다. 또한 현대 정보화 시대는 신화와 같은 비논리적이야기, 'mythos'를 비롯해서 철학 즉 'logos‘와 같은 인문학적인 가치와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더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주목해야할 때인 것이다. 신화 속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가야할 여러 모습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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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캠벨>



II '영웅' 그리고 '천복'

   책 속에 조셉 캠밸이 제시한 것들만 해도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학생인 위치에서 이 책을 읽으니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영웅’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조셉 캠벨의 ‘영웅’은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며, 보통 ‘분리-입문-귀환’의 과정을 겪는다고 했다. 자신의 세계와 분리되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입문과정을 통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와 ‘영웅’으로서 이바지한다는 내용이다. 영화나 만화같은 매체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모험을 떠나는 ‘영웅’은 매우 생소하다. 그래서 이 ‘영웅’과 ‘천복’을 연관 짓고 싶다. 자신의 천복을 이루는 사람, 자기 세계의 변화를 통해 자기 삶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영웅’인 것이다. 각자가 각자에게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천복’은 원문의 ‘bliss'를 번역자가 ’천복‘, 즉 하늘이 내린 복이라고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책에서 ’천복‘의 정의는 ’누가 뭐라 하여도, 그리고 어떤 갖은 시련을 당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좆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정말 축복이다.


   조셉 캠밸은 ’천복‘의 가치를 높게 산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우리나라 학생들은 자신의 천복이 무엇인지나 알까? 어떤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좇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진정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라는 생각 하에 흔히 앞날이 창창한 전공을 그만두고 다시 입시를 치뤄 다른 전공을 시작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른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쓸데없다고 생각하여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겪어야하는 과정이려니, 합리화를 하며 억지로 괜찮다고 자기위로를 했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시련을 겪어내지 못하고 여기서 그만두고 싶다는 건 이 일을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고민하는 시간도 많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주변상황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다른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만큼 천복을 좇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bliss'라고 불리는 것인가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자네의 삶이,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일세
- Joseph Campbell"




 III. 결론을 대신하여

   그러므로 우리나라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조셉 캠벨이 말하는 ’천복‘은 현실성이 결여되어있다. 한국은 특성상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교육, 그것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평균치의 인간을 만들려는 듯한 주입식 교육 위주이기 때문이다. 주변만 살펴봐도 정확히 자신의 진로를 정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들은 별로 없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따로 있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그저 취미로 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근데 이렇게 현실과 타협하고 적당히 즐기고 있는 친구들을 용기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의 기준이 뭘까? 의문의 연속이다. 어떤 매체에서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것은 취미이고 싫어하는 것까지 할 수 있어야 직업이다‘ 라는 말을 들어서 또 한번 혼란이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곳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나마 여기까지 왔다‘라는 발언을 들어서 혼란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천복과 연관지어 영웅이 자기보다 더 큰 것, 즉 천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을 위한다는 점에서 희생이라는 단어가 좀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나, 궁극의 목표를 위해서 온 마음과 몸을 바친다는 점에서 헌신으로서의 의미로 ’희생‘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것 같다.
  

   아마 이 고민에 대한 수학문제와 같이 딱 떨어지는 대답은 없을 것이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뜻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신화와 같은 고전이야기들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이야기를 계속 읽다보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처한 인물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상황과 대처를 통해 어느정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조셉 캠벨은 ‘영웅’과 ‘천복’의 개념이외에도 신화 속에 나타나는 아모르(amor)적 사랑, 비교종교적인 이야기 등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방황하는 청춘으로서 ‘천복’이라는 개념에 꽂혀(?) 긴 리뷰를 쓰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천복을 이룬 영웅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에서 그 부분을 더 자세히 읽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솔직한 말로는 이 부분이 책에서 제일 명확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기에 더 이해가 쉬웠던 부분도 있다. 책 자체가 쉽지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양도 많아서 시간에 쫒겨 한 구절 한 구절 곱씹으면서 찬찬히 읽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쉽다. 넉넉한 시간과 함께 여유로운 자세로 책을 읽으면 조금 더 신화의 힘을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조셉 캠벨이 예시로 드는 이야기들을 잘 몰라서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이쪽 분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뒤에 다시 읽게 된다면 그가 뜻하고자 한 부분 부분들이 또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미지 출처: Naver 

  
[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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