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코미디 연극이라기보다는 섬뜩한 현실,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글 입력 2016.10.3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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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찌 보면 따뜻하고 즐거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잔인할 만큼이나 섬뜩하다. 그리고 그러한 섬뜩함은 새로운 상황보다는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되곤 한다.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는 그런 면에서 현실과 굉장히 맞닿아있다. 연극인데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너무나도 평범한 빌라에서,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극을 이끌어 나간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고양이들의 죽음과 옆동네 여대생 살인사건을 두고 그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우리 빌라처럼 평범한 빌라에 도대체 왜..?“

 계속되는 진실공방 끝에 빌라 주민들은 대책회의에 오지 않은 201호 남자가 수많은 고양이들을 살해한 범인일 것이라 결론 내린다. 누군가는 그가 주머니에 커터칼을 가지고 있는 걸 보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가 쥐를 발로 밟아 죽이는 걸 보았다고 한다. 하나하나 목격담을 꺼내놓고 나니 어느새 201호 남자는 천하의 미친놈, 싸이코패스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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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빌라 주민들은 싸이코패스로부터 진실을 알아내고자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선생님부터 부띠크 직원, 경영 연구소, 빌라 관리인 겸 간병인, 회사원, 노인, 고시생, 전업주부. 평범한 그들은 201호 남자가 등장하자 이미 싸이코패스가 되어버린 그를 추궁하고, 감금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201호 남자가 싸이코패스, 범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고 이 사실을 경찰에 들키지 않기 위해 이젠 세상에 없는 그를 싸이코패스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싸이코1.jpg
 

 어쩌면 이 연극은 정말 말도 안 되게 흘러간다. 어떻게 사람 하나를 명확한 증거도 없이 싸이코패스로 몰아가며 죽은 사람을 싸이코패스로 둔갑할 생각을 하는가. 하지만 여기서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민낯이었다. 


 처음 난도질당한 고양이 시체를 보았을 때 징그럽다며 소리를 지르던 그들은, 싸이코패스가 자신을 해칠까봐 두려움에 떨던 그들은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201호 남자를 죽이고, 그를 싸이코패스로 만들 궁리를 하며 이를 위해 빌라에 입주하고자 하는 여성을 희생시킬 계획까지 세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예쁘고 참한 줄 알았던 부띠끄 여직원은 알고 보니 사디스트였고, 경영 연구소에서 일한다던 남자는 바람둥이였으며, 고시생은 여성 혐오로 가득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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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건의 진짜 범인은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극은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그에 대한 대답을 무어라 내려야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어렴풋이 짐작하건대, 이 연극은 빌라 주민들의 품속에 있던 커터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당신은 나쁜 사람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아무도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 멀리 아프리카의 기아들에게 정기후원을 하기도 하고 성 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SNS에 무지개 깃발을 걸어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우리는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참담한 사건에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정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 이면엔 커터칼로 표상되는 섬뜩한 잔인함도 함께 한다는 걸 이 연극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많긴 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무거운 메시지, 그리고 그것과 대조되는 지극히 평범한 설정때문에 그로테스크한 여운이 짙게 남는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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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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