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잿빛 세상 속, 나는 행복한 정신병자이다 –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글 입력 2016.10.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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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필자가 좋아하는 노래제목 중 하나이다. 인생은 모순과 역설의 순간들로 모여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분명 잔인한 순간도 올 것이다. 순간의 행복에 젖어들어 후에 닥칠 불행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게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불행들을 두려워해서 현재 누리고 있는 행복들을 방어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가끔씩은 내가 예지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특히 이번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의 주인공인 조만득씨에겐 더욱 조금이나마 예지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 모든 불행을 빠짐없이 받은, 어쩌면 지구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참한 인생을 산다. 화재로 아버지를 잃고 치매 걸린 노모를 도맡아 모시며 바람난 아내는 가뜩이나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하고 다닌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와서 노름 돈을 착취해가는 친동생은 분리수거도 안되는 쓰레기나 다름이 없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유일한 작은 이발소를 운영하며 죽지 못해 사는 조만득씨.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 만은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매일 반복된다고 상상해보자, 과연 어떤 사람이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에게 유일한 빛이었던 아내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남편으로 생각지도 않고 어머니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기만 한다. 그 와중에 꾸준히 행패부리는 동생, 이제 조만득씨는 드디어 미치고 만다. 그렇게 그는 그의 주변인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그의 절친한 친구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자신이 재벌가의 회장님이라며 이미 과대망상 말기 증세를 보이는 그를 병원에서는 온갖 처방을 내려 치료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 치료는 실패로 돌아간다. 

정신병원의 간호사가 이런 대사를 한 적이 있다 “ 조만득씨는 망상 속에 빠진 지금이 제일 행복해 보이는데 잠시나마 저렇게 두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나 전문의는 쌀쌀맞은 표정으로 꿋꿋이 환자를 치료하는 목적만을 운운하며 간호사의 말을 무시한다. 무대 구성에서도 느껴졌지만 정신병원 전문의는 늘 무대의 제일 위쪽에서만 진료를 하고 환자들을 지켜보았다. 이는 바로 환자들의 위에 자신이 있다는 우월감과 지배적인 행동이 깔려있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환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트라우마를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영락없는 현대인의 모습이었다. 

이번 연극에서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매우 인상 깊었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공연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배우들의 연기에 매료되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던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문의를 맡으셨던 배우의 발성이나 대사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던 부분이 있지만 그 부분이 무색할 만큼 좋은 공연을 보여주어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 속 나는 과연 미치지 않은 사람일까 생각해본다. 조금 더 위로 조금 더 앞으로 나가거나 상승하려는 욕심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좌절을 돌보지 못하는 지금의 내가 정말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심해본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사람냄새’ 나는 삶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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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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