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와인과도 같았던 공연-필립윤트&프레디켐프 듀오 콘서트

글 입력 2016.10.30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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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10월 23일, 플루티스트 필립 윤트와 피아니스트 프레디 켐프의 연주회를 관람하기 위해 다시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흐릿했던 날씨는 어느 순간부터 비를 뿌리기 시작했고 온도는 조금 더 싸늘해졌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허둥지둥 도착했던 공연장. 다행히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춰 지각만은 면하게 되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공연장에 들어선 뒤 좌석을 확인했다. 이 날은 감사하게도 맨 앞이나 다름없는 표를 받아 아주 가까이에서 두 사람의 연주를 관람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프레디 켐프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사계였다. 1년 12달에 어울리는 시를 택하여 그 시의 성격을 묘사한 표제 음악. 매 달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분위기와 리듬이 특징인 곡을 너무나 다채롭게 소화한 프레디 켐프의 연주는 정말 놀라웠다. 그의 연주에 완전히 반해버릴 정도였으니. 부드럽고 조용한 분위기의 달(1,4,5월)부터 깊은 우수와 쓸쓸함이 묻어나는 달(3,6,10월), 활기차고 경쾌한 분위기의 달까지(2,11,12월). 그의 스펙트럼 넓고 깊이 있는 연주로 인해 음표들이 살아 숨 쉬며 나에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3월, 7월, 11월을 연주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머릿속에 담긴 다음 곡의 악보를 생각하듯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다른 템포로 변하는 곡에 몰입하기 위해 감정을 가다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곡에 더욱 빠져들어 온 몸으로 그가 전해주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와 명품 피아노의 시너지가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지 알게 된 순간이랄까. 그의 우아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열정적이고 힘 있던 연주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필립 윤트가 편곡한 브람스의 가곡 모음으로 총 13곡을 연주했다. 두 사람의 호흡이 돋보였으며 특히 플루트의 경쾌하고 화려한 기교보다 풍부하고 감성적인 부분에 더 중점을 둔 것 같은 필립 윤트의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맑고 부드러운 소리부터 낮고 아련한 소리까지. 슬픔이 짙게 베인 곡부터 사랑을 찬미하는 싱그러운 곡까지. 피아노의 합주와 함께 울려 퍼지는 플루트의 소리는 더욱 깊이 있고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왜 가을하면 브람스 음악을 이야기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브람스가 평생 이루지 못했던 사랑의 슬픔 때문일까. 그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우울함과 낙엽이 질 때의 느낌과 같은 쓸쓸함. 그러면서도 서정성과 고상함을 잃지 않는 음악이니 가을과 너무도 잘 어울리지 않는가. 모든 곡들이 아름다웠지만 특히 ‘영원한 사랑에 대하여’ 라는 곡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강철과 쇠가 아무리 강하다지만 우리의 사랑은 이보다 강해요. 쇠와 강철은 녹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사랑은 영원해야만 해요.’

마지막 프로그램은 슈베르트의 시든 꽃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었다. 실연의 슬픔에 빠진 청년을 표현하는 곡답게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듯 부드럽고 가벼운 부분과, 자살을 결심하고 극으로 치닫는 청년의 감정을 나타내듯 빠르고 강한 부분이 화려한 연주와 함께 계속 변주를 이루었다. 마치 서로 주고받듯 피아노의 선율이 앞서 나갈 때도 있고 플루트의 선율을 피아노가 따라가기도 했다. 이 곡에서도 어느 한 소리가 튀는 부분 없이 하나의 소리처럼 조화를 이뤄 몰입도 높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던 부분이었다. 

마지막 연주가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지던 박수소리로 인해 두 사람은 베토벤의 비창과 Morlacchi의 Il pastore Svizzero를 앵콜로 들려주었다.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듯 평화롭고 아련했던 프레디 켐프의 비창 2악장. 새의 지저귐처럼 맑고 화려했던 필립 윤트의 Il pastore Svizzero. 이들의 재능과 감성은 와인처럼 깊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던 여운은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마저 감미롭게 만들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나에게 클래식의 매력에 빠진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어본다면 이들의 공연을 봤던 순간부터라고 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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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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